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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거짓과 기만 (2)

사람들이 다 다르게 생긴 것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이요, 사람들이 다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그들이 가진 천성이나 본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천성이 바뀌지 않는 한, 사람들은 타고난 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때로는 타고난 천성이나 본성이 바뀌기도 한다.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종교에 의해서 변하기도 하고, 깊은 공부와 고난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때 바뀌기도 한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거듭난다'고 하고, 불교에서는 '성불(成佛)'이라고 하는 것인가?


- 내는 고등학교 때까지 대구에서 깡패질 했었다 아이가. 맨날 뒷골목 팻거리들과 어울리 댕기며, 아들(아이들)하고 쌈박질이나 하고 당구장이나 드나들며 술이나 퍼대고 그랬지. 그랐는데 2학년 때였나, 그날도 통행금지가 지나 술먹고, 담 넘어서 집으로 들어가는데 안방에 불이 켜졌는기라. 다른 날 같으면 그냥 방으로 들어갈낀데, 그날은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어무이가 뭘 하는가 하고 방문에 귀를 대고 엿들었는기라. 근데, 어무이가 기도를 하는 것 아이가. 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밤새 기도를 하는기라. 그날로 새사람이 되 뿌릿다. 그날부터 공부해서 대구 영대에 디갔거든.


1983년 회사에서 보내준 기업연수로 미국 플로리다에 같이 갔던 ㅂ이 들려준 이야기다. 53년생인 그는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영남대 72학번이었고, 나이를 떠나 퍽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다. 그는 나와 승진 동기로 부정을 싫어했고 일처리가 똑부러졌다. 대기업 이동통신회사의 이사자리까지 갔다가 파벌 싸움에 밀려 퇴직당한 그는,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병을 얻었고 생사가 걸린 수술로 목숨을 건진 후, 하루하루 감사하며 산다는 말을 지지난 해 가을 제주여행 때 만나서 했었다.


연락을 주고 제주를 찾는 분들을 만나기도 하고, 아주 가끔이지만 나를 만나기 위해 오시는 분들도 있기는 하다. 그 분들의 공통점은 조금도 폐를 끼치기 싫어한다는 점이다. 어떤 때는 그 정도가 너무 하다싶어 불편하기조차 하지만, 그래야 그분들이 편하고 천성이 그렇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넘길 수 밖에 없다.


- 대접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는 그냥 아무 소리 말고 받으면 됩니다. 그러다가 또 나중에 대접할 기회가 생기면 그때는 또 대접을 하면 되는 겁니다. 


지난 여름 뉴저지에서 '야누스'님으로부터 신세를 졌다. 48년생으로 통관대행 사업을 하시는 그 분은, 아무 준비도 없는 나를 위해 골프클럽부터 티타임 예약과 - 심지어는 장갑, 신발과 모자도 - 그린피까지 모든 것을 제공했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그린피는 내겠다고 고집했으나, 그분이 한사코 만류하며 하신 말씀이다. 대접을 받기만 하고 줄 기회에조차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나는 본성이 그런 놈인가 보다.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품성이 있다는 말을 하려다 이야기가 제목과는 많이 다른 곳으로 샜다.


사람의 타고난 성품이 공자(孔子)나 맹자(孟子)의 주장대로 선하게 태어나는지(性善設), 순자의 주장 처럼 악하게 태아나는지는(性惡設) 알 수 없지만, 좋게 바뀌든, 나쁘게 바뀌든 사람의 천성은 어떤 중대한 사건을 만나 바뀌기도 한다. 교육은 사람을 본성을 좋은 쪽으로 순화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믿는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과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율을 갖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온갖 비열한 사건들은 왜 일어나는걸까?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아닐까? 세상살이에 별 필요도 없는 미적분을 공부하고, 미국인도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영어단어를 외우느라 인간성에 대한 교육이나 윤리에 대한 교육은 소홀한 것이 아닌가? 아니면 시스템의 문제인가?


