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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제주의 삶

홀로 걷는 올레길

(2013년 4월 3일에 쓴 글)

 

모처럼 올레길을 걷기 위해 혼자 집을 나섰다. 학원차를 관둔 지도 한 달이 되었지만, 그것도 일이라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꽤나 귀찮아져서 그동안 올레를 걸어본 일이 없었다. 그나마 주노아톰 님 덕분에 지난달 5코스를 걸은 것이 다였다. 4월 1일 월요일은 주노아톰 님도 자원봉사일로 시간이 없다.

 

작년에 마지막으로 개통한 20코스와 21코스 중에서 20코스를 택했다. 제주의 동북 해안 마을인 김녕에서 세화까지 16.5 킬로(약 10마일) 코스다. 해가 적당히 구름 사이로 들락날락거리는 좋은 날씨였지만, 마주 불어오는 바람이 심해 걷기에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 19코스의 종착지이자 20코스의 출발점인 김녕 서포구의 한적한 모습

 

 ▼ 제주에는 이런 정자가 흔하다. 왜 이런 곳만 보면 삼겹살에 쐬주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시조가 한 수 떠오른다든지, 자연에 대한 깨달음이 생긴다든지 그런 고상함과는 멀기만 하다, ㅎㅎㅎ.

 

- 아래 사진들은 제주 바람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

 

- 김녕 해수욕장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 온통 인도를 덮었다.

 

- 모래에 묻혀 길 처럼 보이지 않는다. 

 

- 그래도 바다빛깔만큼은 곱다. 아무리 쓰레기가 많아도 아직은 제주가 청정지역임에는 틀림없다.

 

 

- 올레길을 걷다보면 스토리를 만나기도 한다.

 

- 이곳에 앉아 벗과 함께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한담을 나누는 상상을 해본다. 옆에 시중 드는 아이가 있어 동동주를 곁들이면 더 좋을 것이고. 물론 그럴 리는 없지만.

 

- 2층 정자 위에 올라, 스마트폰을 꺼내 360도를 돌며 찍었다. 보이는 곳이 다 곱고 예쁘다. 정겹기까지 하다.

 

 

 

 

 

- 옛날에는 이곳이 첨단 통신장비 였다나, 어쨌다나. '믿거나 말거나' 

 

 

- 만개한 유채꽃이 곱다.

 

- 바다에서 금방 잡아올린 생선회로 쐬주 한잔......

 

- 11시부터 3시까지 장장 4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서 도달한 종착지. 세화리 해녀 박물관 앞이다. 힘이 들었는지 손가락까지 찍었다. 첫번째 월요일은 휴관이라서 박물관을 구경할 수는 없었다. 이제 남은 21코스도 이번 주에 끝낼 생각이다. 21코스의 끝은 다시 1코스의 시작점이다.

 

<후기>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동안 살면서 저지른 숱한 못난 짓을 용서하고자 노력하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에 감사하기도 하고, 제 곁을 지켜주고 있는 집사람에게도 고마움을 새삼 느끼기도 합니다. 아무 해준 것 없이, 그동안 받기만 했다는 것을 깨닫는 거지요.

 

걸으면서 평소에 하지 못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푸르른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면서, 겸손을 배우기 때문일 겁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한없이 초라한 모습의 군상들은, '은수'님이 詩에서 표현한 것 처럼, 그 속에 섞여 있을 때는 깨달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끔은 홀로 걸어보기도 해야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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