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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한국, 아직 멀었다.

(2011년 5월 13일) 

 

이번 한국에서 일어난 ‘부산 저축은행 인출사건’을 보고, 10여 년 전 미국에서 발생한 마사 스튜어트(Martha Stewart) 사건이 생각났다. 똑같은 사건은 아니지만, 가진 자에 의한 기득권의 횡포를 공권력이 어떻게 대하느냐의 관점에서 비교해 볼 수 있는 유사한 사례이다.

 

혹시 마사 스튜어트 사건을 잊었거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소개하자면 이렇다.

폴란드 이민가정에서 1941년 태어나 뉴저지에서 성장한 마사는 가정주부를 대상으로 살림살이에 대한 출판과 상품 그리고 방송으로 크게 성공하였는데, 이후에는 주식으로도 부를 쌓아갔다. 수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그녀가 2001년 말 어떤 회사의 주식을 팔았는데,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이용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당시에 내가 다니던 회사가 제약회사를 주 고객으로 하는 회사이었고, 관련된 회사가 ‘임클론(ImClone Systems)’라는 제약회사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상세히 이 사건을 알게 되었다.

 

임클론이 개발한 신약이 FDA에서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불합격된다는 사실을 친구이자 그 회사 CEO인 사람으로부터 미리 전해 듣고 매스컴으로 보도가 되기 하루 전에 가지고 있던 주식 4천 주를 팔았던 것이다.

그 회사 주식은 다음날 16%가 떨어져, 그녀에게는 ‘껌값’에 불과할 수 있는 4만 5천불의 손실을 피하게 되었다.

 

유명인사가 주식이 폭락하기 하루 전에, 승승장구하던 해당 주식을 처분한 것이다. 이 수상한 거래는 즉각 미국 증권거래소 감시망에 걸리게 되고 조사에 들어가, 일 년 가까이 진행되는 조사과정에서 마사는 정직하지 못했고 관련자들과 말을 맞추는 등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녀가 정직했더라면 벌금형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지만, 결국 그녀는 벌금과 함께 연방교도소에서 5개월의 실형을 살게 되고, 그녀로서는 ‘껌값’에 불과한 돈에 집착한 게 세상에 알려져 ‘개망신’을 했을 뿐 아니라, 그녀의 구속으로 가지고 있는 회사의 주가가 폭락하여 수 백, 수 천 배의 손해를 입은 셈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그녀 친구인 CEO와 Stock Broker까지 범죄자로 전락한다.

 

당시, 나는 이 사건을 보면서 미국사회의 정의로움에 놀라고 존경심 마저 갖게 되었다. 보통사람보다 지도층 인물의 부도덕성에 대해서는 더 가혹해야 한다. 보통 사람 보다 더 큰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니, 그게 공정이고 정의다. 소위 '노블레스 오블레주'인 것이다.

 

작금 한국에서 일어난 ‘부산저축은행’ 사전 인출사태는 ‘있는 자’들에 의한 부도덕의 극치를 보여준다. 예금자와 은행 그리고 감독기관이 가담한 총체적 부도덕이다.

 

수억 원이 넘는 거액을 1%도 안 되는 이자(그들에게는 ‘껌값’)를 더 받기 위해 일반은행이 아닌 저축은행에 예치한 예금자와 거액 예금자들에게 미공개 정보를 제공하여 미리 인출을 시킨 은행 당사자들과 뇌물과 향응을 받고 부실을 눈감아준 감독기관이 함께 연출하여 수많은 선량한 백성들을 울린 것이다.

 

파출부와 청소부 같은 막일을 하면서 수십 년간 모은 재산을 은행직원의 꾐에 넘어가 5천만 원 이상 예금한 ‘힘없는’ 손님들은 5천만 원밖에 보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그 돈도 이자도 없이 언제 돌려받게 될 지도 모른다.

한겨레신문에서 읽은 불구자가 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65세 노인의 절규는 가슴을 아프게 한다.

 

- 너희들에게는 1~2천만 원이 아무렇지도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목숨이나 다름없어. 그 돈을 벌려고 누워있는 병신 남편을 집에 혼자 두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남의 종노릇을 했어. 내 돈 돌려줘, 이놈들아!

 

미국에서라면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까?

 

미공개 정보로 이익을 취한 예금자들, 그들에게 정보를 제공한 은행 임직원들 그리고 가장 도덕성이 필요한 금융감독원의 당사자들 모두 구속되어 실형을 받게 하리라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짐작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더 높은 도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저지른 범죄라 일반인과의 형평상 법정 최고형을 받게 할지도 모른다. 그게 공정한 사회가 아닐까.

 

그러나 이곳은 한국이다. 어떻게 종결될지 예상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몇 년 전 국내 굴지의 그룹 계열인 신용카드사 임직원들은, 당시 신용카드 대출부실로, 그 회사 부실이 공표되기 직전 회사주식을 대량으로 내다 팔았다. 피해는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의 몫이었고 여론은 들끓었지만, 그 그룹의 일가 중 누가 어떻게 되었다는 기사는 보지 못했다.

 

아마 이사건도 이처럼 비슷하게 끝날 것이다. 거기다 내놓고 기업을 편드는 대통령이 아닌가!

지금 대통령이 말하는 ‘공정한 사회’는 그런 것이니까.

‘가진 자’들끼리 만의 ‘공정’이고 '힘없는 백성'은 거기에 낄 자격조차 없으니까.

 

<후기>

어제 중앙일보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미국을 흉내내는 한국이지만, 미국을 제대로 따라 하려면 멀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이런 것도 한국에 사는 재미입니다. 가급적 신문도 안보고 뉴스도 안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 왜냐면 스트레스일 뿐이고 알아보았자 내가 할 수있는 일도 없고 - 저절로 알게 되는 뉴스를 접하게 되면 미국생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미국에 살 때는 빨리 미국화하려고 가급적 미국 로컬신문만 구독하고 미국방송만 보고 그랬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내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난 후, 한참 한국 드라마에 빠져 있었지요.

대장금, 장밋빛 인생 등은 정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이민 초기에는 한국 드라마 보는 사람들을 경멸하기도 했었습니다. - 내가 미친 놈이었지요.

그렇게 한국이 그리우면 뭐하러 이민을 왔느냐는 것이 내 주장이었지요. 저럴 시간이 있으면 단어 한개라도 외우지 시간이 아깝게 왜 저러느냐는 고집을 꺾지 않았으니, 제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많이 후회합니다.

짧은 인생, 뭐 그렇게 어렵게 살았는지...

그렇다고 제가 영어나 극복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그렇게 사는 것도 아니니 얻은 것이 하나도 없는 셈입니다.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은 내가 옳은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내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게 인생이겠지요. 사람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동물이니까요.

 

절대적인 원칙이란 인생에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