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내가 만나본 분들 (6)

(2013년 9월11일에 작성한 글)

 

나는 그 분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줄 알았다.


2009년 7월 우여곡절 끝에 이주한 LA에서 몇 개월이 안 되어 크게 실망스러운 일을 겪고나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중앙일보 블로그에 글을 썼던 2010년부터 제 글을 따라오신 분도 있었지만, '역이민'을 실천한 사람을 만나 직접 궁금한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하는 줄 알았다. 많지도 않은 나이에, 빠듯한 돈을 가지고 제주에서 은퇴생활을 하는 나에게 생활비는 얼마나 드는지, 어떻게 소일을 하는지, 후회는 하지 않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내 놓은 자식이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결혼날짜에 임박해서 손님처럼 - 사실은 글자 그대로 손님이었지만 - 사돈 될 분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미리감치 가서 예비사돈을 만난 덕분에 시간이 남아 돌았다. 무언가 일을 하며 소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여의치 않았다. 해서 이왕 온 것이니 별 볼일 없는 사람이지만,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다면 직접 찾아가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처음 보는 분들이었지만, 이 카페를 통해서 쓴 글을 읽고 댓글과 답글을 주고 받아서 그런지 처음 보는 분들 같지 않았고, 또 대화도 쉽게 이어졌다. 아니, 어떤 분들은 마치 오랜 친분이 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글로 오랫동안 만나서 그런지, 상상 이상으로 친근하게 대해 주시는 통에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지난 몇 년간의 수고가 헛된 것은 아니라는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역이민 카페에 들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올라온 글이 없으면 허전하기도 합니다. 허허허


어쨋든 내가 만나본 분들 대부분은 애초의 내 생각과 크게 달랐다. 그분은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려고 했다. 나보다 늦게 이민을 오신 분도 있었고, 30년이 훨씬 넘는 분들도 있었다. 가족이민으로 오신 분도 있었지만, 무작정 와서 눌러앉은 분도 있었다. 이민 브로커에 속아서 오신 분도 있었고, 엔지니어로 소시민으로 사시는 분이나, 음식점을 또는 사업을 하시는 분도 있었으며 소위 아메리카 드림을 이룬 분도 있었다. 이민의 사연도 다 틀리고,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방법도 다 틀리지만, 그 분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했다.


3~4년 전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나도 그랬었다. 외로웠고, 방황했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었고, 이야기하며 무엇을 잘했고 잘못했는지 따져보고 싶었고 평가받고 싶기도 했다. 아니,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레이오프 당한 후, 서바이벌에 실패해서 당황하고 있었던 내 처지만 그 분들과 다른 뿐, 다른 감정은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민생활은 외롭고 고달픈 여정이다. 특히 이민 1세대는 더 그렇다. 일에 전념하든가, 돈 버는데 골똘하든가, 골프에 미치든가, 무엇에든 빠져서 그 고달픔과 외로움을 잊고 살아야 한다. 어쩌다 한가한 시간이 나면 불안해진다. 내가 이래도 되나? 잔디라도 깎아야하는 것 아닌가? 무언가 할 일이 있는데 잊고 있는 건 아닌가?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을 텐데, 아니 영어라도 더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분들이 내 변변치 않은 글을 읽으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라는 공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아니 다소나마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쓴 듀크라면, 자신의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해서, 자신들이 잘못 살지는 않았다는 위로를 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많은 분들로부터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분하고도 영광스러운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분들의 이야기 하나하나는 모두 다큐멘터리인 동시에 픽션이었고, 감동, 고통, 인내, 상실, 극복, 기쁨과 행복, 즉 희노애락이 있는 스토리였다. 하나같이 고이 새겨들을 가치가 있었지만,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내게 문제가 있어서 다 기억해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후기>

내게는 정말 귀하고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는 마음이 짠해져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고, 어떤 이야기는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고 반성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천재에 가까운 로로로님의 스토리는 듣는 내내 유쾌하게 웃지 않을 수 없었고, LA에서 하룻밤 재워주신 갈대님의 처음 들어보는 스토리는 공감과 재미가 있었으며, 이민 브로커와 변호사, 동업자 등에게 그렇게 당한 일들을 소탈한 마음으로 전해주신 Ernest님에게는 존경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이민 1세대가 있었기에, 우리의 아이들은 그 땅에서 보다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것이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