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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4001'을 읽고

(2011년 5월 25일)

 

여러 해 전, 미국에서 신정아 사건을 처음 들었을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되는 한국사회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한 개인의 학력위조에 온 나라가 들끓는 것을 보고, 무언가 ‘Hidden Story’가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그것을 당시 대통령 ‘노무현씨 흠집 내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변양균씨와 주고받은 극히 사적인 이메일까지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것을 보고, 참으로 할 일없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사건이 다시 생각난 것은 그녀의 회고록이 다시 뉴스에 오르내리면서인데 우연히 그 책을 이웃에서 빌려주는 바람에 읽게 되었다.

 

그 책을 읽고 느낀 소감은 ‘상당히 솔직하게 쓴 글’이라는 것이었다.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딱 '이것이다'라고집어낼 수는 없지만 굳이 이야기한다면, 투박한 문맥과 글의 전개상 거짓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고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까지도 담담하게 전개한 것을 읽어가면서 가식이나 허위가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주장을 100% 책의 내용대로 인정하더라도 그녀의 윤리적 도덕적 책임은 용서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 대부분 사실이라고 믿지만 - 한국의 대표적 기득권 세력인 언론과 검찰의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먼저, 그녀의 학력위조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녀는 자신의 학력위조를 고의적 허위가 아닌 미필적 허위라고 주장한다. 자신도 트레이시라는 여자에게 속았을 뿐, 자신은 비록 남의 힘을 빌려 학위를 취득했을지언정 자신의 학위가 진짜라고 믿었다고 말하며,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녀의 주장이 사실이든 아니든, 남의 힘으로 학점을 따서 학위를 받으려고 시도한 자체만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학부가 아닌 대학원까지,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박사학위까지 돈을 주고 사려한 행위는 파렴치를 넘어선 행위다.

 

그녀가 말한 대로 학위에 대한 욕심이 생겨서 또 더 공부하고픈 열망이 생겨서 그리했다면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남의 힘을 빌려 공부하는 주제에 미국에서 그것도 Yale이라는 명문에서 학위를 받으려고 시도한 자체가 지나친 욕망이고 유아적인 치기일 뿐이다.

 

그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용서받을 수 없고 죄송하다고 말하면서도, 자신도 피해자일 뿐 고의적은 아니었다고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지만, 논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본인이 어이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트레이시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자신이 박사학위에 대한 욕심이 생겨 연락할 때는 연락이 되고, 자신의 학위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연락이 필요할 때는 연락할 방법이 없다고 했는데 이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이라는 믿음이다. 물론 당사자 측에서는 말도 되지 않는 허구일 뿐이라고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음에도, 책을 읽은 후에는 더욱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또 책에서는 조선일보 기자출신 현 국회의원 'C'씨라고 언급했으나, 그 익명의 본인이 한나라당 국회의원 진성호의원임은 지금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역시 조선일보 기자 출신답다.

 

그런 인간이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대통령 측근이라고 하니 나라의 꼴이 우스울 뿐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인간 ‘신정아’는 언론과 검찰이 합작하여 만든 시대의 ‘희생양’이기도 한 동시에 시대적 ‘영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신정아 사건으로 들어난 우리나라 지도층 중에서 학력을 고의적 허위로 기재한 인사가 어디 한 둘이었던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내가 진짜 모습보다 허위라고 하더라도 형식이 더 중요한 사회, 남과 비교해서 우위에 서야 만족하는 사회,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해서 약점만 보이면 물고 늘어져 끝장을 내야 직성이 풀리는 야수 같은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었다.

 

학력위조는 도덕적 죄는 될지는 몰라도 형사적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허위학력을 이용하여 교수가 되었다면 학교에서 불명예스럽게 파면된 것으로 끝이다. 더 이상 형사상 책임을 지울 수 없는 사건이었다. 또 어찌된 일인지 처음에 동국대는 Yale로부터 그녀의 학위의 진위여부 대한 Fax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는 Yale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 진행 중이라고 한다. 허위 Fax를 답변으로 보내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이 소송의 이유다.) 그러나 검찰은 ‘ 어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느냐?’는 식으로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첫 번째 영장청구가 법원으로부터 기각된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변양균씨가 무죄판결이 난 상태에서 그녀까지 무죄가 된다면 검찰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회적 관심이 폭발하기는 했지만, 사회적 가십일 뿐 처음부터 검찰에서 손 댈 사건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3억 원 횡령죄라는 죄명을 쓰고 구속되어 1년 6개월을 감옥에서 지낸다. 비자금을 받아 고용주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돈을 받은 사람이 받지 않았다고 하니 그녀가 챙긴 것이 된 것이다. 20여 년 전에는 어느 정도의 비자금을 다루어보았던 사람으로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한국에서는 누구도 범법자로 만들 수가 있다.

