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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시스템이 문제다 (4)

(註: 글을 쓰면서도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살면서 경험한 것들을 소재로 하기에 언급되는 사람들에게 의도하지않은 누를 끼치게되지 않을까 염려되는 것이지요. 이번에 언급하는 내용도 대학친구들이 본다면 누구인지 금방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글을 쓰는 목적은 친구를 깎아내리거나 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을 통해서 한국의 시스템이 가진 문제를 드러내고자하는 것 외에는 아무 목적이 없음을 미리 밝힙다.)


20년쯤 전이다. 회사를 옮겨 자회사 사업부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 지방으로 출장을 갔다. 모회사의 그 지방 지사장은 대학선배이었고, 모회사에서 그 분이 동문회 회장일때, 내가 총무를 맡았던 인연이 있어서 아주 잘 아는 분이기도 했다. 그 분은 운좋게도(?) 정년퇴임 1~2년을 앞두고 막차로 승진을 하는 덕분에, 직할시에서 그 지방을 총괄하는 지사장, 즉 지역 사령관(?)으로 마지막 직책을 수행하고 계셨다.


○ 지사장님 참 좋은 분이시죠? 제가 사적인 일로 가까이 모신 적이 있었는데, 참 서민적이시고 소탈하셔서 대하기가 참 편했거든요. 여기 부장님들이 참 좋아하시겠습니다! 하하하


찾아갔던 부서장을 만나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담당부장은 머뭇거리면서 기대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대답을 했었다. 머뭇거렸던 것은 내가 지사장님과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인 것을 지레짐작하고 기분 나쁘지 않게하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 예, 참 좋은 분이시지요. 그런데 너무 노는 것을 좋아하셔서, 참내. 일하시는 것보다는 그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좋아하시니까, 좀 그렇습니다.


아, 그렇구나! 하는 느낌이 순간 찾아왔다. 정년이 2년 남짓 남은 그 분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 승진할 자리도 없고, 지사장에게 주어지는 사택에서 가족도 없이 혼자 생활하며, 주말에만 서울에 가서 황혼에 - 지금의 나보다는 나이가 적으셨지만 - 주말부부로 지냈다. 회사에 충성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설렁설렁 1년 좀 더 다니다가 아무 사고없이 정년퇴임하면 그만이었다.


저녁에는 지사장님을 비롯한 부장급 간부들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대접했지만, 지사장님은 내 출장목적이나 업무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먹고 마시며 즐겁게 시간 보내는 일이 그 분의 최대 관심사로 보였다. 또한 정년 이후에 쓸 용돈을 마련하는 데에까지 관심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OO공사라고 불리는 국영기업에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자회사들이 있다. 그 자회사의 사장, 부사장, 본부장같은 분들은 모회사에서 정년퇴임을 한 분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와서 2~3년 정도의 임기를 채우고 떠난다. 이런 분들 중에도 간혹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의 경영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적당히 사고나 생기지 않도록 몸조심이나 하면서 임기나 채우고 떠나려는 분이 대부분이다. 모회사에 오래 근무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너스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대학동기 중에 기술고시에 패스한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2학년 말에 유급을 했다. -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은 낙제가 일상화된 일이어서, 재수없는 일이었을지언정 크게 창피한 일은 아니었다. 부모님을 납득시키기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재학 중에 군대에 갔고, 제대 후에는 내가 실패했던 고시를 목표로 공부해서 일찌감치 합격했다.


이 친구가 광화문에 있는 중앙부서에서 과장인지 계장인지로 근무하고 있을 때이었다. 당시 모회사의 과장으로 있던 나는, 대학선배이자 내 상관의 상관으로부터 고민거리를 듣게 되었다. 회사에서 갖고 있던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도록 통신분야 사업자 등록을 하려고 하는데, 관련부처에서 받아주질 않는다는 거였다.


가만 듣고보니, 친구가 하던 이야기를 귓전으로 들은 것이 생각났다. 담당자가 그 친구이었던 것이다. 선배는 매우 기뻐하면서, 약속을 하라고 했고 그렇게 자리가 만들어졌다. 토요일 오후 늦은 점심시간에 조용한 음식점에서 셋이 만났다. 평소에도 합리적인 사고와 말솜씨로 부하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선배님은, 국가가 가진 인프라를 최대한 사용하는 것이 나라를 위한 일이라며 일목요연하게 논리를 전개했고, 옆에서 들으면서도 '참, 말씀을 잘 하신다!'라는 감탄이 나왔다.


