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4일에 쓴 글)
모슬포 시장을 들렸다. 가파도를 다녀오는 짧은 뱃길에도 집사람이 멀미를 심하게 하는 바람에 좀 쉬었다 갈만한 곳을 찾다가 허름한 대폿집을 택했다.
한낮에서 해가 한웅큼 기울어져가는 오후 세 시에서 네 시 사이, 가게 안에는 이미 노인 세 분이 안 쪽에 자리를 잡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너털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 옆에 자리를 잡은 우리 일행은 안주거리를 고르기 위해 메뉴판을 들여다 보다가 '아강발'을 시켰다. 만 2천원 짜리 족발은 너무 부담이 되고, 5천원짜리 아강발이 적격이다. (아강발은 제주도 방언으로 새끼돼지 족발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제주분들은 족발보다는 아강발을 더 좋아한다.)
아강발을 안주로 대낮에 소주 몇 잔을 들이키며, 오늘 다녀온 가파도에 대한 국후담을 나누고 나자 나눌 이야기가 별로 없다. 노인들 옆에 켜져있는 TV가 시장 길모퉁이의 허름한 대폿집에나 있을 법한 한적한 오후 적막을 깨트린다. TV 소리에 자연스레 눈이 옆 자리의 노인 쪽으로 향한다. 노인들 역시 대화가 별로 없이 뜨내기로 보이는 우리 일행이 궁금한지 흘낏거리지만, 환한 미소만큼은 얼굴 가득하다. 테이블 위에는 한라산 소주가 두 병 놓였고, 거의 비워진 오뎅그릇과 단무지가 다다. 소주 안주로는 너무 초라해 보인다.
손짓으로 사장님으로 보이는 주방 아주머니를 조용하게 불러, 귓속말로 전한다.
- 사장님, 저 어르신들에게 순대 한 접시 갖다 드립서. (제주에서 배운 사투리다. 그래봤자 2천원짜리 안주다.)
- 어르신들, 이쪽 손님들이 드리는 거우다. 듭서.
맨 왼쪽 분이 80세, 그리고 78세, 79세 되셨다는 그 분들은, 소주도 한 병 더 드시라는 우리의 권유는 끝내 사양했다. 이제 됐다는 거다. 오늘은 충분하다는 거다. 순대도 한 점씩만 들고 대부분 남기고 가시는 바람에 우리 차지가 되었다. 아마도 생각해준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지 못한 듯하다.
그 분들에게 배운다. 삶의 지혜를, 그리고 어떻게 나이가 들고,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를.
작은 것에 만족하고 적은 일에 큰 웃음을 만들고, 먹는 것에 욕심 부리지 않고, 누가 거저 준다고 해서 덥석 받지 않는다.
저 해맑은 웃음에서 깨닫는다. 어떤 것이 진정, 진정 현명한 삶의 자세인지를……
<후기>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월요일부터 어제 토요일까지 70킬로는 걸을 것 같습니다. 월요일에 15킬로, 화요일 20킬로, 목요일 10킬로, 금요일 5킬로, 어제도 19킬로를 걸었습니다. 때로는 혼자도 걷고, 때로는 함께 걷기도 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눈을 호강시켰습니다. 눈 닫는 곳은 모두 원색의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 가파도에서 휴대폰으로 찍었습니다. 녹색의 보리와 청색의 하늘이 멋진 원색의 조화를 이룹니다.
- 보리밭 너머 멀리에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가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