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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

감염질환과 면역질환

(2013년 4월 24일에 쓴 글)

 

- 나갔다 들어와서 손녀를 안아주려고 하면, 딸이 난리를 쳐요. 손도 안 닦고 아이를 만진다는 거지. 같잖아서! 아니, 우리가 지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김치를 빨아서 입에 넣어주고 키웠잖아요. 그런데 그런 말을 하면 펄펄 뛰는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거지. 뭐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다 그렇게 키웠고 다들 그렇게 자랐는데. 난, 싫어요! 아무리 손주들이 귀여워도. 지들 방식으로 키우려면 뭐하러 우리더러 지 아이를 봐달래? 지들끼리 지들 방식으로 그렇게 키우면 되지.

 

'손주를 보면 손주들이 그렇게 귀엽다는데, 안 그러십니까? 손주들 재롱이나 보면서 미국에서 자식들과 사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자식들이 안 그러겠다고 하면 몰라도, 같이 살자고 한다면 말입니다.' 하는 질문에 대한 도치형님의 답이었는데, 그런 대화를 나눈지 벌써 2년이 지났다. 그 도치형님이 두 번째 외손주 베이비시터를 하기 위해 다시 뉴저지에 오늘 가신다.

 

- 이번에 가면 내년 2월에 돌아올 예정인데,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스트레스 받게 하면 언제든 베이비시터 구하라고 하고 일찍 오지 뭐. 딸 아이 출산휴가가 이번 달로 끝나거든.

 

제주의 '통시'만큼은 아니라도, 지난 날은 많이도 불결한 환경에서 생활했다. 넘어져서 까지기도 많이 했고, 연필을 깎다가 베인 적도 많았고, 곪는 일도 흔했다. 그래서 '아까정기'와 '이명래 고약'은 어느 집에나 상비약이었다. 곪으면 짜내고 이명래 고약을 붙이기만 했지, 항생제조차 먹는 일이 없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음식이 쉬 상했고, 그런 음식도 버리기 아까워 데쳐서도 먹고 끓여서도 먹었다. 덕분에 배가 아프고 설사를 자주 앓았지만, 웬만하면 활명수나 먹고 버텼지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제주가 아니더라도, 또 통시가 아니더라도 60년대 서울에서도 지저분한 이야기를 하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씹던 껌을 벽에 붙여 놓고 며칠씩 씹었고, 그거나마 동생들과 쉐어했던 일이며, 학교에서 나눠준 회충약을 먹고 변소에 가면 허연 벌레가 보이던 일 등등. 연탄가스를 마시면 김칫국물을 마셨고, 다친 곳에는 된장을 발랐다. 만원버스에서 밟힌 상처부위가 덧나서 발목이 풍선만큼 부었을 때, 동네 의원에 가서 마취도 하지 않고 상처를 째고 피고름을 짜냈던 일이 어렸을 때 병원을 경험했던 유일한 기억이다.

 

영등포 신길동 우신국민학교 시절 유일하게 단체관람으로 본 영화가 '저 하늘에도 슬픔이'란 영화였다. 요즘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본다면 믿을 이도 별로 없겠지만, 영화 속의 주인공 윤복이와 그 동생들이 살아가는 더러운 모습에 다들 구역질을 할지도 모르겠다. - 그 윤복이의 실제 모델이었던 주인공이 사망했다는 가십기사를 몇 년 전에 본 듯하다.

 

세상은 변해 극도로 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TV에서는 자신들의 제품을 팔아먹기 위해 세균이나 박테리아가 우리 곁에서 우리의 건강을 얼마나 위협하고 있는지 과대광고를 하며 대중들을 매일 협박하고 있다. 가습기, 에어클리너, 살균제 및 각종 위생제품들이 위생에 대한 공포심으로 팔려나간다. 덕분에 지난 백 년 동안 선진국에서만큼은 세균에 의한 감염질환은 크게 줄었고, 인간의 수명은 눈에 띄게 늘었다.

 

인간은 질병으로부터 그만큼 자유로워졌을까? 정답은 '아니다'다. 위생적인 환경에서 감염질환은 현저하게 줄어들었지만, 면역질환은 반대로 크게 늘었다고 한다.

 

▼ 지난 50년간 영국에서의 감염질환과 면역질환의 발생비율

 

인간은 세균으로 이루어진 박테리아 덩어리라고 한다. 인간의 몸 속에는 체세포 보다 박테리아 숫자가 훨씬 더 많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의 위생적인 생활이 이 박테리아를 죽이고 있다고 한다. 몸에 이로운 세균이 항생제에 의해 살균됨으로써 각종 면역질환이 생긴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알러지지만, 요즘 흔한 아토피 같은 질환은 우리가 어릴 때는 듣도보도 못한 질병이었다. 변비나 치질, 건선, 피부염, 각종 대장질환 같은 병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질병은 생명과는 관계 없을 지 몰라도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 세대는 대부분 모유로 키워졌지만, 우리 아이들 세대는 아주 똑똑한 부모를 만나지 않는 한, 분유를 먹고 자랐다. 모유에는 분유에 없는 어떤 성분이 있는데, 이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소화흡수 될 수 없다고 한다. 이 성분은 갓난 아이의 대장에 있는 세균을 위한 양분이라는 것이 최근 밝혀졌다고 한다. 수만 년 동안 진화해온 자연의 신비다.

 

분유를 먹고 자란 아이 세대들은 면역적으로 약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들이 어릴 때 먹은 음식들은 다 거칠었다. 요즘 건강식으로 알려진 자연식이 대부분인 반면에 아이 세대들은 햄버거나 라면 같은 정제되고 가공된 음식을 먹고 자랐다. 또한 이들이 받은 현대교육은 이들을 더욱 위생적 개념으로 무장시켜, 아이들이 감기만 걸려도 병원에 데리고 가서 항생제를 처방받아 먹인다. 우리들 아이들의 아이들은 더욱 더 면역질환에 약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미 손주들을 보신 선배님들도 있겠지만, 수명은 늘어 건강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수두룩하고 우리들은 증손주나 고손주까지 볼 지도 모른다. - 정말 이렇게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 믿거나 말거나. 극도로 복잡화 되고 치열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젊은 부모들은 아이들과 같이 할 시간이 많지 않다. 베이비시터에 드는 비용까지 벌려면 더 열심히 더 바쁘게 일해야 한다. 그에 비해 할머니 할아버지는 옛날의 할머니 할아버지 보다 더 젊고 건강하다.

 

무언가 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 TV에서 캡처한 참고화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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