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내가 만나본 분들 (8) - 강목수

(2013년 9월24일에 작성한 글)

 

- 지금 내 나이 76세인데, 내가 그 글을 쓴 것이 환갑 때니까  16년이 되었네요. 그 글 때문에 신문사와 여성지 등 인터뷰도 많이 했습니다. 어디선가는 영화로 만들겠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3국을 돌아다니며 촬영을 해야 하니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며 포기했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해 8월 '강목수 스토리'란 제목으로 '내가 경험한 이민생활'란에 13회에 걸쳐 연재한 적이 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이민생활 초창기에 인터넷 상에 떠도는 재밌는 이야기를 갈무리해둔 것이 있었는데, 그걸 컴퓨터에서 발견하고 원작자의 허락도 없이 연재를 한 것이었는다. 당시 많은 분들이 실감나는 이야기 전개에 흥미 있어 했으며 댓글도 많이 달렸었다.


이 분을 만난 것은 뉴저지 킹 사우나에서 민망한 모습으로 잠깐 동안이었다. 화통한 성격의 GBA님이 아이들 집에서 초췌하게 지내는 내 모습이 안스러웠는지, 어느 토요일 아침에 나를 불러내 플러싱으로 향했다. 발 맛사지를 받으러 간다는 말에 멋적으면서도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따라 나섰다. 절대 퇴폐 행위를 하는 곳은 아니라는 말로 멋적어하는 나를 안심시켰다.


회사 현역시절 출장으로 간 중국 텐진에서 발마사지를 받아보긴 했지만, 인건비 비싼 미국에서 발마사지를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두 시간 넘게 발과 등이 분에 넘치는 호강을 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이 마사지 효과는 잘 알지 못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텐진에서 받았던 2불 짜리 발마사지가 훨씬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GBA님 서운해 하지 마시기를. 그날 정말 고마웠습니다.)


플러싱은 완전 중국인의 거리가 되어 있었다. 휴일날의 명동거리를 연상케 할만큼 숱한 인파로 넘쳐나고 있었고, 주위에서 들리는 소음과 눈에 들어오는 글씨들은 영어보다는 중국말이 대부분이었다. 점심과 커피를 마시고 거리를 걸으며, GBA님으로부터 건설노조(유니온) 이야기며, 건축일 등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뉴저지로 돌아와선 킹사우나에서 휴식을 즐겼다. 킹사우나는 내가 뉴저지에 살던 지난 날 보다 리노베이션이 되어 크게 변해 있었다. 곳곳의 찜질방이며 불가마와 휴식공간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심심찮게 즐길 수 있는 시설이었다. 9시가 가까운 늦은 저녁이 되자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고, 이제 나갈 때라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샤워를 하는 참이었다.


- 듀크씨, 저기 강목수 스토리의 주인공 강신목 씨가 있어요. 가서 만나 보세요. 지금 나가려고 하시니까 빨리 나오세요.


GBA의 느닷없는 호출에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벌거벗은 몸으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있는 강신목 선생님을 목욕탕 입구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다.^^


차림이 차림인만큼 간단하게 소개와 인사를 드리고, 허락도 없이 글을 옮겨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자, 괜찮다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는데, 그 모습에서 넉넉한 인생 후반부의 모습이 보였다. 한국에서 두어 달 지내다가 오늘 돌아왔다는 말을 하셨다. 작은 몸집으로 왜소하지만, 76세라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미국을 왔다갔다하며 지낼 수 있는 건강이 있으신 거다. 뉴욕은 서부의 LA 보다 서너 시간은 더 걸린다.


강선생은 GBA의 큰 형님과 친구 사이라고 하는데, 그토록 어려운 인생여정을 거쳤지만, 지금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것도 항상 인자하고 넉넉한 웃음을 잃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