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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내가 느낀 한국의 변화 1

 (2011년 3월 30일)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떠났다가 이명박 대통령 때 돌아왔으니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대의 한국은 경험하지 못했는데, 그 동안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변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자면 많은 공부와 조사가 이루어져야겠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제주에 정착한지 4개월 동안 직감적으로 느낀 14~5년간의 변화를 순전히 개인적인 소견으로 적어본다.

 

먼저 국민복지제도의 확충인데 그 기반은 국민 4대보험인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이 그것이다. 국민연금은 Social Security 즉 SSA에 해당하고, 고용보험은 말 그대로 Unemployment Compensation, 산재보험은 Workers' compensation에, 건강보험은 Medical insurance에 해당한다.

 

국민연금은 미국처럼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지만, 20년 이상 가입자가 수혜자가 되면서 부부 합산 2백만 원 이상 고액 수령자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저소득층에게 주는 Welfare는 한국에서는 최저생계비라는 이름으로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가정에게 주어지고 있다.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문제점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고통 받는 약자에 대한 배려는 고무적이다.

 

이는 전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으로 보이는데,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기득권층의 온갖 반대와 방해에도 국민복지제도 확대를 밀어붙여 이나마 갖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재임시절 한국 분들이 모이는 곳에서 자주 듣던 말이 있었다.

 

- 한국은 분배보다는 성장에 주력해야 할 때다. 분배위주의 정책은 아직 우리 형편에 이르다.

 

노무현이 잘못하고 있다는 질책이었다.

 

‘지역아동센터’라는 것도 있어서 결손가정이나 저소득 맞벌이 부부의 소외받는 아이들에게 교육과 음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학교가 끝난 후 보살핌이 없이 거리를 떠돌거나 혼자 지낼 수밖에 없는 저학년 아이들이 제도 속에서 보호를 받는 것이다.

 

또 어떤 형태든 학교급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겨울에 난로에 도시락을 올려놓지 않고도 따듯한 밥을 먹는다. 가난한 아이들이 도시락 반찬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점심시간을 즐길 수 있다. 집 주변에 전교생 백 삼사십 명의 초등학교가 있는데 산책할 때 보면 식당에서 음식준비로 분주한 아주머니들을 본다.

미국에서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매주 점심값을 챙겨주던 집사람이 생각난다.

 

이밖에도 내가 잘 알지 못해 열거하지 못하는 여러 기관과 제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변방인 제주도에서도 변두리에 살아서인지는 몰라도, 집 주변에 양로원, 시각장애인 복지관, 장애인 근로 복지관, 청소년 시립 복지관 등이 많다. 특히 요양원이 많이 보이는데, 숲 속 경치 좋은 곳에 그럴듯해 보이는 건물이 요양원이라는 간판을 갖고 들어서 있다.

 

다음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이다.

 

TV와 같이 하는 시간이 많게 되어 알게 된 것이지만, 추적60분, PD수첩, 뉴스추적, 시사매거진, 100분 토론,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많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있어 권력형 비리와 사회의 소외된 곳에서 기득권과 공권력에 의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국민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내가 알던 과거의 한국이라면 철저히 숨겨지고 왜곡되어질 사건들이 파헤쳐져 국민들에게 공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옛날에 있었더라면 나도 참여를 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매스컴의 왜곡보도로 피해를 가장 많이 당한 두 대통령의 노력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최근 봄 개편이라는 핑계로 그런 좋은 시사프로그램들이 없어지고 있어 안타깝다. 특히 ‘W' 같은 프로그램은 제 3세계의 소외되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고발하는 선진국형 시사 프로그램이었는데 최근 없어져 아쉬움을 준다.

 

‘동아시아 생명 대탐사 아무르’, ‘최후의 툰드라’, ‘아마존의 눈물’ 같은 다큐는 BBC, NHK, Discovery, National Geographic 같은 선진국의 다큐 프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프로다.

 

다음은 부동산 가격의 폭등인데 올라도 너무 올랐다. 20여 년 전에 비해서 5~10배 이상 오른 것으로 보인다.

 

20여 년 전, 7천만 원에 분양받아서 1996년 2억 3천을 받고 팔았던 분당의 30평대 아파트는 지금 5억 가량에 매물로 나와 있다.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는 대부분 10억 이상이다. 솔직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일 거다. 사업이나 하려고 집을 팔았던 사람들이 땅을 치고 후회한다고 한다.

 

미국 뉴저지 모리스 카운티 Denville 이라는 동네에 1999년 26만 불에 산 집을 사정이 생겨 5년 후인 2004년 46만 불에 팔았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 올라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에 놀랐는데 결국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로 미국의 부동산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한국이 부동산 가격하락으로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경제 침체가 올 것 같아 걱정이다.

 

온통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세상이 되었다. TV에는 나이 어린 여자들이 떼로 나와 반라차림으로 선정적인 몸짓으로 춤을 추고 노래한다. 신문은 옛날 스포츠 신문 수준이다. 선정적인 문구나 사진으로 가득하고, 돈 많고 잘 생긴 사람에 대한 찬양하고 숭배하는 듯한 노골적인 기사들로 넘쳐난다.

