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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거짓과 기만 (4)

4.


- 야, 이 새끼! 군대 가더니 또라이 됐네. 그 똘똘하던 듀크는 어디 가고 어디서 꼴통이 되어 나타났네.


친구들이 면회 온 바람에 외출 나와, 부대근처 주막집에 자리를 잡고 소주를 마시며 회포를 풀고 있을 때, 광주사태를 운운하며 전두환 보안사령관에 대해 욕을 해대던 친구들에게, 내가 전두환을 옹호하자 친구들이 난리를 쳤다. - 주막 주인이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가라고 쫓아내기도 했었다. 하하하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이란 의미) 전두환이란 인물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군대 시절이다. 서부전선 25사단 포병대대 PX에서 전우신문에 게재된 그에 대한 글을 읽었다. 34년 전 이맘 때이었을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늦게 입대한 군에서, 아마 쫄병을 겨우 면할 때이어서 그 정도 여유는 부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전우신문 전 페이지에 걸친 그의 인물평을 보면 한마디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시절부터 보안사령관에서 계엄사령관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영웅이 바로 전두환이었다. '조폭 두목 살인자 전두환'을 민족의 영웅이라고 여긴 착시현상은, 일방적으로 전해지는 원웨이 소통 외에 다른 정보는 접할 수 없었던 시절, 신문이라는 형식을 빌어 활자로 된 거짓에 기만당한 때문이었다.


학창시절, 역사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유도 잘 모른 채, 무슨 일이 언제 일어났는지 연대기를 외우기만 했던 역사공부는 지겹기만 했고, 국사도 지겨운데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는 왜 배워야 하는지 따질 수만 있으면 따지고 싶었다. 시간이 오래 되어 대부분 거의 잊었지만, 아직도 많은 것들을 기억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의 건국연대와 패망연도 같은 것들. 참, 쓸데 없는 것들을 많이도 머리에 넣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돌아와서 남아도는 시간에 지난 세월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 역이민의 된 결정적 계기가 된 2008년 경제위기에 대해서도 조사해보았고, 그 원인이라고 지목된 '서브 프라임'에 대해 알아보았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도입된 배경에는 '911'로 인한 경기침체가 있었고, 911이 일어난 배경에는 수많은 스토리가 존재했다. 팔레스타인, 유태인, 이스라엘, 자본주의, 전쟁, 침략과 학살, 종교, 제국주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거짓과 기만.


알고 싶은 것들이 점점 많아진 덕분에, 옛날에는 그토록 재미가 없던 지나간 옛날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라는 것은 '거짓과 기만'의 기록이었고,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투쟁의 기록이었으며, 민중의 저항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갈등과 모순은 이미 과거에서부터 있었던 일로, 현재는 과거와 단절되지 않고 연속된다는 사실이었다.


종교를 예로 들어보자. - 종교를 예로 드는 것은, 문제를 가장 쉽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천주교의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았지만, 종교 문외한인 내가 종교를 평가할만한 자격이 없으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에 기초할 뿐이다.


개신교는 16세기 초, 독일의 신부 마르틴 루터가 95개의 반박문으로 로마 교황청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므로써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수많은 요인이 있지만, 두 가지만 언급한다면 백년 전에 쿠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술과 로마가 웅장하고 화려한 성당건축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한 면죄부 판매를 들 수 있다.


인쇄술이 있기 전의 모든 성서는 필사로 기록되어 일반 신자들이 접할 수가 없던 것이었다. 성경은 교회에서 신부가 읽어주는 대로, 해석해주는 대로 듣기만 하는 것이었다. 즉 원웨이 소통이었다. 인쇄술에 의해 성서가 보급되어 일반 신자가 읽을 수 있게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스스로 성서를 읽고 해석해서 로마 카톨릭의 부패를 비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교회의 신부가 일방적으로 전하는 강론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성베드로 성당, 피렌체 성당 등 15~6세기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의 위용을 갖춘 웅장하고 화려한 성당들이 지어졌다. 흔들리는 신자들의 신심을 붙잡기 위해, 외형적인 면에 치중했고, 그 결과 재정이 파탄나고, 그 파탄난 재정을 메꾸려고 면죄부를 팔았다.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해서, 교회의 비리나 목회자의 부정이 낱낱이 전파되고 있고, 개신교들은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를 경쟁하듯 지으며 건축헌금에 적힌 숫자를 신앙심의 크기로 경쟁시키고, 세습을 일삼고 있다. 세월만 지났을 뿐, 세속에서 하는 '거짓과 기만'은 비슷하다.


이슬람이라는 단어는 '복종'의 의미를 가졌다. '신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이슬람은 무함마드를 예언자로 하는 종교로, 기독교 불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다. 유일신 사상을 가진 종교는 기독교와 이슬람이다. 세상에 유일신이 둘이 있을 수 없다면, 22억의 기독교인(모든 종파 포함)과 15억의 무슬림 중 어느 한 쪽은 기만당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슬람은 알라 이외에는 다른 신은 없다고 믿는 유일신 종교이며, 이슬람 교도들은 서로 싸워서는 안 된다고 경전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도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 서로 싸우고 살인을 하고 있다. 개신교가 천주교의 박해를 피해 유럽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세계로 이주한 것 처럼, 인간들은 자신의 영역 안에서 자신의 종교를 지키며 평화롭게 살도록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종교가 서로 유일신 사상을 고집하며, 이교도들에 대한 전도를 신앙의 사명으로 생각하는 한, 지구상에서 종교를 명목으로 한 갈등과 싸움은 숙명일 수 밖에 없다.


왜, 인간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의 신념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가?


그것은, 일방적인 원웨이 소통에 의해 형성된 '거짓'에 '기만'당한 때문이 아닐까?


한번쯤은 가져볼만한 의문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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