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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내가 느낀 한국의 변화 2

(2011년 5월 21일)

 

불과 15년도 채 안 된 이민생활 끝에 돌아온 사람이 수많은 이민 선배님들 앞에서 한국의 변화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이야기일 것이겠지만, 그리고 서울도 아니고 이런 제주의 변두리 시골에 쳐박혀 살면서 한국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까봐 두렵기는 하다.

 

그러나 5개월이 지난 싯점에서 그동안 보고들은 풍월을 읊어보는 것도, 3~40년 이민생활을 하면서 막연하게 귀국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그간의 느낌을 옮겨 본다.

 

먼저 사회 부조리나 부정부패에 대한 변화다.

 

IMF를 거치면서 회사에서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말단직원들도 부장이나 과장의 지시에 전처럼 무조건 따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옛날에는 윗선에만 향응을 제공하거나 뇌물을 주거나 해서 어떻하든 설득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담당자까지도 챙겨야 일이 돌아간다는 거다. 말단직원인 담당자를 챙기지 않으면 기안을 안 한다는 거다.

 

위에서 지시한다고 해서 일을 처리했던 과거가 아니라는 거다.

사업하는 친구들이 하는 말은 비용도 더 많이 들고 일하기도 더 힘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옛날에는 직장 후배나 부하들이었지만, 지금은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친구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 옛날에 과장님과 같이 일하던 때가 아기자기한 정도 있었고 가족같은 분위기로 좋았습니다. 퇴근 후에 꼼장어 놓고 소주 한 잔하면서 인간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잖습니까? 지금은 어림도 없습니다. 그런 건 생각도 못합니다.

 

- 요즘 젊은 직원들은 정이 안 갑니다. 우리 때처럼 사무실에서 눈치 보지도 않아요. 퇴근시간 되면 칼 퇴근합니다.

 

좋아졌다는 건지, 나빠졌다는 건지 헷갈린다. 알아서 판단하시기 바란다.

 

추적 60분이나 PD수첩, 소비자 고발 같은 시사프로그램을 보면, 아직도 가진자의 횡포는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부실저축은행 사전인출 같은 사건을 보면서, 지금도 이나라에는 이민 가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게 이해가 간다.

누구나 그 피해자라면 이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데 표를 주고싶다.

 

미국의 어느 경제잡지에서 코리아가 2050년에는 일인당 GNP 세계 2위국이 된다는 예측을 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이 부패한 나라를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비극이다. 일본이나 유럽은 다른 나라로 이민 가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말이다.

 

대기업이나 기득권층의 횡포와 권력의 부조리는 더 조직화되고 더 두뇌화되었을 뿐 여전하다는 시각이다.

어느 분의 표현대로 3~40년이 더 지나 군사정권에서 교육받은 우리같은 구세대 사람들이 한국에서 사라져야 해결될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젊었을 때 '꼰대'라고 불렀던 전 세대의 고루한 생각을 지금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볼 일이다.

 

끼리끼리의 문화도 더 발달하고 진보한 것 같다. 곳곳에 'XX향우회'라는 간판을 단 건물들이 보인다.

봄이나 가을이 되면 호남 향우회, 충청 향우회 운동회가 주최되고, 무슨 일이 생기면 단합대회도 연다.

이 단체들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을 할 때가 선거철이다.

자기 돈을 써야 하는 회장직에 나가는 이유가, 선거철만 되면 한 번에 본전을 뽑고도 남는 장사라는 거다.

 

여동생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외고에 다니는 아이를 가진 부모들끼리 자연적인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아이가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주기적으로 만나 아이의 장래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며 친목을 도모한단다.

외국연수, 군입대, 취업등 정보를 공유하여 아이들의 장래를 위한다는데 할말이 없다.

 

그러니 성우회(별을 단 장성들의 모임), 해병대 출신의 모임, 철도청 퇴직자의 모임, 경제기획원 퇴직자의 모임, 한국통신 퇴직자의 모임, 한국전력 퇴직자의 모임, 삼성그룹 출신들의 모임 등등 끼리끼리 모임을 갖고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별의별 핑계가 다 있고 별의별 유형의 모임이 다 있다.

