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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제주의 삶

영실에서 돈내코로

(2013년 5월 14일에 쓴 글)

 

제주에서 세번째 맞는 봄인데, 가장 좋은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비도 별로 없고, 바람도 비교적 심하지 않은 화창한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0도 안팍의 기온도 야외활동에는 그만입니다.

 

지난 월요일(5월 13일), 여느 날 처럼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상쾌한 공기가 방안을 채웁니다. 아직 날이 완전히 밝지는 않았지만, 배낭을 찾았습니다. 배낭이랬자 넣을 것도 없지만, 혹시 모르니 갈아입을 티셔츠와 양말, 그리고 생수병을 챙겼습니다. 집사람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아침을 대충 챙겨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제주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6시 반 첫 버스가 1100 도로를 경유해 어리목과 영실로 갑니다. 영실까지의 요금은 2,500원이다. 몇몇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몇몇 정류장에서 고사리를 하러가는 할망들이 무리를 지어 타는 것을 보며, 아직도 고사리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버스가 산 속으로 접어들자 고사리 할망들은 내리고, 어리목에서 등산복 차림들이 대부분 내렸습니다. 1100 도로 최정상 휴게소에서 정차한 후, 영실에서 버스는 영실 매표소 쪽으로 좌회전을 합니다. 차를 가지고 오면 30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버스로 오니 한 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1100 도로는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높은 곳을 지나는 자동차 도로라고 합니다.

 

매표소(자동차 주차 매표소임)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2.5 킬로는 차를 가져오지 않은 사람은 걸어가야 합니다.

 

▼ 아침 7시 반 무렵, 등산로 입구까지 걸어가는 길에 노루새끼 한 마리가 아침 산책을 나왔습니다.

 

▼ 인기척을 느낀 듯 숲으로 방향을 틉니다.

 

▼ 아침의 평화를 깬 침입자를 흘낏거리며, 녀석이 숲속으로 사라집니다. 사진 한 가운데 녀석의 겁먹은 얼굴이 조그많게 보입니다.

 

한라산을 오르는 공식적인 등산로는 5개가 있습니다. 성판악, 관음사, 영실, 어리목과 돈내코가 그것인데, 현재는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만이 백록담까지 갈 수 있습니다. 나머지 코스는 남벽에서 만나 남벽코스로 백록담까지 올라야하는데, 지금은 이 코스가 자연보호로 폐쇄되어 있어 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해발 1700 미터에 위치한 윗새오름도 경치가 좋아 볼거리가 많아 좋습니다.

 

30분 정도를 걸어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저 앞에 주차장이 보입니다. 

 

▼ 입구를 지나치는 바람에 뒤돌아서 찍었습니다. 카메라를 놓고 오는 바람에 폰으로 찍은 것입니다.

 

▼ 입구는 길이 좋아보입니다. 벌써 앞서가는 분들이 보입니다. 아침 8시를 지나고 있습니다.

 

▼ 제주에서는 이렇게 흐르는 시내를 보기 힘듭니다. 손으로 떠 먹어도 될 정도로 깨끗해 보입니다. 

 

▼ 경치가 참 좋습니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구요.

 

 

▼ 제주의 절경인 '영주 10경'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 한라산 등반이 힘든 것은 길이 이렇게 돌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땅에서 눈을 떼기 힘들기도 하지만, 매우 가파릅니다.

 

▼ 안내판에는 이곳까지 50분이 걸린다는데, 저는 40분이 걸렸습니다. 숨이 턱에 차고 입에서 단내가 납니다. 코스의 빨간색은 어렵다는 뜻입니다. 경치도 둘러보고 사진도 찍을 겸 이곳에서 좀 쉬어야겠습니다.

 

▼ 엄마를 삶아 먹었다는 자식들이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입니다.

 

▼ 한라산에서 볼 수 있는 고사목(古死木)입니다.

 

▼ 봄의 전령사 철쭉꽃이 군데군데 소담스럽게 피어있습니다. 고지대라 그런지 키가 작습니다. 벚꽃, 개나리와 함께 봄에 피는 꽃들은 잎보다 꽃이 먼저 달립니다.

 

▼ 이제 가파른 곳은 끝나고 평탄한 길이 나왔습니다. 아래에서는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였는데, 이곳에서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습니다. 

 

▼ 한라산 정상이 손에 닿을 듯 보입니다. 바람이 꽤나 심하지만, 땀을 식혀주니 좋고 주변의 색다른 풍광이 힘든 것을 잊게 합니다.

