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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노스텔지어의 글 (퍼온 글)

남자는 왜 잡은 고기에게 먹이를 주지 않을까?

12.7.1013.

 

비가 내립니다. 1972년 영국인 Singer-Songwriter Albert Hammond가 발표한 노래 “It Never Rains in Southern California”가 무색할 정도입니다. 올해 들어 처음 내리는 비 같습니다. 캘리포니아는 비가 내리면 겨울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특이한 게 한국과 달리 이곳 사람들은 비가 와도 우산을 잘 쓰지 않고 돌아다닙니다. 비가 자주 오지 않아 반가워서인지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겨울이라도 영하로는 한 번도 내려가지 않지만, 따뜻한 곳에서 살다 보니 조금만 기온이 내려가도 사람들이 추위를 많이 탑니다.

 

이런 날은 따끈하고 매운 짬뽕 국물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짜장면이 또 눈에 아른거립니다. 언제나 느끼는 갈등입니다. 하긴 이곳에는 한국 식당이 없으니 생각만 할 뿐 그림의 떡입니다. 짬뽕이나 짜장면도 배고플 때 처음 한 그릇의 맛이 최고이지 한 그릇 더 시키면 두 번째부터는 만족감이 떨어집니다. (참고: 한글 맞춤법에서 ‘자장면’이 표준어라고 주장하다가 사람들이 라면에서 수프 뺀 것처럼 맛이 안 난다고 하니 또다시 ‘짜장면’이 표준어라고 인정했답니다. 외래어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면 우리어가 되는데 개념 없는 공무원들은 인생의 개미를 모릅니다. ‘개미’는 순우리말로 맛에 있어서 보통 음식 맛과는 다른 특별한 맛을 뜻하며 남도 음식에만 사용되는 말이랍니다. 저도 솔직히 무슨 맛인지 잘 모릅니다.)

 

한국 사람의 머리가 얼마나 좋은지 한국에는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 고민하는 햄릿을 위해 짬짜면이 있다고 합니다. 반은 짜장면이고 반은 짬뽕을 먹을 수 있도록 그릇이 나누어져 있답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욕망을 분석한 경제학 이론이 숨어있습니다. 경제학이라고 하면 다들 어려워하지만, 그냥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땀 흘려 일하고 나서 차가운 맥주 한 잔 마시면 최고의 맛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잔부터는 만족감이 점점 떨어집니다. 두 번째 잔부터는 안주에 손이 가게 됩니다. 옛날에는 무궁화호 열차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5시간 30분 걸리다가 새마을호가 나와서 4시간 30분 만에 부산을 갔습니다. 이제는 KTX가 2시간 30분 만에 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제 2시간 내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폭주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Streetcar Named Desire)입니다.

 

지금까지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우리 생활에서 매번 접하는 일들로써 경제학 이론인 한계효용체감의 법칙(Law of diminishing marginal utility)을 설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것입니다. 재화의 소비가 늘 때 마지막 한 단위가 주는 만족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을 말합니다.

 

시험을 위한 교육이다 보니 뜻도 모르고 외우기만 했고 벼락치기 공부처럼 다 잊고 말았습니다. 수학도 배우면서 공식만 달달 외워서 문제를 풀고 사회에 나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하며 투덜댔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수학책이 한국과 아주 다른 점을 보고 과연 미국 아이들의 창의력이 높을 수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한국의 수학책은 온통 공식과 숫자로 되어있지만, 미국의 수학책은 영어 문장으로 풀어놓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응용력을 키우기 위함입니다.

 

아무튼, 한계효용체감의 법칙만 잘 이해하여 인간의 욕망을 조절해 간다면 더욱 나은 생활이 될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짬짜면에서 인간의 심리를 어떻게 이용했는지 경제학 측면에서 분석해 보겠습니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서 첫 번째 재화의 소비가 가장 만족도를 높인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짜장면과 짬뽕을 똑같이 좋아한다고 봤을 때 처음 짜장면 한 그릇을 먹고 나서 느끼는 만족은 두 번째 짬뽕 한 그릇을 먹었을 때보다 훨씬 더 큽니다. 아무리 짬뽕을 좋아해도 짜장면으로 이미 허기는 채웠으므로 짬뽕이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만족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머리 좋은 한국 사람이 이렇게 해결했습니다.