 

과거의 일이지만 내가 아는 한국은 비자금 조성은 죄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단, 발각이 되면 죄가 되었다. 부장 이상 간부회의에서 사장이 직접 이야기 했다. 공식적으로 영업비를 만들어 줄 방법이 없으니 알아서 만들어 쓰라는 거다. 다만, 발각되어 문제가 되지 않기만 하라고 했었다. 돈 없이는 되는 일이 없는 사회이니, 돈의 필요성은 알겠지만 양성화가 안 되니 음성적으로 알아서 하라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국민의 몇 %가 거기에서 자유로울까?

아마 검찰, 그들조차 자신의 손에 먼저 수갑을 채워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뇌물죄는 이상해서 증거가 없어도 준 사람이 주었다고 하면 성립이 되기도 하니 나 같으면 견디기 힘든 상황과 시간을 그녀는 뻔뻔할 정도(?)로 대단하게 참아냈다. 그런 점에서 출소하고 나서 화병으로 피부병에 걸렸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언론의 행태도 대단했다. 국민의 관음증(Voyeurism)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약점을 드러낸 채 땅에 추락한 두루미(당시 신정아는 일반인이 보기에는 하늘을 나는 새였다)를 짓밟고 할퀴는 늑대의 그것 그대로였다. 진실은 아무 상관도 없다. 어떤 보수언론은 가짜 누드사진을 싣기도 했고, 모든 신문들은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 빈 지면을 채우기 위해 각종 추측성 기사들을 남발했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에게 표적이 된다면 세상에서 당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단과 방법이 목적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건 교과서만 있는 내용일 뿐이다. 대통령이 된 사람조차도 표를 잃지 않기 위해, 당선을 위해 국민을 상대로 거짓으로 공약(사기)을 했다고 뻔뻔하게 말해도, 그걸 문제 삼는 언론은 없다. 대통령은 언론을 보호하고(조중동은 종합편성방송업자로 선정됨), 언론은 대통령을 보호한다. 철저한 ‘Give and Take’ 다.

 

대통령부터 공공연하게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 언론이고 검찰이고 사회의 다른 부분, 다른 사람들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다. 부산저축은행 사전인출 사태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서 조치하라고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한다. ‘개그콘서트’에 출연해도 될 수준이다.

 

미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재미있는 것은, 책을 읽고 난 후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그녀에 대한 기사와 방송을 다시 보았는데, 대부분 그녀를 ‘병적인 거짓말쟁이’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심리학자까지 동원하여 애매한 말들로 시청자로 하여금 그녀가 거짓말쟁이인 것으로 느끼게 유도하는 것이었다. 말하면서 눈을 깜박거린다든가 하는 자연적인 현상을 언급하면서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신문에서는 책의 후반부가 대필된 것 같다는 애매한 추측성 기사를 여전히 문장으로 만들어 싣고 있었다.

 

삼성그룹 비서실의 법률고문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불법비자금과 사용처를 폭로하자, 아무 관계도 없는 그의 사생활을 시시콜콜 들쳐 내며, 그가 몹쓸 인간인 것처럼 몰아갔던 방법과 진부하지만 유사한 방법이다. 문제의 핵심에는 다가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려서 대중들로부터 잊게 만드는 것인데, 문제는 거기에 너무 쉽게 넘어가는 대중에게 있다. 시간이 가면서 사건은 잊혀지고 피해자만 남는다.

 

만에 하나,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이 사실이고 신정아의 폭로가 진실이라면 얼마나 무서운 사회인가?

 

아무튼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이 책을 통해서 단편적이나마 한국의 현주소를 알 것 같았다. 아직도 온갖 편법과 의도된 권력의 힘이 활개를 치는 한국사회를.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시절, 왜 그렇게 언론과 검찰과 같은 막강한 기득권 세력의 입지를 축소시키려 했는지와, 왜 그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미국이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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