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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영화 '변호인'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잘 알지 못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그가 죽고 난 이후이었다.

 

2002년 말,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뉴스를 미국에서 보고, 참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3김'도 아니고 지명도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되었지? 거 참, 신기하네! 하고 말이다. 당시만해도 내 이민생활은 순조로웠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꿈에서조차 하지 않았다.

 

2009년 초, 회사에서 레이오프가 되고 난 후, 미국은 망할 듯 시끄러웠고, 내 자신은 미국에서 서바이벌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당황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그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것도 자살로.

 

아니,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자살을 한단 말인가! 그것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면 거의 제왕이나 다름없는 막강한 권력을 지녔을 텐데! 대한민국에서는 일개 공기업의 사장만 해도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가졌는지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아니 사장은커녕 부장만 해도, 그 하늘을 찌를듯한 권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뼈저리게 경험했던 내가 아니던가?

 

그때부터 노무현에 대한 내 공부(?)가 시작되었다. 어차피 레이오프가 되어 남는 것은 시간 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모든 자료를 인터넷에서 구해서 읽었고 또 보았다. 내가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섭렵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알아갈수록 놀라움은 커졌고 그런 인물이 대한민국에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으며, 그런 기적을 한국국민들이 이루었다는 것에 감격했고, 한국에 남아 그런 기적에 동참할 기회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쉽게 생각되었다.

 

그는 내가 알고 있었던 단순한 '5공 청문회 스타'가 아니었다. 그는 올바르지 않은 것에 굽힐 줄을 몰랐고, 불의와 타협할 줄을 몰랐다. 국가와 민족의 이익 앞에서는 자신의 신념도 양보했지만, 민주주의와 통일이라는 큰 명제 앞에서는 어떤 타협도 불사했다. 권위와 위선만이 가득한 곳에서 누려야 할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했고 가식을 버렸다. 그래서 그는 기득권으로부터 철저히 배격을 당했고 엄청난 폭거를 당해야만 했다.

 

그에 대한 공부는 '정치가 무엇'인지 알게 했다. 2009년의 내 상황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깨닫게 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원인이 된 미국경제위기가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이해했고, 부시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고는,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다.

 

영화 '변호인'에서 그는 외친다. '이라믄 안 되는 거잖아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가 곧 국민이다! 그런데 '이라믄 안 되는 거잖아요!'

 

내게 그와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면 나는 그렇게 했을까? 절대 아니었다. 나는 '돈 잘 버는 변호사'에 만족했을 테고, 국밥집 아줌마에게 약간의 미안한 감정이 있을지는 몰라도, 절대로 그런 돈 안 되는 일에 나서는 일은 없었을 거였다. 그것도 30대 한참 젊고 잘 나갔을 때에는. 왜? 천성이 졸장부로서 편한 아스파트 대로를 두고 가시밭길을 스스로 걸어들어갈만큼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으니까.

 

1981년. 나는 그때 직장에 다니며 내가 처한 현실에 만족하고 있었다. 전두환이 해외순방이라도 다녀오면, 회사에서 강제 동원한 환영인파로 끌려나가 여의도 광장 한쪽에서 코흘리개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전두환이가 탄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몇 시간이나 기다리다고 지나가는 검은 승용차에 수많은 인파 속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검은 양복을 입을 사람들에게 내 소속과 이름을 확인 받았었다. 선량한 사람을 고문과 허위자백으로 빨갱이로 몰아야만 유지되는 독재정권임을 몰랐던 찌질이의 삶은 그랬었다.

 

그리고 2013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 그때와는 조금은 달라졌다. 지금의 정부는 반대자들을 '종북몰이'로 종북으로 몰아야만 유지되는 정부라는 것을 안다. 그게 차이다. 32년 전인 1981년과.

 

"이라믄, 안 되는 거잖아요!"

 

<후기>

어제 12월 30일부로 관객 500만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12월 19일에 개봉했으니까 12만에 달성한 기록으로, 최고 흥행작인 '아바타' 기록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저는 지난 일요일인 29일에 동네에서 가까운 극장을 찾아가 관람했습니다. 한국생활 3년만에 돈 내고 본 첫 영화이었습니다. - 부끄럽지만, 대부분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집에서 보는 것이지요.

런닝타임 127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빠졌습니다. 보는 내내 가슴이 뭉클했고,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웠습니다. 그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그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학법도 원안대로 개정할 수 있었고, 경제민주화도 이룰 수 있었고, 악법도 더 많이 개정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 너무 많이 귀를 기울이고 양보를 했기 때문에 그걸 못했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니까요.

이 시대를 사는 많은 한국사람들은 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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