 

우선 첫째로 짜장이냐 짬뽕이냐 햄릿의 우유부단함을 둘 다 먹을 수 있도록 짬짜면으로 해결했고, 둘째는 짜장면 한 그릇을 다 먹고 나서 짬뽕을 먹으면 두 번째 짬뽕에서 떨어지는 만족감을 해결한 것입니다. 짜장면을 반 그릇 먹었기에 효용은 조금 떨어졌지만, 짬뽕 반 그릇의 효용은 처음 짜장면을 먹기 시작할 때 반 그릇의 효용과 같습니다. 짬뽕은 처음 먹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제학자가 산동 반점에 가서 가르쳐 주지는 않았겠지만, 이론적으로 이렇게 해석해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난 글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에서 언급했듯이 수입이 어느 정도 오르면 행복감도 줄어든다는 통계도 보았습니다. 만약 돈을 쓴 만큼(쓴다는 것은 수입이 그만큼 있다는 것) 행복해진다면 과거 수 십 년 동안 소비한 만큼 행복해져야 하는데 과거보다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필요와 욕망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욕망을 줄이면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아니라 “한계효용체증”의 법칙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이 선진국 국민으로 대접받으려면 반드시 고쳐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허영심입니다. 값이 비싸야 팔리는 명품에 눈이 먼 사람들입니다. 사치와 허영은 속 빈 강정들이 자신의 내면적 결손을 숨기기 위해 하는 행동입니다. 한국 정부가 다른 나라와 FTA 협정을 맺기 위해 하는 거짓말이 있습니다. 관세가 없어지니 소비자 가격이 내려 국민이 물건을 싸게 산다는 말입니다. 한국과 EU 간에 FTA 체결에 따라 가격이 내려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샤넬, 프라다, 에르메스 등은 3% ~ 10%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바로 “베블렌 효과”로 한국 졸부의 등을 치는 것입니다. 베블렌 효과란 과시 욕구 때문에 재화의 가격이 비쌀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수요증대 효과를 말합니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베블렌(Veblen)은 저서 “유한계급(Leisure class)론”에서 유한계급에 속하는 사람에게는 값비싼 물건을 남들이 볼 수 있도록 과시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수단이 된다고 했습니다. 대중사회에서는 누가 더 잘 사는지 알 수 없으므로 사람들은 자신을 알리려고 과시적 소비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내가 산 물건에 대해 남들이 기대하는 가격을 과시가격(Conspicuous Price)이라고 합니다. 월세를 살아도 강남에 주소를 두고 싶어하고 아파트 평수가 사회적 지위를 대변하는 사회입니다.

 

과시적 소비는 처음에는 일부 부유층을 중심으로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주위 사람들이 이를 흉내 내면서 한국처럼 사회 전체로 확산할 수 있습니다. 이를 모방 효과(Bandwagon Effect)라고 합니다. 모방 효과는 유행에 민감한 여성들의 의상수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특정 상품을 많이 소비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상품을 덩달아 구매하는 경우에 발생합니다.

 

정치인들이 이것을 놓칠 이유가 없지요. 밴드웨건 효과는 딴따라 밴드가 앞장서면 사람들이 우르르 뒤따르니 편승효과(便乘效果)라고도 합니다.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이번에는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대세다 하고 떠들어 댑니다. 어리석은 국민은 그런가 보다 하고 될 사람에게 투표하자는 심리가 발동하여 우세해 보이는 사람에게 투표하게 됩니다. 그래서 밴드웨건 효과를 막기 위하여 현행 선거법에서 선거전 6일부터는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경제 심리학적으로 보면 한국이 재미난 지옥인 이유가 있습니다. 밴드 웨건 효과의 반대인 스놉 효과(Snob Effect)가 동시에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스놉은 아시다시피 속물이라는 말입니다. 스놉 효과는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차이를 두고 싶은 속물처럼 타인과의 차별화를 위해 소비하려는 현상을 말합니다. 다수 소비자가 구매할 경우 오히려 그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현상으로 명품 소비로 대변되는 과시적 소비는 물론, 좀 더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한 개성을 추구하는 소비 효과입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고 선전합니다.

 

올겨울 그레이트 리퍼브릭 오브 코리아, 코리아 페닌슐라를 뒤덮은 ‘캐나다구스’ 패딩점퍼를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탁월한 두뇌에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 가지 효과가 동시에 일어나는 멀티 태스킹의 나라, 이 얼마나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남이 가진 것을 나도 갖고 싶어하는 밴드웨건 효과, 남과 다른 것을 갖고 싶어하는 스놉 효과,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가격을 주고 명품을 사는 베블렌 효과가 동시에 일어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그래도 나는 그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따듯한 젖가슴 같은 나의 고향이므로.

 

이렇게 과도하게 소비에 집착하다 보면 소비를 위해 노동을 더해야 합니다. 그러나 노동을 더해도 부는 비례하여 늘어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의 모순인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때문입니다. 부의 재분배 실패로 소득 불평등이 심해진 것이 원인입니다. 월급 받아서 돈을 모을 수 없으니 부동산 투기와 부정부패를 합니다. 장관들 인사청문회 때마다 확인됩니다. 케인스는 2010년 즈음에는 근로시간이 주당 20시간이 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OECD 회원국의 주당 노동시간은 34시간을 웃돕니다. 케인스가 소득 불평등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다 보니 정치적인 부분을 놓친 것 같습니다.