그러나 내 친구는 아무런 논리도 제시하지 못한 채, '무조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통신회사가 여럿이지만, 당시에는 한국통신이 독점하고 있었고, 친구가 있는 부처에서는 퇴임하게 되면 보통 그 회사의 임원으로 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친구는 아무런 논리적 배경도 없이 한국통신의 독점적 지위를 옹호하고 있었고, 그 모임은 아무런 성과없이 끝났다.


- 야, 장과장! 그 녀석 상대하지 마라. 그렇게 말이 안 통하는 녀석은 처음 본다. 그거야 어디 벽창호나 마찬가지지, 참내.


친구는 작년에 정년을 하고, 정부산하기관의 사장으로 취임했다는 이메일을 동창회로부터 받았다. 30년 이상 국민의 공복으로 수고한 보상일까? 2~3년의 임기 동안 일자리와 수입이 확보된 셈이다.


- 듀크야, 정말 미안하다.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 일반사업자를 신청한 것도 아니고 특정사업자 등록을 왜 그랬지? 그때 거절하고 나서 두고두고 미안하게 생각했다. 너를 만나 이 말을 꼭 하고싶어서 억지로 나왔다.


언젠가 미국에서 한국에 다니러 왔을 때, 번개로 만난 대학동창 모임에 뒤늦게 술에 취해 나타났던 그 친구가 2차로 간 호프집에서 했던 말이다.


<후기>

군사독재시절에는 봉급이 아주 작았습니다. 특히, 공무원, 교직원, 군인들의 봉급은 특히 작았고, - 부패가 많았던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 그래서 그들의 노후를 보호하기위해서 공무원연금, 교원 연금, 군인연금 등 연기금이 국민연금이 생기기 전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대책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된 정부의 노력으로 봉급현실화가 많이 이루어져서, 이들 직종의 봉급도 일반기업과 별 차이가 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중앙직, 지방직, 소방직, 경찰직, 교도직 등 직종을 따지지 않고 모든 공무원 채용고시에는 '백 대 일'이 넘는 경쟁을 보이고 있다니, 예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세월이 세상을 그만큼 바꾼 것이지요.


- 우리는 둘이 합쳐도 △△아빠 보다 못하잖아요!


옛날 이야깁니다. 친척 중에 중학교 교사와 초등학교 교사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른 생신에 갔다가 그 와이프에게, '둘이 버는데 그 많은 돈 다 뭐해? 이럴 때 펑펑 써야지!'하고 농담했다가, 앙칼진 목소리로 보복(?)를 당한 거지요, 하하하. 그랬던 교직원이 지금은 최고의 직종이 되어서, 결혼중매업체에서는 백만 원이 넘는 입회비도 면제한다지요, 아마. - 혹 교사출신이신 분이 읽는다면 오해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제 본래 목적은 그게 절대 아닙니다. 세상이 그만큼 변했다는 예로 든 것뿐이니까요.


한국의 봉급이 미국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실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각종 복리후생까지 합치면 오히려 한국이 더 좋습니다. 우선 세율이 적고, 부부합산 세금제가 아직 도입되지 않았으며, 한국에는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비지원을 받으니까요.


미국에서 30년 봉급생활을 한 아톰님에게 물어보았더니, 미국에서는 봉급 외에는 혜택이 전혀 없다며 놀라더군요. 세상은 크게 변했지만, 누리고 있는 기득권은 누구도 내려놓지 않으려 합니다. 선진국과 후진국 시스템이 서로 공존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시스템을 선진국형으로 바꾸는 게 쉬워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단골을 상대하는 음식점은 친절하고 맛도 있지만, 고속버스 터미널 근처의 나그네를 상대하는 식당은 불결하고 맛도 없습니다. 2~3년 후 퇴직이 보장된 회사에 주인의식을 갖고 혼신을 쏟을 바보는 아무도 없습니다. 설렁설렁 편하게 놀러다니는 거지요. 업자들과 골프나 치고, 먹고 마시고 용돈 챙기는 일에 열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이번 세월호 사고의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관피아(공직관료+마피아)를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는데, 과연 가능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그것만 완수해도 박대통령은 훌륭한 업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봅니다. 적극 응원을 보내기는 하지만, 주변에 있는 인물들을 보면 가능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건 그렇고, 친구들아, 혹 이 글을 보더라도 기분 상하지 말아라. 시스템의 문제점을 말하기위해 소재로 썼을 뿐이니까. 에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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