 

‘누가 얼마를 벌었다’는 자극적인 기사가 토픽이고, 잘 빠진 몸매를 가꾼 성공담이 화제가 되며, 동안(童顔)과 미모 가꾸기가 인기 프로그램이다. 돈 없고 못난 사람들은 인간도 아니라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영어가 완전히 대중화 되었다. 영어와 한국말이 섞여 있어서 대중가요조차 자막이 없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무슨 말인지도 모를 ‘베라체’, ‘스위첸’, ‘자이’ 같은 아파트 명칭에서부터 가수들이나 댄스그룹의 이름까지 또 회사들 이름도 영어다. 주택공사는 LH, 국민은행은 KB, 기업은행은 IBK이고 SK, Olleh 등등 회사이름도 영어 이니셜로 표시하거나 외국어로 표기한다.

 

대민창구 공무원이나 서비스 직원들의 친절함은 인상적이다. ‘주민 센터’라고 불리는 옛날 동사무소에 들어서면 창구직원이 무슨 일로 오셨는지를 먼저 묻는다. 자기가 모르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라도 어디로 가서 어떻게 하라고 알려준다. 더 도와드릴 일이 없느냐고 묻기도 한다. 가급적 민원을 들어주려고 하는 자세가 보였다.

서비스 직원들은 일이 끝난 후에도 만족했는지를 묻고 혹 있을지 모르는 불만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는 말을 덧붙인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외국인들도 생소한 모습이다. 지하철이든 버스든 오일장이든 공원이든 어디서건 외국인들이 보인다. 내가 알던 과거 한국의 모습은 아니다. 장날 길거리 음식을 먹던 곳에서 마주친 부부는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필리핀에서 온 듯한 까무잡잡한 어려보이는 여인에게 오뎅과 튀김을 사랑스럽게 권하면서 다소 나이 들어 보이는 남편은 서투른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교과서에서는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사라졌다고 한다. 더 이상 단일민족이 아닌 것이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제품을 물어보는 백인들에게 한국말로 설명하는 것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건강에 대한 열풍이 대단하다. 어디서나 운동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화려한 색상의 추리닝을 입고 팔을 크게 휘저으며 열심히 걷는 사람들. 중장년층 사람들로부터 젊은 여성들까지. 공원 곳곳에는 역기나 평균대, 윗몸 일으키기 같은 여러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어 시민들의 운동을 유도하고 있다. 미국에서 흔히 보는 뚱뚱한 사람들을 거의 볼 수가 없다. 내가 살았던 미국과는 다르게 다들 날씬하고 보기 좋은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쟁력도 돋보인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IMF를 겪으면서 한국의 경쟁력은 세계적으로 비약한 것으로 보인다. 농축산, 어업 같은 1차 산업에서 전자제품, 자동차, 건축과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2, 3차 산업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집이든 벽, 천정, 마루와 천정, 문틀까지 튼튼하고 오닥지게 지어져 못 하나 박기도 힘들고 틈이 없다.

 

최근 지어진 아파트를 보면 거의 예술수준으로 내가 살던 미국집들이 초라하고 허름하게 느껴진다. 물론 백야드의 넓은 잔디나 우거진 숲들을 볼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 인터넷 속도를 경험하면 미국은 후진국이다. 누구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이나 DMV로 지하철에서 TV를 보는 모습을 보면 다른 세상에 와있는 듯하다.

 

그 밖에도 너무 많은 변화가 있어서 다 열거하기 어렵다. 한국의 일 년은 다른 나라의 십 년이라는 이야기를 어느 나라의 주한대사가 했다고 하니 산전벽해란 말이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이명박씨는 성장을 구호로 대통령이 되었다는데, 또 다시 사회가 크게 변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일단 많은 시사고발 뉴스 프로그램들이 없어졌다. ‘뉴스추척’, ‘뉴스후+’, ‘W’ 같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봄 개편이라는 명목으로 사라졌다.

 

뉴스에서는 계속 국민복지에 관련된 예산이 폐지되거나 축소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성장이 우선시 되다보니 사회의 그늘진 모습은 감춰져야겠지만, 좋은 방향으로 변해갔으면 하는 바랄 뿐이다.

 

대기업 사장님이었던 높으신 분을 대통령으로 모신 국민들이 감수해야 할 운명이겠지만.

 

<후기>

한국의 정치인들 설치는 꼴이 보기 싫어 한국이 싫다는 글을 읽고 실소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그가 4년 더하는 꼴이 보기 싫다고 캐나다로 이민 간 미국인 기사를 뉴스위크에서 읽은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200년이 훨씬 넘는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미국도 그럴진대, 60년이 좀 넘은 역사를 가진 한국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언젠가 친구가 또 다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임마! 네 정신연령은 81년 네가 미국이민 갔을 때 그 당시에 머물러 있어, 알아!

 

군대 제대 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콜로라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빴던 모양입니다. 내게 투덜거린 걸 보면.

 

절친 사이라 기분 나쁜 말도 서슴지 않고 내뱉는 사이기는 하지만, 듣는 사람이 기분 좋을 리가 없지요. 말을 한 친구는 모 대학 교수인데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이라 그런지 지나친 말도 곧잘 합니다.

 

그런데 미주중앙일보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다보면 이민 떠나올 때 한국 그대로에 아직도 머물고 계신 분들이 있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콜로라도 친구가 들었던 말처럼.

 

앞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나갈지 알 수는 없으나, 인구의 80% 가까이가 대졸 이상인 고학력 나라이니 좋은 모습으로 전개되리라고 쉽게 짐작해 봅니다.

 

그래서 오바마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의 교육을 본받자고 하겠지요.

며칠 전 한국의 경쟁력이 아시아 최고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일본을 젖혔다고 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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