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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후회와 인생

(이글은 '결단의 기로에 서서'라는 제목으로 '하얀물결'님이 2년 전에 쓴 글과 그 글에 대한 제 답글입니다. 약간의 편집을 했어도, 두 개의 글이라 읽기에는 약간 긴 글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역역이민 하신 어떤 분이 한국에 가서 살아보니 살 곳이 못 된다며 가지 말라는 글을 올렸었는데. 아마 거기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던 걸로 기억됩니다. 많은 공감이 가는 글이라는 생각에 '끌어올리기'를 했습니다.)


짧지않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생을 사는데 정답이 있다면, 어덯게 하든 그 정답을 알아내서 그 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정답대로 잘살아갈텐데 하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생사에 정답이 없다보니 살아가는 동안,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한치 앞도 모른 채 어느 한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바른 선택을 위해 무속인이나 점집을 찾기도 하고 신앙에 메달리기도 하며 다른 사람의 경험을 교훈삼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남들의 성공이나 실패를 보면서 나름대로 냉철하게 분석하고 판단하여 나의 길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그선택이 바른 선택이었는지는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지난날 젊은 시절 한국을 떠나올 때만 해도 그렇다.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가며 더 큰 세상에서 살아보기 위해 한국을 떠나야만 된다고 우기고 떠나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자신은 별로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배우자나 가족들 혹은 주위의 권유에 못이겨 마지못하거나, 어쩔수 없이 한국을 떠나오게된 사람도 있을것이다.


외국 땅에 자리잡고 살기위해 온갖 고생을 하면서 내가 왜(?) 이런 결단을 내렸던가 후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때 떠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처음엔 미국에 와서 사는 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지나며 후회 스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요, 반대로 세월이 지나며 미국에 와서 사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한국을 떠나 이민 길에 오른 것이 일생일대의 성공적인 선택일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인생 최악의 어리석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역이민에 대한 선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른 선택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개개인의 상황이나 처지 그리고 생각에 따라 다른 것이지 남의 경험이나 생각이 나에게도 모두 적용되는것은 아니다.


남의 경험이나 생각이 내가 결단을 내리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참고사항일뿐이다. 모든 상황을 바로보고 신중하게 결정하는것이 중요하겠지만, 바둑에서 장고끝에 악수 난다고  오래 생각한다고 좋은 결정이 나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에 미국이 들썩였던 슈퍼볼 게임이 생각난다.  뉴욕 자이언트와 뉴잉글랜드 페이트리어츠가 맞붙었을 때, 많은 미국인들이 내기를 하는데  대부분 자기가 응원하는 팀에 배팅을 한다. 


그러나 내기는 가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배팅은 이기기를 원하는 팀에다 하는 것이 아니라, 이길 것 같은 팀에다 하라는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내가 이기기를 바라는 팀에 배팅을 한다.  그것이 사람의 인지상정 아닐까?


나름대로 명석한 분석으로 한국에 돌아가는 것 보다 그냥 미국에서 사는것이 더 유익할수 있더라도, 가슴으로는 오랫동안 떠나왔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면, 그것이 바보같은 결정이라고 그 누가 말할수 있겠는가?


한국에 돌아가 어느 곳에 자리를 어떻게 잡고 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에도 사람마다 다르다.

서울이나 큰 도시가  좋은 사람도 있을것이요, 한적한 시골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살다가 돌아온 사람들끼리 모여 살기는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인생사가 계획하고 뜻한다고, 가고 싶은 곳으로만 가게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모든일을 계획 할지라도 그길을 인도 하시는이는 그분(?)이시니" 


우리가 할수 있는일이란 인생 살아가는 동안 때때로 만나게 되는 결단의 기로에 서서, 그때 그 상황에 따라 올바른 결단을 내리고 그 길을 평탄하게 갈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랄뿐……



(지금부터는 윗 글에 대해 제가 쓴 답글입니다.)

