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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제주의 삶

제주의 밀감

(2012년 12월 27일에 쓴 글)

 

제주의 밀감시즌은 11월부터 시작한다. 일부 조생종은 10월에도 나오지만, 노지귤(비닐 하우스가 아닌 일반적인 밀감밭에서 수확하는 귤)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은 11월부터다.


어렸을 때만 해도 밀감은 귀한 과일이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는 제주에서 귤나무 두 그루만 있으면 자식을 대학공부 시킬 수 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가격이 비쌌다는 이야기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그야말로 흔하디 흔한 게 요즘 제주에서의 밀감이다. 개도 귤을 먹을 정도다. (한국살기>'선과장의 개는 귤을 먹는다' 참조, 2011. 3. 2)


20Kg(44 파운드)짜리 콘테이너를 만원주고 사 먹는다. 서귀포 밀감밭에서는 더 싸게 살 수도 있다지만, 우리가 사먹는 곳은 작년에 한나절 일하고는 그 힘든 노역(?)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던 집근처 선과장에서다. (은퇴생활>'일자리 찾기 경험' 참조, 2011.11.3)

밀감은 사이즈에 따라 1호에서 10호까지 분류한다. 1호는 가장 작은 크기이고 10호가 가장 크지만, 제주도 차원에서 품질관리를 하기 때문에 1호와 10호는 상품으로서 외부 반출이 금지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작은 것이 더 당도가 높고 맛있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작은 사이즈가 더 인기가 높다. 이맘때가 되면 해마다 하는 일 중의 하나가 귤을 사서 육지로 보내는 일이다. 서울에 사는 형제에게도 보내고 친구에게도 보낸다. 금년에는 서울에서 보험대리점을 하는 친구에게 보냈다. 망막에 이상이 생겨 앞을 못보게 된 학교친구가 와이프와 함께 영등포에서 보험 대리점을 하는데 많이 힘들다고 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보험회사에서 직접 온라인으로 영업과 판매를 하니 자기같은 중소 대리점은 설 자리가 없다는 거다. 골목 서점들이 온라인 판매로 설 곳이 없다는 이야기와 같다.


제주의 밀감은 통상 '밭떼기'로 거래된다. 9월부터 선과장을 하는 사람들이 귤농장을 돌아다니며 작황을 보고 밭을 사들이고는 사람을 고용해서 밀감을 수확하고, 선과장으로 운반해서 크기대로 선별해서 포장하고 육지의 도매상으로 보낸다. 따라서 선과장이 제주 밀감 거래의 중추가 된다. 선과장에는 상품가치가 없는 밀감을 골라내고, 농약의 흔적이나 흙먼지를 닦아내고, 왁스를 발라 윤이 나게 한 후, 사이즈 별로 박스에 담아 포장하여 대형 콘테이너 트럭에 실어 출하하는 마무리 작업까지 한다.


밀감시즌의 절정은 10월 말부터 다음해 1월말이나 2월초인 구정까지라고 한다. 이때는 일손부족으로 홍역을 치른다. 육지의 농촌에서 농사일이 끝나는 11월이 되면 겨울 일거리를 찾아 제주로 오기도 한다. 귤을 수확하는 일은 대부분 여자들이 하는데 일당 5만원, 남자들은 밀감밭 군데군데 수확한 귤이 담겨진 콘테이너를 트럭까지 운반해서 싣는 일을 하는데 일당 십만원이 보통이지만, 2~30대의 힘센 젊은이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선과장은 비교적 큰 비즈니스다. 밭떼기를 하고 인부를 고용하려면 최소 수억 원의 현금이 필요하고, 선과장 시설도 최소 4~5억 정도의 투자가 필요해 보인다. 이 사업을 하는 사람의 장점은 일년의 절반만 일한다는 것이다. 즉 9월부터 바빠지기 시작해서 보통 다음해 2~3월이면 종료하고, 나머지 시간은 낚시나 여행같은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다.


이 선과장에서도 불법과 탈법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데, 반출이 금지된 1호나 10호 사이즈의 밀감을 내보내거나, 익지 않은 퍼런 밀감을 화학약품으로 노랗게 익혀서 내보내는 것이 그것이다. 발각되는 경우 수천만 원의 벌금을 물리지만, 수익과 연결되니 쉽게 근절되지 않는 모양이다.


제주사람에게 밀감농장의 수익을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알기쉽게 계산해서 천평에 천만 원 수입으로 계산하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농약을 치는 등 돌보는 일이 힘든데, 이런 일들을 남을 시키면 그만큼 수입은 줄어드는 것을 당연한 이야기다. 제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밀감밭이 내가 사는 곳 주변에서는 점점 줄고 있다. 밀감밭을 밀어버리고 주택을 짓는 것이다.


12월 말인 지금이 밀감이 흔한 제주에서도 가장 흔할 때이다. 아침 저녁으로 노란색으로 보기도 좋고, 까기도 쉽고, 맛도 괜찮은 귤을 신물이 나도록 먹는다.


<후기>

제주에서는 매일 출하량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공급을 일정하게 유지하므로써 가격폭락을 막기 위해서 입니다. 또 조생종이나 만생종 등 품종을 개량해서 상품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한라봉, 황금향, 천혜향 등이 그것인데, 당도나 향이 뛰어난 개량품종으로 일반 밀감시즌이 끝난 후에 출하가 되어 상품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밀감농사도 지어보지 않은 제가 쓴 이야기라 정확한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지난 2년 동안 보고 들으면서 간접경험으로 얻어들은 풍월을 재미삼아 제주를 이해하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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