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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행복과 성공

행복한 삶이란 성공한 삶일까? 아니면 성공하면 인생이 행복해질까? 오늘의 화두(話頭)다


미국 독립선언서에 채택한 '인간의 3대 권리'는 생명(Life), 자유(Liberty) 그리고 행복추구권(Pursuit of Happiness)이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산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을까? 그렇게 중요한 행복을 학교에서 배운 적이나 있었나?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목표인 행복에 대해, 가정이나, 학교나, 사회로부터 제대로 배운 적이 있었나?


부모에게 배운 가르침은 공부 열심히 해서 잘 살라는 것이었다. 내가 너 보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또 그 말을 내 자식들에게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반복하며 살았다. 학교에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좋은 성적을 받으라고 가르친다. 정답을 모를 때는 어떻게 답을 고르라는 천기누설(?)까지도 태연하게 가르치지만 막상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가르침도 없었다.


자기 자식의 성적을 올려주는 선생이 최고의 선생이 된다. 아이의 인간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의 인격을 키워주는 선생에는 관심이 없고, 영어나 수학성적 올려주는 선생이 가장 훌륭하고 뛰어난 선생이 되는 세상이다. 그렇게 되서 좋은 학교에 보낸 부모는 떳떳하고, 그것에 실패한 부모는 주눅이 든다. 자녀가 대기업에 취직한 부모는 자식의 직업을 떳떳하게 말하지만, 그렇지 못한 부모은 누가 자식이 뭐하는지 물으면 죄인이라도 된양 얼버무린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부모은 아이들이 유치원 때부터 영어교육에 목을 맨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미래가 구차해지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이 다음에 잘 살라는 말은 들어도 행복하게 살라는 말은 별로 듣지 못한다. 결혼식장에서나 듣는 말이다. '부디 오래도록 행복하세요!'. 새해의 덕담도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지만, '복 많이 받으세요!', '부자 되세요!', '돈 많이 버세요!', '소원성취하세요!'다. '더 행복한 한 해가 되세요!'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의 삶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지, '돈'이 아니다. 돈은 행복의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세상은 돈만 가지면, 성공할 수 있고, 성공만 하면 행복도 쟁취할 수 있다고, 가정에서, 학교에서, TV 광고에서, 연속극에서, 신문에서, 뉴스에서, 온 세상이 혼연일체가 되어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세뇌한다.


왜 그럴까?


핵심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와의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주장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자본가들은 자신의 기득권에 높고 강한 울타리를 친다. 일반 서민이 그들과 같은 레벨에 다다른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힘들다는 말을 믿는 사람은 요즘에는 없다. '갑'과 '을'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상식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자본주의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복지정책'을 확대하겠다고 온갖 공약을 하고는, 당선되고 나서는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는 듯 없던 일로 하기에 급급한 정치인들을 보라.


문제는 자본주의가 재수없게(?)도, 민주주의와 동거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가난한 서민들에게 환상을 심어주어, 착각을 불러주어야만, 민주주의 속에서 자본주의가 손해보지 않을 수 있다. '너희들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나처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를 자본의 뜻대로 길들일 수 있다. - 물론 이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줄 안다. 아직도 노력만 하면 기회가 충분하다고 강변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 기회가 계속해서 줄고 있다는 사실에는 대부분 동의하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행복을 가르쳐야 한다. '성공'이 '행복'으로 데려다주는 줄 알았다. 그 차이가 크다는 것을 깨닫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성공을 위해서는 싸워야하지만, 행복을 위해서는 타협해야 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스피킹(Speaking)이 요구되지만, 행복을 위해서는 리스닝(Listening)이 필요하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강제할 수 있으면 해야되지만, 행복을 위해서는 공정해야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독점해야 하고, 이권과 권위가 필요하지만, 행복은 나눔과 평등이 요구되고 가식을 버리고 실속을 차려야 한다.


'돈'도, '성공'도, '복(福)도, '소원성취'도, '건강'까지도 행복을 위해 필요한 도구일뿐, 행복에 걸림돌이 된다면, 한갖 쓰잘데 없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행복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남을 이겨야 하는 경쟁상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미래 행복을 위해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로 보아야 한다. 나보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짓밟고 눌러 올라서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살피고 돌봐야 하는 파트너로 생각해야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겁박해서 쫄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여 타협하고 절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승자와 패자를 갈라 루저를 양산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 모두가 윈-윈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정의 성공이 사회의 성공보다 훨씬 중요함을 가르쳐야 하고, 돈과 미모를 기준으로 배우자를 찾기 보다는 서로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가름하는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 학교에서는 써먹지도 못할 영어 단어나 수학 미적분을 가르칠 게 아니라, 어떻게 남녀가 다르고, 어떻게 부부갈등을 대화로 해소하는지, 그리고 남편노릇, 아내노릇, 아빠노릇, 엄마노릇 등 가정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기술들을 가르쳐야 한다. 


사실 예전에는 이런 지식은 필요없었다. 저절로 알게 되는 기술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크게 변했고 달라졌다. 사회가 복잡화되면서 이런 기본 노릇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기술들을 몰라서 파탄나는 가정들, 그래서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세계 최고의 자살율과 이혼율의 영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제 자녀들에게도 '성공'보다는 '행복'의 가치를 강조해야 할 때가 되었다. 공부만이 행복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지는 않는다.


아이들아, 미안하다! 너희들에게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한 것 이제야 사과한다. 무엇보다 행복하게 살아라. 항상 무엇이 너희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라. 그리고 너희들이 아이를 낳아 키울 때는 절대로, 절대로 공부만 중요한 것 처럼, 강조하지 말거라.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라고 하거라!


<후기>

어제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오신 메이플님 부부와 이곳 저곳을 다녔습니다. 용머리 해안을 들린 다음, 산방산에 있는 절에 들렸습니다. 플랭카드가 걸려있고, 그곳에는 '경축! 강 xx 불자님 아들, 강 oo 씨 삼성전자 전무 승진' 이라고 써 있었습니다. 또 다른 곳에는 '고 아무개, 대검찰청 XX부장 취임'이라는 플랭카드도 있었고.


산방굴사까지 올라가고 다시 내려오는 동안 걸으며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들이 과연 행복할까? 대답은 'Maybe not.'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한 저는 압니다.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 또 앞으로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남들에게 못할 짓을 하고, 손바닥을 비비며 머리를 조아렸을까? 하는 것입니다.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은 '노예'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주인'입니다. 노예의 삶은 아무리 화려하게 보여도 노예일 뿐입니다. 남이 정해주는 시간에 맞춰 일하는 노예보다는 보잘 것 없더라도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사는 사람이 훨씬 행복할 것입니다.


내일이 설날입니다. 제 덕담은 이것입니다.


"금년보다는 내년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십시오!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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