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거짓과 기만 (1)

중국의 신화통신이 '세계 8대 굴욕사건'의 하나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을 꼽았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망신스런 뉴스를 제공한 윤창중 사건의 피해자는 'Korea'와 모든 'Korean'이 되겠지만, 엉뚱한 피해자가 또 있었다. 그야말로 엉뚱한 피해자다.

 

구자범이라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가 있다. 1970년 생인 그는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철학도로서, 독일 만하임 음대 대학원에 진학하고, 학부에서 음악을 전공하지 않고도 수석으로 졸업한 후, 지휘자의 길로 들어선 인물이다. 세계 정상급인 독일 하노버 국립 오페라 상임수석 지위자의 지위를 박차고 2009년 홀연히 귀국하여 광주시립 교향악단을 맡는다.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30000000088/3/70030000000088/20030812/7972949/1 과 

http://pourtant.tistory.com/324 참조)

 

2011년 국내 3대 오케스트라의 하나인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단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금년 '윤창중 광풍'이 휘몰아칠 때 제대로 변명도 한 번 못하고 사표를 낸다.

 

<5월 17일 점심식사 도중 “지난 연주회 때 팬티가 하얀색인 것을 봤다” 발언 (한겨레신문)>
<5월 18일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자위 해봤느냐” 발언 (조선일보)>
<5월 18일 점심식사 자리에서 “지난 연주회 때 팬티가 하얀색인 것을 봤다”발언 (17일 문화일보/18일 세계일보)>
<5월 18일 점심 회식자리에서 “팬티를 봤다” “00를 해 본 적 있느냐” 발언 (18일 한국일보)>

 

그가 성희롱을 했다는 주요 신문의 기사내용이다. (참조: http://www.factoll.com/2013/05/%EC%84%B1%ED%9D%AC%EB%A1%B1%EC%9D%84-%ED%96%88%EB%8A%94%EB%8D%B0-%ED%8C%A9%ED%8A%B8%EA%B0%80-%EC%A0%9C%EA%B0%81%EA%B0%81-%EB%8F%84%EB%8C%80%EC%B2%B4-%EB%AD%90%EA%B0%80-%EB%A7%9E%EB%8A%94%EA%B1%B0/ )

 

당시에는 윤창중 사건이 온 매스컴에 도배가 되다시피 하고 있을 때이었다. 유사한 사례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던 기자들에게 구자범씨 사례가 포착되었고, 사실유무 확인절차도 없이 중부일보라는 지방신문에 실린 사실여부가 불분명한 기사를 주요 신문들이 퍼날랐다. 그리고 성희롱 사건에 연루된 구자범씨는 태풍 속의 찻잔 처럼 변명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음악계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5월 17일 최초 기사를 실은 중부일보에 의하면, 5월 9일 (윤창중이 미국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성희롱을 저지른 같은 날) 오케스트라 단원 6명과 점심식사를 하던 중, "지난 연주회 때 네 팬티가 하얀색인 것을 보았다." 고 했으며, "네 휴대폰을 보니 예쁜 친구가 많더라. 소개해주지 않으면 네 연봉이 깎이거나 잘릴 수도 있다."라는 저질 발언을 했다는 거다.

 

구씨는 바로 사표를 냈으나, 경기도에서는 구씨의 인격을 믿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를 보호하려 노력했지만,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그의 사표를 6월 9일 수리할 수 밖에 없었다. (http://m.joongboo.com/articleView.html?idxno=857798 참조)

 

그동안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있던 구자범씨가 지난 11월 말,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신문들을 상대로 수원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한다. 고소장에 기술한 그의 변명을 들어보자.

 

- 연주회에서 여성단원은 보통 바지를 입거나, 드레스를 입기 때문에 팬티를 볼 수가 없다.

 

- 문제가 된 여성단원은 연습시간에 늦거나 빠지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연주중지의 징계를 준 일로 감정이 좋지 않아,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을 신문들이 아무런 확인도 없이 게재하여 개인의 명예가 심각하게 손상을 입었다.

 

사람들은 활자로 된 것을 믿는 경향이 있다. 더우기 신문에 난 것이라면 광고도 믿는 판에,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조중동을 폄하하는 사람들도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는 신뢰한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한겨레신문이 거의 찌라시 수준의 저질신문 역할에 앞장 섰다. 허리 밑의 일에 관심이 폭발하는 대중의 기호에 맞추기 급급했던 것이다.

 

나는 본성이나 천성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같이 천성이 단순하고 졸장부인 사람은 죽을 때까지 찌질이 노릇을 할 것이다. 타고난 천성이 바뀌지 않는 한 말이다. 기회주의자는 기회에 따라 처신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철학도 신념도 아무 짝에 쓸모가 없다. 소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소심하게 행동하고, 대범한 사람은 큰 그릇답게 행동한다.

 

윤창중이라는 사람은 그가 해온 언행을 보면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남을 사람이다. 무책임한 허위발언을 하고, 조그만 틈만 보이면 무자비한 발언도 서슴치 않았던 사람이다. 즉, 본성이 그런 사람일 것이라는데 의심이 없다. 그런데 구자범씨는 다르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그가 해온 말과 행동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평가를 보자!

 

- 음악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미학과 존재론을 버렸던 철학도

 

-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해 오랫동안 피워오던 미국산 말보로 담배도 버리고, 즐기던 코카콜라마저 끊어버린 반전 음악가

 

- 거장 윤이상을 존경해 그가 태어난 1917을 휴대폰 번호로 사용하는 젊은 지휘자

 

그가 광주시립 교향악단에서 첫 연주를 마쳤을 때, 어떤 기자의 '유럽에서 고생해서 이룩한 탄탄한 기반을 두고 왜 돌아왔느냐?'고 묻자, 그는 '리허설을 한국말로 하니 참 행복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정명훈 이래 한국에서 배출한 최고의 지휘자로 칭송받던 인물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런 사람이 점심식사를 하는 음식점에서, 그것도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그런 저질발언을 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지난 주에 세 번의 연주회에 참석하면서, 지휘자가 여성연주자의 팬티를 볼 수 있는지 유심히 살폈다. 제주라는 시골 교향악단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여성 연주자들은 바이올린이나 첼로같은 현악을 하든, 플루트같은 관악을 하든 바지를 입거나 검은색의 긴 드레스를 착용해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허위를 기자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듯 무책임하게 기사를 쓸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언론의 태도다. 발행붓수에 기여할 만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듯한 기사는 남발하면서,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파문이 가라앉은 뒤, 명예회복을 위해 고솟장을 낸 것은 어느 신문도 게재하지 않는다.

 

피아노 건반 열 개를 동시에 눌러도 정확하게 그 음들을 짚어내는 천재 음악가가 무책임한 거짓에 무너지게 둘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무책임한 마녀사냥을 너무 길들어 있는 건 아닌가? 냉정한 이성과 차가운 지성을 기반으로 판단하여야만 거짓에 기만되지 않고, 마녀사냥을 멈출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잘못된 것일까?

 

(To be continued)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짓과 기만 (2)  (0) 2014.01.09
영화 '변호인'  (0) 2013.12.31
AK-47 자동소총  (0) 2013.12.25
Rich Man, Poor Man  (0) 2013.12.24
여동생과 조카  (0) 2013.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