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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회(膾) 이야기

- 나는 아무 거나 잘 먹는 편인데, 회는 정말 싫어. 미끈덩거리는 느낌도 싫고,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어.


지난해 시월 제주를 다녀가신 박 장로님의 말씀이다. 제주도에 오셨으니 저녁으로 값싸고 싱싱한 회를 대접하고자 하는 내 계획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38년 생으로 60년대 말에 미국으로 가신 분이니까, 당시에는 회가 흔한 음식이 아니었을 거고, 회를 접해본 적이 별로 없으니 그 맛을 모르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오신 에드워드 형님도 마찬가지로 회는 싫다고 한다.


회를 처음 접해본 것은 80년대이었던 것 같다. 회사의 높은 분들과 갔던 회식자리에서 처음 맛을 본 음식은 별 맛이 없었다. 맛 보다는 생선을 날로 먹는다는 게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찌게를 하거나 생선구이로 먹는다면 더 맛있을 텐데, 왜 아깝게 날로 먹지?


회의 맛을 처음 배우게 된 것은 노량진 수산시장에서다. 친구들과 어울려 간 노량진 수산시장 한 귀퉁이 길거리에서 아나고 회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다. 무슨 맛으로 이걸 먹느냐는 내 질문에 친구는 입안에서 오래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며, 나 같은 초보자는 아나고 회로 배워야 한다고 아는 척을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그 때도 고소한 맛이 하얀 빛깔을 가진 아나고 육질의 질긴 맛에서 오는지, 싸먹는 깻잎에서 오는지 의문스럽기만 했다.


회의 맛을 본격적으로 알게 된 것은 승진 후 첫 발령지인 동해안 울진에서다. 1986년 8월 말, 무슨 태풍의 영향으로 울진의 바닷가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고, 정전이 되어 음식점들은 대부분 불이 꺼져있었다. 부장님과 선배과장들이 안내한 횟집은 불이 켜져 있었다. 자체 발전기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근에서는 꽤나 큰 집이었다. 초임과장을 위해 고급식당에 자리를 마련한 것이리라. 


거기서 맛보는 회 맛은 특별했다. 달착지근하면서도 부드럽게 혀에 감기는 느낌은 소주를 넘기느라 싸해진 입안에 맞아 떨어져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무지한 탓에 그것이 깨끗한 동해에서 잡아올린 싱싱한 자연산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훨씬 나중에야 알았다.


그때부터 회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의 하나가 되었다. 처가 식구들이 울진에 방문했을 때, 근방에서 가장 좋은 횟집에서 대접했다. 그때 먹어본 회를 장모님은 두고두고 만날 때마다 말씀하셨다. '장 서방 덕분에, 그렇게 회가 맛있는 줄 처음 알았어! 세상에나, 어쩜 그렇게 맛이 있어!'


울진에서의 행복했던 시간은 2년이 채 못되었다. 아마 울진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더라면, 이민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회사에서 주는 사택에서 - 난생 처음으로 해본 아파트 생활 - 연년생 세 아이가 기저귀를 차고 지냈던 그때가 내 인생에서 보석같이 반짝이던 시절이었다. 어쨋든 나는 본사로 발령을 받았고 - 남들은 그렇게도 서울로 가고 싶어했지만, 난 아니었다. 군대에 갔던 것을 제외하면 처음 해보는 지방생활이 너무 좋았었다. - 지옥(?)과도 같은 서울생활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서울에서 먹는 회는 맛이 달랐다. 진흙냄새 비슷한 뻘내가 났고, 씹는 질감은 쫄깃하다기보다 물컹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처음 몇 번 뿐이었다. 먹다보니 물컹거림은 쫄깃함으로 변했고, 뻘내도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내 몸은 동해안을 곧 잊었고, 적자생존을 위해 서울에 재빨리 적응해 갔던 것이다.


이민해서 먹는 회는 아마도 양식은 없지 싶다. 그러나 활어도 아니다. 죽은 생선을 냉동기술로 잘 보존해서 싱싱함을 유지했을 거다. 냉동된 연어나 참치가 많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옐로우 테일'이다. 같은 종류가 한국에서는 '히라쓰'라고 불리는 생선이라고 하는데, 같은 맛이 아니다. 고등어를 식초에 삭힌 것도 애호하는 회 중의 하나다.


지난번 미국방문 때, 코스트코에서 연어를 사다가 회로 먹어보았다. 어느 분인가 이곳에 코스트코에서 산 생선을 회로 먹는 방법을 써놓은 것을 참고했었다. 아이들은 별로라고 했지만, 내게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아이들이 사는 아파트 근처의 '동해수산'에서 먹는 회는 제주의 것과 별 차이가 없는 듯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양식기술의 발달과 소득의 증가로, 회는 대중화된 음식이지만 대부분 양식으로 기른 생선이다. 제주 올레길 4코스를 걷다보면 길 옆에 늘어선 엄청난 규모의 수많은 양식장을 보고 놀라게 된다. 대부분 광어 양식장으로 생선을 제조(?)하는 공장과 같은 곳이다. 


청정해역에서 펌프로 직접 청정 바닷물을 끌어올려 양식해서 자연산과 다름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질감이나 고소함이 자연산과는 다르다.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좁은 장소에 많은 생선을 양식하다 보니 지들끼리 부딪혀 비늘이 떨어지거나 상처가 생겨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항생제를 뿌려댄다는 말도 들었다. 좋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 까다로운 일본에 수출되는 것을 생각하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제주에 살게 되면서 회는 자주 접하기도 하지만, 먹고 싶다는 유혹은 별로다. 세월에 따라 호감도도 변해서 음식에 대한 욕심이 없어져 버린 탓이리라.



<후기>

'Andrew'님이 쓰신 도다리에 대한 글을 보고, 박장로님이 생각났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맛을 모른다면 음식이 아닙니다. 아무리 정성껏 글을 써도, 자신의 생각과 틀리면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면서 왜 이런 글을 올리냐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 것 중의 하나가, 이해하려 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이해할만큼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드디어 깨달은 것이지요. 이해하려는 시도 대신,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회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데, 왜 안 먹지?' 보다는 '아, 그래. 그 시절에는 냉장고도 없었을 때니까 살아있는 회를 먹기가 쉽지 않았을 거야. 나도 처음 회를 접할 때는 맛을 몰랐었지.'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10년 넘게 산 사람이, 영어 하는 게 왜 저 모양이야.'하고 비난하기 보다는,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긴 언어에 소질이 없는 사람도 있겠지' 하고 인정하면 그뿐입니다.


얼마전에 '이민을 위해 찾는 분들에게'라는 글을 썼는데, '이민상담소'도 아닌데 무슨 자격으로 그런 글을 썼느냐는 비난 글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고 인정하기에, 변명을 하거나 답글을 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민상담소'가 아닌 곳에서 이민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서울생활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곳에서 사는 것이 죽도록 싫은 사람도 있지요. 그 비싼 렌트를 내고 차도 없이 살아야 하는 맨하튼 생활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편리한 서울생활을 왜 싫어하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습니다.


이민을 위한 조언을 구한다는 분이 또 있기에 그 때 생각이 났습니다. ^^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 이야말로, 이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분들이 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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