이런 모임에 하나도 소속되지 못한다면 왕따를 당하고 있거나 사회의 '루저'가 되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자전거를 타는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다. 날렵한 모습의 비슷비슷한 옷을 입은 2~30 명의 사람들이 웃고 떠들면서 모여 있었는데, 그 옆에 있는 트럭을 보고 다소 놀랐다. '평택 싸이클 동호회 제주 일주'라고 플랑카드를 붙인 트럭에는 사람 수 만큼으로 보이는 자전거가 실려 있었다.

 

평택항에서 출발하는 페리에 자전거를 싣고와서 제주를 일주하는 중이라고 한다. 모두들 보기좋은 몸매에 멋진 사이클복을 입은 수십명의 40대 이상으로 보이는 남녀 집단이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하이웨이를 운전하다 가끔 보게 되는 가죽점퍼차림의 오토바이 족들을 보는 듯 했다.

 

이런 모임들을 이곳에서는 자주 본다.

인라인 스케이트 모임, 마라톤 동호회, 낚시, 등산 등등...

끼리끼리 문화의 발전된 모습이라는 생각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좋게 볼 수도 나쁘게 볼 수도 있다.

 

사람들의 문화생활수준이 많이 향상되었다. 연극, 뮤지컬, 코메디, 음악회 등 각종 공연이 일상화되었고 가격도 만만치 않다. 처음 라스베가스에 가서 쥬빌리라는 쇼를 볼 때 100불이나 되는 티켓값에 놀란 적이 있었지만, 지금 한국이 그렇다. 웬만한 공연의 티켓값은 십만원이다. (예, 쎄시봉 제주 공연의 일반석)

 

남의 눈이 중요한 사회라 그런지, 모든 상품들이 비싸지만 고급스러워 보인다.

등산복도 몇 십만원 짜리를 입고 다닌다고 한다. 즉 계절마다 다른 옷이 필요한 등산도 돈이 안드는 운동이 아니라는 거다. 하다못해 산책하면서 입는 운동복도 그렇다고 한다.

식탁 위에 네프킨은 촌스럽다. 물 티슈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타협을 모르고 대화에 서투르다. 나와 생각이 틀리면 싸우고 대립한다. 상대편 말에 귀 기울일 줄 모르는 것은 여전하다. 흑백의 논리인데, 한국사람인 이상 한국에 살든 미국에 살든 비슷한 경향이다.

대기업 임원으로 있는 친구들은 이명박을 옹호하고 노무현에 대해 험한 말을 서슴치 않는다.

 

교수나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은 그 반대로 서로 설전을 벌인다.

제 3자 입장에서 방관하는 자세로 대화를 들어보면 자기주장만 하지 전혀 남의 말을 듣을 생각조차 않는다.

결론도 없이 서로 스트레스만 받는 토론이 한심하게 이어진다.

 

상가집에 갔다가 어떤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30년 가까이 용산 미군부대에서 군속으로 일했다고 하는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군속의 월급은 미군 사병에 준해서 준다고 했다. 즉 $1,000에서 $1,500 수준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훨씬 많은 수입이었고 근무여건도 괜찮은 직장이었지만, 지금은 백오십만원 정도 되는 월급을 받느니 그만 두고 노는 게 났다고 했다.

 

비록 한국에 사는 사람이 이곳에서 경험한 이야기였지만, 미국과 한국을 비교할 수 있는 레퍼런스는 되는 다큐멘터리다. 30년 동안 미국의 대졸초임이 얼마나 올랐을까? 50%쯤 될지 모른다.

 

아이비리그 출신이 월 스트릿에서 일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지방의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적인 회사에 다닐 경우에 얼마나 될까? 내 생각으로는 2만불 정도에서 3만불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럼, 한국은 지난 30년 동안 얼마나 올랐을까?

최소 다섯 배에서 열 배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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