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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남태평양 그 남자

(2013년 10월17일에 작성한 글)

 

- 한국에 갔을 때 사람들이나 친구들이 해줬을 때 싫어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요.

회 사준다고 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요. 본인들은 비싸고 좋은 걸 사주고 싶어서 데리고 가는데요.
횟집은 싫고 짜장면 사주는 사람이 좋아요, 짜장면 사주는 사람.
짜장면 그리고 기사식당에 데리고 가서 백반 사주는 사람, 그리고 쌈밥 사주는 사람이요.
쌈밥이 정말 먹고 싶더라구요. 한국에 가면 쌈밥이 정말 맛있더라구요.

 

외로워요,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 외롭지.
이곳을 천국 같은 좋은 곳이라고 하잖아요.
천국이라는 건 제가 보기엔 오직 나그네들만이 느낄 수 있는 장소인 것 같아요.
거기서 사는 사람은 그곳이 이미 천국이 아니에요. 천국이라는 건 지나가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지.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이미 그건 천국이 아니에요, 그저 일상생활이죠.
친구들이 그래요. '너는 사는 곳이 어떤 곳인지 사진이나 좀 찍어와라.' 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자기들도 마트에 갔을 때 사진 안 찍잖아요. 일상생활에서는요. 그렇잖아요?
놀러나 가야 사진을 찍는 거지요. 여기서 사는데 사진을 왜 찍겠어요, 제가.
그저 일상이죠, 일상.

 

요새 나이든 사람들, 40대 후반쯤 되면 다들 명예퇴직이고 직장을 그만 두고 하니까 등산을 하러 다니는 친구들이 많아요. 제가 휴가 나가서 한국에 가 있으면 산에 가자고 해요.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산에 가자고 해요.

나는 신선한 공기 싫어요, 탁한 공기가 좋아요. 저는 한국에 가면 탁한 공기를 마셨으면 좋겠어요.
밀폐된 공간. 이런 데서요. 어둑어둑하고 조명이 있고 이런 곳이요.
저는 이런 곳이 좋은 데요.신선한 공기는 자기들이나 마시지 저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자고 해요.
여기서 이렇게 많이 마시고 있는데요.

 

지난 7월 KBS 인간극장이라는 프로에서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마이크로네시아)라는 섬에서 18년째 살고있는 김도헌씨(50세)에 대한 이야기를 '남태평양 그남자'라는 소제목으로 방영했다. 그는 목수기술로 배 만드는 일을 하러 그곳에 갔다가, 한국에서 IMF가 터지자 눌러앉았고, 원주민 부족의 추장 딸과 결혼해서 3녀 1남의 4남매를 두고 살고 있다. 마침 한국에서 그곳에 '남태평양 해양연구센터'를 설립하자, 유일한 현지 직원이자 그 관리인으로 일을 하고 있다.

 

위의 대사는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옮겨적은 것이다. 느낌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손질하지 않은 채로.

미국의 아이들 집에 있을 때,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다운받아 보던 중, 위 대사에 진한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할 그런 섬에서 살지만, 그곳에 사는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보링한 일상일 뿐이다. 주노아톰님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하는 것처럼, 세상 어느 곳도 완벽한 곳은 없다는 증거다.

 

나그네에게는 천국처럼 보이는 곳도 그곳에 정착한 순간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탐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 탓이다. 미국 서부에 사는 사람이 동부에 가면 울창한 숲이 부러울 것이고, 동부 사람들이 서부에 가면 따듯한 기후가 탐이 날 수도 있다.

 

미국에 가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비싼 세금이나 보험료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의료시스템을 알 수가 없다. 이민 가서 오래 살았던 분들은 한국의 변화를 이해할 수가 없다. 오직 신문과 방송에서 전하는 내용을 수동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이민 당시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갑남을녀인 보통 사람들이 실수하는 이유는,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욕심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인류를 발전시키고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 미크로네시아의 환상적인 석양의 모습. 세계에서 손꼽히는 광경이라고 한다.

 

▼ 그의 가족이 소유한 섬이다. 가끔씩 돌봐야 하는 것이 귀찮기만(?) 하다고 한다.

 

 ▼ 누군가에게는 한번쯤 살고싶은 아름다운 곳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런 곳이라고 한다.

 

▼ 항상 웃음을 잃지않는 친구 김도헌씨가 가족과 함께 자택에서 포즈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