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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AK-47 자동소총

AK 소총을 개발한 칼라슈니코프(Mikhail Timofeyevich Kalashnikov, 1919 ~ 2013)가 어제 죽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기계설계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 그는, 탱크병으로 참전했던 제2차세계대전에서 고장이 잦았던 당시 소련군의 개인화기를 보고 고장이 없고 성능 좋은 소총을 개발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물인 AK-47 자동소총이 1947년에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수많은 인간이 이 총에 의해 희생되는 계기가 된다.

 

AK-47 소총의 가장 큰 장점은 '싸다'는 것이다. 부품의 단순화와 두어 가지의 부품을 제외하고는 대량으로 프레스로 찍어내는 생산방식은, 구 소련의 '공산혁명의 세계화 전략'이 중국의 저임금과 맞물리면서 $10 정도의 가격이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성능만은 그렇지 않았다. 가볍고 반동이 적어 여자나 어린 아이도 몇 시간의 훈련으로 쉽게 다룰 수 있고, 정글의 진흙탕이나 사막의 모래폭풍 그리고 시베리아의 혹한 속에서도 고장 없이 성능을 발휘한다.

 

이 무기의 성능이 최고로 발휘된 곳은 베트남이었다. 월남의 정글에서 세계 최강의 무기를 가진 미군을 패퇴시켰는데, 이 총이 충분히 그토록 싼 무기가 아니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계에서 인명을 가장 많이 살상한 무기는 핵무기나 미사일이 아니다, 바로 AK-47 자동 소총이라고 한다. 영화 'Load of War (2005년)'를 보면,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이며 무기 밀매상인 주인공 유리 오를로프(니콜라스 케이지 분)는 무시무시한 말을 한다.

 

- 세계에는 6억정의 개인화기가 유통되고 있는데, 인구로 보면 12명당 1개 꼴이지. 문제는 나머지 11명에게 어떻게 총을 팔아먹느냔 거야.

 

그 6억 정의 개인화기 중에서 1억정이 AK-47 이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이 총이 '닭 한 마리 값'에 거래되고 있고, 시에라리온이나 남수단 같은 나라에서는 반군에게 강제로 끌려간 아이들이 이 총을 사용하여 내전을 치르고 있다.

 

이렇게 숱한 인간을 살상했고, 지금도 살상하고 있는 이 무기를 개발한 인물이 94세까지 장수한 끝에 사망했다고 전한다. 이 총에 죽어간 수많은 희생자의 가족은 이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칼라슈니코프는 AK를 개발한 공로로 사회주의 노동 영웅상, 스탈린상, 레닌상 등을 수상했고, 1994년에는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조국 봉사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서방식 저작권 개념이 없을 당시에 AK를 개발했기 때문에 칼라슈니코프 자신은 개인적인 부를 축적하지 못했고 연금으로 생활해 왔다. 하지만 그 자신은 "돈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AK를 개발했다"며 강한 자부심을 나타냈다고 전한다.

 

또 서방 언론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총기 범람 실태에 책임감을 느끼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는 밤에도 편안하게 잘 잔다"며 "폭력을 가져온 것은 (총이 아니라) 정치인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쨋든 고의든 아니었던 간에 그는 인류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값싼 살인무기의 발명자로, 지난 12월 5일 95세의 나이로 서거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고귀한 인류애 정신과 함께.

 

1915년 경 1억을 돌파한 미국의 인구는 1963년 2억을 넘었고 2006년 3억을 돌파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화기는 전세계가 가진 것의 절반 가량인 3억 정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총기사고는 인구와 함께 증가하는 총기 소유로 점점 빈번하게 발생하고 더 많은 주검을 초래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복잡해져가는 현대사회는 개인의 고독을 심화시켜 '조승희' 같은 괴물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내고 있다. 총 없이도 26명을 살해한 유영철 같은 사람이 미국에 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죽어야 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도, '개인은 스스로 지킬 권리가 있다'라는 미국의 건국이념(수정헌법 2조, 무기휴대의 권리)을 핑계대며 개인의 총기소유를 규제하지 못하게 하고있다.

 

참으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모순과 위선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수정헌법 2조의 내용)

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잘 규율된 민병대(militia)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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