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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마켓팅이 지배하는 세상

2~30년 전, 미국출장을 오가며 아이들 장난감이나 집사람 옷가지 등을 선물로 사가곤 했다. 집에 가서 상품들을 풀러보면, 카드를 작성해서 보내주면 얼마를 리베이트를 해준다는 것이 있었다. 참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살았으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것이. - 졸장부임을 자인하는 이유다. 원래 졸장부들은 작은 이익에 더 집착하는 법이다.


미국에 살면서 처음에는 이런 작은 이익에 집착했으나, 이게 마켓팅에 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떤 때는 더 큰 손해를 보는 경우도 생겼다. 리베이트 종이 밑에 있는 깨알같은 글을 읽지 않은 때문이다. 리베이트를 신청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회원에 가입이 되고, 자동적으로 신용카드에서 멤버십 피가 빠져나가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와보니, 한국도 예전과는 다르게 미국에서 보았던 시스템들이, 아니 그보다 훨씬 발달한 시스템들이 많았다. 마켓마다 회원카드를 발급하고, 캐시어에게 신용카드와 함께 내밀면 캐쉬가 적립이 되기도 하고, 동네 정육점에서는 수시로 소세지나 햄, 돼지 목살 같은 품목을 할인판매한다고 문자가 오기도 한다.


옛날에 '강화도령'이라는 라디오 연속극이 있었다.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이었을 거다. 저녁 8시 무렵, 온 가족이 저녁상을 물리고 엄마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할 무렵, 라디오에서 '강화도령'이라는 멘트가 나오면, 난 부엌의 엄마에게 소리쳤다.


- 엄마, 강화도령 시작하려고 해!


기억 속에만 있는 젊었던 모습의 엄마는 손에 묻은 물도 닦지 않은 채 냉큼 단칸방으로 들어와, 웃목 얕으막한 선반 위에 얹힌 하늘색의 프라스틱 라디오 박스 앞에 쪼그리고 앉아 흘러나오는 연속극 주제가에 귀를 기울였다.


알게 모르게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일방적으로 전해지는 마켓팅에 노출되어 왔다. 우리의 아이들은 더 하다. 그들은 말을 배우기는 커녕 기저귀를 차고 있을 때부터, 칼라풀한 시각적인 효과까지 더해진 마케팅에 노출되어 잠재의식 속에 브랜드와 상품명을 각인시켰다. - 실제 마켓팅 기법에서 노리는 효과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평생 그 브랜드에 충성을 한다.


마켓팅은 시장이란 의미의 마켓에서 왔을 것이다. 즉 마켓팅은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팔기위한 행위이겠으나, 마켓팅이 고도로 발전한 현대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의든, 타의든,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마켓팅에 의해 지배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마켓팅의 정의는 방법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1985년 미국 마켓팅 협회에서 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 마켓팅이란 개인과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교환을 창출하기 위하여 아이디어와 상품 및 서비스를 개념화하고 가격을 매기고, 촉진시키고 분배하는 과정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Marketing is the process of planning and executing the conception, pricing, promotion, and distribution of ideas, goods, and services to create exchanges that satisfy individual and organizational objectives. (American Marketing Association, Marketing News, vol. 19, no. 4, March 1985, p. 1)


이 한 문장만 가지고도 수많은 이론들이 뒤이어 등장하겠지만, 내가 이해하는 마켓팅은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활동을 아우르며,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이 마켓팅 기술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켓팅은 사실이나 진실, 공정이나 정의, 평화나 행복 등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에 바탕을 두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나 소수 집단 혹은 기업이나 특정계층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것도 정권말기의 레임덕 시절이 아닌 대통령 3년차인 2005년에. 그것도 청와대에서 열린 '중소기업 상생협력 시책 점검회의'에서다. 그 어려웠던 시절에도 자신이 생각하는 불의와는 절대 타협하지 않고 정면돌파를 해왔던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되어 자신의 입으로 한 이야기다.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법무팀장으로 일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자신을 구속시키라며, 삼성의 불법자금조성과 자신이 직접 검찰에 뿌려댄 떡값을 폭로했지만, 삼성은 그 뛰어난 마켓팅으로 언론과 검찰을 움직여 자신의 목적을 관철했다. 삼성의 마켓팅 방법은 비자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김용철의 가정과 개인사이었다. 그의 이혼과 전처와의 관계를 부각시켜 엉뚱한 방향으로 세간의 이목을 몰아갔고, 결국 성공했다.