 

GDP 올라가 돈 많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 아닙니다. 제가 항상 감탄하는 것이 미국인의 검소함입니다. 어제 길을 걷다 보니 어느 집 앞에 난초의 뿌리를 한 움큼 모아놓고 ‘Free’라고 써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가드닝을 하면서 나는 필요 없지만, 누군가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라는 마음이 바로 절약하는 정신입니다. 한국 같으면 쓰레기통에 버렸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경제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한한 세계에서 성장이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거나 경제학자이다.”

 

과연 GDP 증가만이 인간의 삶의 질이 개선될까요? 아래 그림을 보시면 소득이 20,000달러가 넘어가면 삶의 만족도가 많이 증가하지 않고 거의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이 지금 20,000달러에서 30,000달러 사이에 있습니다. 한국인 반 수가 나는 하층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남미인들이 소득은 높지 않아도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욕심 없는 삶의 문화에서 오는 탓이 아닐까요?

 

1인당 GDP는 구매력평가지수(PPP)로 환산한 달러이고 2000년에서 2009년 사이의 자료임1인당
1인당 GDP는 구매력평가지수(PPP)로 환산한 달러이고 2000년에서 2009년 사이의 자료임

 

남녀 간의 사랑에서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용합니다. 바로 첫 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생애 처음 느껴보는 사랑은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두근거리며 잡았던 이성의 땀나던 손의 감촉을 잊지 못하며 첫 키스의 달콤함을 잊지 못하는 이유가 한계효용체감을 말해 줍니다. 두 번째 사랑은 더 느긋해 지면서 실수를 덜 합니다. 가슴이 분당 150번 뛰던 것이 100번으로 줄어듭니다. 세 번째부터는 언제 헤어지나 미리 예측해 봅니다.

 

물론 여기서도 경제학이 적용되지 않은 예외는 있습니다. 바로 바람둥이 카사노바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아니라 한계효용체증의 법칙으로 사랑이 아닌 연애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중독에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용하지 않습니다. 도박은 할수록 더 하고 싶고 술은 마실수록 더 마시게 되고 컴퓨터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창 시절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던 수학만 잘 배워 현실에 이용했다면 더 나은 사랑과 결혼 생활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수학을 인문 사회학적으로 해석해 보겠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결혼이 합집합(Union)이고 연애는 교집합(Intersection)이라는 것을 모르고 무조건 외웠습니다. 요즘 학교에서는 잘 가르치겠지요. 아래 그림을 보시면 쉽게 이해가 갑니다. 결혼은 남녀의 장단점을 모두 포함하는 합집합(Union)이고, 연애는 단점은 숨기고 서로의 장점만 함께하는 교집합(Intersection)입니다. 그래서 연애 아무리 오래 해도 이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애라는 것이 자기가 가장 잘하는 것을 상대방한테 보여주는 것이라 현실이 아닌 언제나 좋은 것만 보여주려는 리퍼브릭 오브 연애 공화국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맨 오른쪽에 있는 Difference는 아쉽게도 공유하는 점이 없습니다. 이혼입니다. 공집합(Empty Set)과 같으나 역설적으로 공집합은 모든 집합의 부분집합이므로 모든 것을 수용하여 다시 채울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북한에서는 공집합을 ‘빈모임’이라고 한답니다. 수학 용어를 참 아름답게 잘 지은 것 같습니다. 비어 있으니 다 채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합집합

 

우리네 어머니는 합집합, 교집합은커녕 남편 얼굴 한번 안 보고 결혼을 했으며 그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고 나이 들어서는 자식처럼 돌보다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는 결혼과 함께 여자이기보다는 아내의 길을 택한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남자는 결혼하고 나면 잡은 고기에게 먹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밖에 또 무엇이 없나 눈을 돌립니다. 바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요?

 

남자는 천성적으로 사냥해서 먹고 살았던 DNA가 있어서 잡은 고기에게 먹이줄 생각은 하지 않고 또 다른 고기를 잡으러 다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민들레 홀씨처럼, 버섯의 포자처럼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기회를 노립니다. 그래서 신은 일찌감치 남자를 만들면서 갈비뼈 하나를 들어내고 그 속에다 이성과 절제라는 약물을 인격에 감싸서 빈 갈비뼈 사이에다 집어넣었는데 불가능한 것도 모르고 틈만 나면 남자들은 그것을 빼려 하고 그것을 본 여성들은 한심하여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철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철없는 남자와 모성애 때문에 같이 사는 여자도 합집합입니다.

 

(작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캐나다 구스' 현상에 대해 글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노스텔지어님이 먼저 명쾌하게 지적을 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