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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제주의 삶

내가 본 명절 스케치

(2013년 9월24일에 작성한 글)

 

명절의 의미도 세월이 가면서 바뀐다. 타임머신을 타고 잠깐 명절을 되돌아 본다.


어렸을 때 명절의 기억은 좋은 것만 있다.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옷이지만 새 옷을 얻어 입기도 했고,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찾아오는 손님들로부터 용돈도 받을 수 있으니 어찌 아니 좋았겠는가!

청소년이 되어서는 두둑해진 주머니 사정으로 사촌들이나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극장이나 탁구장에 출입도 했다.


사회에서는 명절이 그리 달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지만, 가깝고 먼 친척들을 찾아다니며 인사 다니는 일로 바빴고 때로는 직장 상사들을 찾아봐야 하는 것이 귀찮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식구들이 모이면 말이 씨가 되어 문제를 종종 일으켰다. 모처럼 식구들이 모두 모여 떠들썩한 것은 좋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때때로 골치거리가 나타나곤 했다.


이민자의 명절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다. 우리의 민속 명절은 한국신문을 보지 않거나 방송을 듣지 않으면,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게 지났고, 쌩쓰기빙이나 크리스마스, 줄라이 포스 같은 미국의 명절은 강 건너 김진사댁 잔치 모양새로 명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제주로 역거주하여 설날과 추석이 각각 세 번씩 지났다. 비록 제대로 된 제사상은 아니지만,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떠놓고 인터넷을 뒤져 제사의 흉내만 낸다. 이렇게나마 하는 건, 망자(亡者)를 위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저 스스로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허식일 뿐인 것을 알지만, 그래도 마음은 자그나마 위안이 된다. (선친이 부모님을 이북에 두고 월남한 피난민이라 제사 지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유대인은 아니지만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지녀 이민을 떠났다가 돌아왔으나, 고국의 명절이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찾아갈 곳도 없고 찾아올 사람도 없다. 미국에 사는 아이들이 한국의 명절을 어떻게 알았는지, 카톡으로 잘 지내라는 메세지를 전해온다. 서울에 사는 형제나 조카들에게 전화가 오기도 하지만, 그뿐이다.


명절이면 찾아갔었던 도치형님도 미국에 가서 안 계시지만, 엘에이에서 방문한 동서 덕에 이번 추석은 바쁘게 며칠 보냈다. 처형 내외와 찾아간 관광지마다 인파가 넘쳐난다. 명절이라기 보다는 연휴를 맞아 놀러다니기 바쁜 것 같다. 평소에는 사람들 발길이 거의 없는 만장굴에까지 차를 댈 곳이 없는 것은 처음 보았다.


이제는 놀러다니는 게 명절인 모양이다.


▼ 추석 다음날 찾아간 성산 일출봉.


▼ 저 밑에 보이는 파킹랏에 빈 공간을 찾기가 힘들었다.


▼ 제주 10景 중이 제 1경이라는 성산 일출봉에서 내려다 본 광경


▼ 중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바람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이 붐볐었는데, 이제는 하산길을 따로 만들어 번잡을 피했다.


▼ 이들의 발음을 들어보니 미국에서 온 듯하다.


▼ 일출봉의 분화구. 바다를 건너가면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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