 

햇볕이 따사로은 늦은 봄날, 2층 덱으로 나옵니다. 0.4 에이커(약 500평)에 가까운 넓은 백야드의 잔디를 2시간이 넘게 땀을 뻘뻘 흘리며 깍은 뒤, 방금 찬물 샤워를 하고 나온 겁니다. 덱에 있는 흔들의자에 몸을 묻고 차디 찬 캔 맥주를 들고 흐믓한 마음으로 방금 깍은 잔디를 쳐다 봅니다. 잔디를 깎은 직후가 가장 흐믓합니다. 이때는 잔디를 손 본지 2주일쯤 지나 잔디가 자라면 마음이 불안해지다가, 잔디를 깍고 나면 왜 그렇게 뿌듯했었는지, 하하하.


- 그래, 미국에 오길 참 잘했어! 그럼, 잘했고 말고. 내가 좀 고생스럽긴 하지만, 이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 키우고, 먹고 사는데 별 문제 없으니 이만하면 부러울 게 뭐 있겠나? 아, 얼마나 나는 행운아인가! 


2001년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넉넉한 토요일 오후, 행복감에 도취되어 몸을 떨던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영주권도 쉽게 받았고, 몇 년 전 집을 산 것도 잘한 결정이어서 그때까지 집을 사지 않았던 이웃들의 부러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회사도 탄탄하게 굴러가고 있었고, 아이들도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이웃들이 어려워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왜, 바보처럼 저러구 지내지?' 하고 그분들을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지요.


하하하, 그런 세월이 한 3년인가 4년 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점점 어려움이 생기고 고난의 세월이 왔습니다. 결정적 한 방은 2008년의 경제위기였습니다. 보통 때라면 보너스 받을 생각에 부풀었던 연말에 보너스는 커녕 누구를 잘라야 하는지가 고민거리였었는데, 그 대상에 나 자신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두어 달이 지난 뒤였으니까요.


2010년 말에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제가 알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도 있었고, 옛날 직장의 동료와 부하직원들도 있었습니다. 본사 처장이나 지점장들, 또는 이런 저런 회사의 전무나 부장들, 교수도 있고 의사도 있습니다. 대부분 강남이나 신도시에서 삽니다.


또 생각을 합니다.


- 나도 그때 참고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면 아직은 현역으로 저 자리에 있겠지. 그리고 미국에서 P 부사장에게 당했던 그 수치스러운 치욕도 겪지 않았을 테고, 그토록 어려웠던 고난의 시간도 없었을 테지.


하하하, 그게 인생입니다. 죽을 때까지 후회하며,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후회할 짓을 하며 사는 것이 '갑남을녀'가 하는 일상사입니다. 평범한 진리이겠지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일찌기 간파하고 예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부처님은 '마음을 비우라'고 했을 겁니다.


내게 주어진 환경을 고치기 위해 투쟁하고 힘겨운 싸움을 했던 것은 다 젊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래서 이민이라는 힘든 과정을 겁없이 택할 수 있었던 거지요.


이제는 여건에 맞추어 살면 그뿐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면서 거기에 맞추어 살 뿐입니다.

이민이든 역이민이든 다 과정일 뿐입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캐나다든 적응하고 순응할 수 있으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후회도 과정이고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하고 나면 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하지 않으면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그러면서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굳이 애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후기>

너무나 공감이 가는 글을 보고 쾌재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행복했던 시간들, 그리고 고통의 세월들이 스칩니다.


어리석었던 결정들이 많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아닌가요?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건가요?


그게 인생이니까요, 누구나 그렇게 사는 것이니까요.

그냥 쓰게 웃을 뿐입니다, 하하하.


(지난 글들을 다시 보니,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기억이 희미합니다.

이글을 볼 때는 '하얀물결'님을 몰랐었는데, 지난 번 미국에서 자주 만나며 우정을 나누어 아는 분의 글이라, 다시 보니 또 새로웠습니다. 잘 지내시죠? 저작권 때문에 지우시라면 지우겠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