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내가 만나본 분들 (7) - 골프

(2013년 9월23일에 작성한 글)

 

이민사회에서 골프는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을만큼, 많은 한인들은 골프를 즐긴다.

쉽지 않은 이민생활에 쌓인 스트레스 해소에 골프만한 운동이 없을 뿐더러, 구역회 같은 친목회에서 골프만한 재밌는 공통화제도 드물다. 반스앤노블 같은 대형서점에 가면 골프유머가 한 서가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골프에 관한 화제는 끝이 없다.


대접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골프를 친다면 서슴없이 골프를 제안한다. 이번 미국방문 길에도 ㄱ사장님이 골프를 제안하셨다. 전에 써놓은 글을 읽으셨는지, 뉴저지 모리스 카운티에 있는 유명 퍼블릭 코스인 플랜더스 밸리 골프코스를 예약하는 바람에 유혹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단지 역이민 카페에서 만난 ㄱ사장님을 골프코스에서 처음 뵙고 인사를 나누었지만, 맨몸으로 나타난 나를 위해 직원 클럽을 빌려서 갖고 나오시고 모자에 장갑까지 준비하신 것에 너무 민망했다.


- 대접 받을 때 확실히 받고,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대접할 기회가 된다면 그때 그 사람에게 대접하면 되는 겁니다. ㅎㅎㅎ


ㄱ사장님이 면목이 없어 송구스러워하는 나에게 한 말이다.


골프 자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걷고 운동하는 것은 좋아해서 워킹이 가능한 코스에서는 카트를 타고 플레이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나는 내기를 지독히 싫어한다. 도통 다른 것에 신경쓰이는 것이 싫은 것이다. 고스톱도 치고 포카나 내기 바둑도 즐기지만, 골프에서 내기하는 것은 나와는 맞지 않는다.


ㄱ사장님은 65세로 하던 사업체를 정리 중이라고 했다. 2년 후에는 한국에 돌아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은퇴생활을 준비하고 계셨다. 또 대부분의 역거주를 계획하는 분들 처럼,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지내고자 하신다.


미국 경기가 안 좋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플랜더스 같은 코스를 '아웃오브 카운티' 사람들에게도 트와이라잇 세일을 한다고 하니 말이다. 내가 뉴저지에 살았을 때는 어림도 없던 이야기다. 하다못해 골프용품도 많이 싸졌다고도 했다.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후배 하나가 한국과 사업을 하면서 만나는 한국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 손님용 골프채를 준비했다는데, 그 싼 가격에 놀랐다. 미국에서는 대표적 중산층 엔터테인먼트인 골프도 즐기기 힘들어졌다는 증거일 게다.


- 여기는 골프 치기가 참 좋아. 5~6천 피트 고지대라 날씨가 선선하거든. 이곳은 주중에도 4~50불은 하는 세미 프라이빗 코스야. 그런데 경기가 안 좋아지니까 텅텅 비는 거야. 여기 골프모임이 있는데 회원이 20명 쯤 되거든. 그 회장이 클럽하우스에 가서 딜을 했어. 캐쉬로 만 불을 주고 라운딩 티켓 천 장을 산거야. 골프장은 이 불경기에 만 불이 어디야? 회원들은 일 인당 500불을 내고 마음대로 치는 거야. 하루종일 몇 라운드를 치든 말을 안 해.


엘에이의 빅토빌에선 10불 짜리 골프 라운딩을 한다고 해서 놀라 되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불경기로 서민들은 골프도 마음대로 가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졌지만, 여유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그게 세상이다. 세상은 어차피 불공평한 것이니까.


- 이 곳에서도 골프장과 딜을 합니다. 한 달에 100불을 내면 그 달은 마음대로 플레이합니다. 다음 달에도 100불을 내고 마음대로 치고 그랬는데, 최근에는 경기가 다시 좋아졌는지 그 제도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중간에 쉬게 되면 그 자격이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스트레이트로 계속 매달 100불을 내고 자격을 유지해야 하는 거지요.


콜로라도 덴버에서 만났던 친구의 친구인 S가 후터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내게 했던 말이다. 동부인 뉴저지, 서부인 캘리포니아, 중서부인 콜로라도 어디든 형태와 방법만 다를 뿐, 골프 세일이 있다는 거다.


- 골프 안 친지 오래 되었어. 몇 년 동안 안 했으니까, 이제 골프는 끊은 거나 다름 없어. 옛날에는 정말 많이 쳤는데,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지다 보니까, 옛날 같이 치던 친구들이 연락을 해도 거절하게 되더라구. 몇 번 거절하다 보니까 이제는 연락도 안 오고, 그러니 라운딩할 기회를 잃어버린 거지. 그렇다고 혼자 나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칠 정도는 아니니까. 나, 클럽만 대 여섯번 바꿨잖아. 이제 그 클럽도 필요없을 것 같아 팔아버리려고 하니까, 마누라가 팔지 못하게 하는 거야, ㅎㅎㅎ. 옛날에는 그렇게 골프치러 가는 거 싫어하더니 말야.


지지난 토요일 엘에이에서 제주를 방문한 동서의 말이다.


지난 8월 초, 달라스에서 만났던 플레노님은 1시에 골프약속이 있다면 점심을 들던 레스토랑에서 총총히 나갔다. 100도가 훨씬 넘는 한낮의 땡볕에 골프라니!


그 열성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 ㄱ사장님이 퍼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뉴욕컨트리클럽이라는 곳인데, 경치를 비롯해 모든 것이 다 좋았다. 내 골프실력만 빼고.


▼ 아라몰라님의 멋진 드라이브 샷. 아마 이 날의 베스트 플레이어이었을 듯.


▼ 하얀물결님(좌측)과 야누스님(우측)과 함께 멋진 배경을 뒤로 해서 기념촬영 한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