 

 제주에 살면서도 제주의 매력을 잘 몰랐었는데, 살면서 하나 하나 알아 갑니다.

우선 어딜 가더라도 가깝다는 것입니다. 제주 내에서는 가장 먼 곳도 한 시간이면 대충 갈 수 있습니다. 바다도 산도 2~30분이면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입니다.

 

또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한여름 휴가철이면 강릉 경포대나 부산 해운대에 십만 인파가 어떻고 하며, 목욕탕을 방불케 하는 장면을 뉴스시간에 보여주곤 하는데, 제주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 없습니다. 한여름일지라도 제주에 들어오는 인원은 비행기 아니면 배편을 이용할 수 밖에 없으니, 결국 배나 비행기 편수에 제한된 인원 밖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함덕 해수욕장이나 협재 해수욕장을 가더라도 육지처럼 붐비지는 않습니다.

 

또한 교통체증이 거의 없고, 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 한적한 곳이 대부분입니다. 비행기만 타면 서울도 한 두 시간 안에 갈 수 있고, 도시와 농촌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청정지역이니 공기가 좋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물도 깨끗해서 수돗물을 그냥 마실 수 있다고들 합니다. 제 생각에 가장 큰 문제점은 쓰레기와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너무 낮다는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어리목과 관음사는 제주에 있고, 영실과 성판악 그리고 돈내코는 서귀포입니다. 영실과 어리목은 한라산 서쪽 등성을 넘어가는 1100 도로에 위치하고, 성판악과 돈내코는 동쪽 등성을 넘어가는 516도로에 있습니다. 관음사는 516가 1100 도로 중간쯤에 위치합니다.

 

드디어 윗새오름에 다달았습니다.

 

▼ 아래 안내판에서 '영실 탐방안내소'에서 윗새오름까지 6.2 킬로를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두 시간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노랗게 표시된 부분 2.1 킬로와 돈내코 7킬로를 걸어서 내려갈 예정입니다. '남벽분기점'에서 백록담까지는 빨간색으로 '출입제한구역'이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지난번 관음사에서 백록담까지 갔을 때, 군인에게 들었던 이야기로는 이곳이 그렇게 멋있다고 합니다. 자기는 해병대라 통제받지 않고 갈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 윗새오름 표지석 뒤로 난 길이 남벽으로 가는 길입니다.

 

▼ 평탄한 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귀를 즐겁게 합니다. 

 

▼ 남벽이라고 불리는 절벽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져 옵니다.

 

▼ 이곳에 샘이 있어 한 바가지 퍼서 마셨습니다.

 

▼ 곳곳에 연보라색의 철쭉이 눈을 즐겁게 합니다. 물을 마시고 잠시 풍광을 즐깁니다.

 

▼ 남벽 분기점을 지나 돈내코 방향으로 조금 내려왔습니다.

 

▼ 돌 투성이의 길을 몇 시간째 걸었더니, 발바닥이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 이렇게 맑은 날에도,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의 특성상 해무(海霧)가 항상 있어서 멀리는 뿌옇게 흐려 보입니다. 

 

▼ 한라산 키작은 철쭉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 끊임없이 딛고 내려가야 하는 돌맹이들이 지겨워집니다. 발바닥도 아프고, 내려가는 길이라 무릅도 풀리기 시작합니다. 어디 적당한 곳에서 쉬어야겠습니다.

 

▼ 드디어 돈내코 입구까지 왔습니다. 남벽분기점에서 이곳까지 7킬로를 내려오는 동안에 딱 다섯 사람을 만났습니다. 세 명은 저처럼 혼자 오르는 사람이었고, 두 사람은 부부인듯 보였습니다. 미국 뉴저지에 살 때, 가끔 혼자 산에 올랐는데 그때도 사람 만나는 일이 별로 없었지요. 그 때가 생각났습니다.

 

▼ 문제는 버스 타는 곳이 없더군요. 택시를 부를까 망설이다가 그냥 걷기로 했습니다. 다시 한시간을 걸어 서귀포 과학 고등학교에서 버스를 바로 탈 수 있었습니다.

 

▼ 걸어 간 덕분에 중간에 있는 '원앙폭포'라는 곳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 6시 10분에 집을 나서서 7시 반부터 걷기 시작해서 오후 두 시까지 6시간 반을 걸었고, 집에 오니 3시 15분으로 9 시간만에 돌아온 셈입니다. 제주니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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