2012년 나는 학원차량을 운전하며 아이들을 실어 날랐다. 운전하지 않는 동안에는 주로 거리를 걷기도 하고, 사람 사는 모습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동네 수퍼, 정육점, 미장원, 빵집 등이 근처에 널렸고, 손님이 없는 한가한 때에 그들은 전부 TV를 보고 있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채널은 대부분 'TV 조선'이나 '채널 A' 같은 종편이었다. 소위 보수언론으로 '종북'을 날조하여 불안을 마켓팅하는 방송이었다.


전통적으로 여당에게 불리했던 제주에서 박근혜 표가 압도적으로 나왔다. 한나라당의 마켓팅이 성공한 것이었다. MB가 최시중을 앞세워 방송통신위원회(미국 FCC를 본딴 KCC)를 만들어, 비상식적인 광고 특혜를 줘가며 만든 종편을 통한 마켓팅은 성공했고, 제주도 사람들은 마켓팅이 이끄는 대로 투표를 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국정원 심리전단 댓글팀과 사이버 사령부 심리전단 팀에서 주도하는 SNS 마켓팅에 의해 후보를 선택했다.  (http://news.khan.co.kr/kh_infographic/kh_storytelling.html 참조)


- 내 친구들이 제약회사에 많아. 그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광고효과를 무시하지 못한다는 거야. 광고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약이 몇 배씩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 한다는 거야.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거지. 그러니 광고를 안 하겠어?


20여년 전, 회사의 높은 분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들었던 말이다. 그분은 소위 서울대를 나온 분이었다.


이번에는 삼성이 광고를 하지 않았지만, 지난 일요일에 열린 슈퍼볼의 30초 짜리 광고가 4백만불이었다고 한다. (원문: This year, the cost of 30 seconds of advertising time during the Super Bowl has soared to $4 million (USD). That's up from $2.9 million in 2010, according to Kantar Media.) 3백만불도(?) 하지 않았던 광고가 불과 4년 만에 30%가 넘게 뛰었다는 것은 그만큼 광고효과 즉 마켓팅 효과가 크다는 것이고, 대중이 마켓팅에 의해 얼마나 심하게 흔들리는지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명품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마켓팅이 얼마나 교묘하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다. - 어렸을 때부터 광고에 노출된 젊은이들이 더 심하다. 확실한 주관이 없을 경우, 마켓팅에 의해 더 많이 흔들린다. 한국에서는 비쌀수록 더 잘 팔린다고 하니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가! 그들은 전문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심리학자, 법률가, 시각 디자인, 통계학자 등 온갖 지식과 과학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이 인간의 약점을 파고들기에 대중은 질 수 밖에 없다.


캐쉬어에 줄을 서보라. 거기에는 $1~2 짜리 껌이나 사탕이 진열되어 있다. 부담없이 살 수 있는 가격대의 상품을 카트에 담도록 당신의 마음을 흔든다. 라스베가스 공항이나 대합실에는 쿼터 대신 니켈이나 페니용 기계들이 더 많이 있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들은 그들의 마켓팅 술책에 기만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마켓팅은 1%가 99%를 움직이는 방법이다. 지금 이 시간도 마켓팅 전략팀, 마켓팅 기획팀 그리고 마켓팅 부서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당신을 어떻게 그들의 뜻대로 생각하게하고 행동하게 할지를 연구하고 있다.


<후기>

안티 마켓팅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1%는 99%를 잘 알고 있는데, 99%는 1%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백번 싸우면 백번 패합니다. 적을 알고 싸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질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어떤 능력있는 분이 나와서, 안티 마켓팅 운동을 일으킨다면 선풍적인 붐을 조성할 수 있을 겁니다. 심리학자, 법률가, 통계학자, 디스플레이어, 디자인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 마켓팅에 넘어가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고 제시하는 거지요.


하하하, 그런 쓸데없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보다 살기좋은 세상을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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