우리는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에,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에 살고 있다. 경제는 살아가는데 필수요소인 의식주를 해결해주지만, 정치는 그 어느 한 가지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즉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것은 자본에게 공정한 경제이지, 인간에게 평등한 정치가 아니다. 자본주의란 다 아다시피 돈이 돈을 벌어주는 세상으로, 저절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는 지극히 불공평한 세상이다.


'민주주의'의 궁극적 목표는 다수가 행복한 사회다. 그것을 위해서 머리가 좋건 나쁘건, 돈이 많든 적든,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한 사람에게 하나의 투표권을 보장한다. 즉,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그 천성이 모순이다. 이 모순이 거짓을 낳는다. 그리고 대중을 기만한다. 뜻은 자본, 즉 '돈'에 있지만 현실은 정치라는 평등이라는 '이념'에 구속되어 있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자본이 정치와 결탁하는 이유는 하나 뿐이다. 자신을 규제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을 자신의 편으로 붙잡아 두려는 것이다. 규제를 하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진 돈만큼 평등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가진만큼의 권력자가 된다. 정치가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자본은 기득권을 유지하고 더 많은 자본을 얻기 위하여 '권력'이 필요하다. 그들이 협력하는 사이에,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


레이건과 부시정부의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 컵을 피라미드 형태로 쌓아놓고 맨 위 컵에 물을 부으면 넘친 물은 아래에 놓인 컵들을 차례차례 채워나간다는 것으로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면 가난한 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이론)나 MB나 박근혜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공약이 서민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대표적인 거짓이고 선거에서 이기기위한 기만책이다.


지난 해 10월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가 충격적이다. 10억만 주어진다면 죄를 짓고 감옥에서 1년 정도 살 생각이 있다는 응답이 초등생 16%, 중학생 33%, 고등학생 47% 가 나왔다고 한다. 한국의 교육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한 눈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아마 대학생까지 설문조사를 했다면 50%가 훨씬 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교육을 받을수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에 더 가치를 두는 극단적인 배금주의를 보여준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사회인이 되면 '돈'을 좇아 얼마나 '거짓'을 말하고 사람들을 얼마나 '기만'할까?


박근혜 정부가 목동과 잠실에 행복주택설립추진이 거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딛혔다고 한다. 명목상 반대이유는 인구과밀에 따른 교통난이라고 하지만, 실제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질까 염려한 것이다. 경제적 이해타산에 도덕도 양심도 사라진 것이다. 어른들이 이럴진데, 배금사상에 찌든 아이들만 탓할 수도 없다. 그 어른에 그 아이들이다.


남북한 경제력 차이는 40배(2년전 GNI, 국민총소득 기준)이고, 일인당 국민소득은 20배 차이가 난다. 서너 배 차이가 난다면 몰라도 이런 지경에 어느 누가 북한을 추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도 종북몰이가 판을 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같은 동포로서 불쌍하다고 연민하면 '종북'이라고 매도한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통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어느새 '종북'으로 몰린다. 정말 사실인지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토론하자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빨갱이'라고 몰아세운다.


민족을 분열로 몰고가더라도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위정자들이 만든 프레임에 갇힌 것이 아닐까? 왜? 한국에는 '간첩'들이 있어야만 유지가 되는 조직이 있고, 종북이 있다고 사람들을 겁박해야만 권력을 차지할 수 있는 위정자들이 있으니까. 그래야만 자본주의가 더 단단해지고, 세세손손 기득권을 누릴 수 있으니까. 집값 거품이 유지가 되니까. 내 맘대로 임대료를 올려받을 수 있으니까. 그 이유는 수없이 많다. 그렇게 '기만' 당한 사람들이 '종북'을 말하고 있다.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다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속 시원한 소리다. 그것을 가지고 통일이 노름이니 뭐니 험담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정말이지 200% 동의하고 싶다. 그러나 도박판도 아니고 대박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운도 따라야 하지만, 그에 걸맞는 투자와 노력이 있을 때만이 소위 '대박'이 난다. 그러나 그런 투자와 노력을 하고자 하면 그것은 '종북'이라고 불리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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