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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집 이야기 - 셋

(2013년 4월 6일에 작성한 글)

 

서브 프라임 모게지 시절에 미국의 집값도 많이 뛰었다고 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땅이 넓은 미국을 단적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살아본 뉴저지를 예로 들면 1998년 25만 불에 샀던 집을 2004년 46만 불에 팔았고, 그 집은 2006년 말 부동산 거품 절정기에 56만 불까지 갔으나, 지금은 45만 불 이하 수준으로 보인다. (이 글을 쓰기 위해 www.weichert.com 참고)

 

1991년 7천만 원에 분양받았던 한국의 분당 아파트(입주는 94년)는 1996년 2억 천만 원에 팔았고, 1998년 IMF 때는 1억 5천 이하로 거래되다가, 2007년 최고점에 6억 5천까지 올랐으나 지금 현재는 4억 5천에도 거래가 잘 성사되지 않고 있다. (부동산 뱅크와 www.serve.co.kr 참고)

 

위 두 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한국의 집값 거품은 미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거기다 분당의 아파트는 지어진 지 20년이 다 된 노후 아파트로 거주할 주택으로는 열악한 상태라고 한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경험을 거의 한 적이 없는 한국은, 떨어지는 부동산을 잡기 위해 정부에서는 부동산 4.1 대책이라는 특약처방을 하고 있다. 그러나 떨어지는 부동산 가격을 인위적으로 잡을 수 있을까? 부동산 가격이 다락같이 올라갈 때, 억제정책이 제대로 먹혔던 적이 있었나?

 

 ▼ 한국 부동산 가격의 하락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미숙한 부동산 정책으로 잔뜩 부풀려진 거품이, MB의 토건정부를 만나 건설회사들 배만 불리는 정책과 금융기관들의 돈놀이, 오르기만 하는 부동산 환상을 쫓는 불나비 같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커질대로 커지고, 그 거품이 꺼지는 것은 이제 시작일뿐이라는 생각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 정부에 큰 책임이 있고, 거대 광고주인 건설회사의 눈치를 보며 그 위험성을 경고하지 않은 언론도 책임이 적지 않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부동산을 돈벌이 투기의 대상으로 삼은 당사자겠지만, 정부와 각종 언론의 얼토당토 않은 과장에 속은 선량한 피해자도 없지 않다.

 

대통령이었던 MB는, 지금은 재앙이 된 영종도 하늘도시 착공식 행사에 참석해서 핑크빛 청사진을 연설했다. 대통령까지 서민들을 울리고, 건설사의 배를 불리는 사기극에 동참했던 것이다.

 

 ▼ 지금까지의 아파트 시장. 공급자는 싸게 구입한 땅을 비싸게 팔아 이익을 챙기고, 분양받은 사람들은 시세차익을 챙겨 재산을 증식하는 수단이 되었다. 모두 다 아파트가 오르기만 하던 호시절 이야기다. 아파트가 떨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기존의 공식은 깨졌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는 과도기다.

 

▼ 하늘도시 초고층 아파트에 당첨되었을 때는 로또에 맞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재앙이 닥치고 있다.

 

 

 

뉴저지 중부 브릿지워터 타운의 콘도에 살 때, 이웃에는 뒤늦게 미국에 온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다. 잠실에 열 서너 평 짜리 저층 아파트를 갖고 있던 그 친구는 재건축되는 바람에 10억이 훨씬 넘는 40평대의 고층 아파트를 갖게 된 것이었는데, 자신이 갖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자부심(?)이 참 대단했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미국의 부동산이 폭락하고 있을 때, 한국도 인구가 줄어드는 판국이니 언젠가는 아파트 값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면 펄펄 뛰었다.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라는 것이 그 친구의 주장이었는데, 그를 통해 한국사람들의 아파트에 대한 절대적 신앙(?)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지방은 서울보다 모든 것이 몇 년 늦게 가는 경향이 있다. 이곳 제주는 더 늦는지도 모르겠다.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고, 분양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이곳 제주는 도심에서 분양되는 아파트에 돈이 몰리고, 당첨만 되면 분양권은 다음날 바로 2~3천만 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가 되었다. 3~4년 전만 해도 밀감밭이었던 곳이 개발되어 다세대 주택 건설이 붐을 이루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주변에도, 이사올 당시 밀감밭이었던 곳이 지금은 연립주택 단지로 변해서 분양한다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엊그제 목요일에는 주노아톰 님과 함께 올레 21코스를 걸었는데, 완주 후에 아톰님의 제안으로 김녕에서 분양하는 타운하우스 단지 '오션뷰 2차' 건설현장을 갔었다. (http://cafe.daum.net/realty/8tuY/17348?docid=4156018671&q=%BF%C0%BC%C7%BA%E4%202%C2%F7) 평형에 따라 20만 불 안팍인 가격이 과연 합리적인지 의심스러웠다. 오션이 보이기는커녕 웅덩이에 고인 물조차 안 보이는 외딴 잡목지를 개발하여 18채의 타운하우스 형식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것인데, 내 눈에는 별장으로도 메인 홈으로도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5년 전에 본 머틀비치(Myrtle Beach: 노스 캐롤라이나와 사우스 캐롤라이나 경계에 위치한 세계적인 골프 리조트 지역)의 은퇴하우스가 생각났다. 비슷한 가격이지만, 규모에 있어서 이곳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났다. 크고 좋은 집에 애착을 갖는 분들이라면 미국이 훨씬 좋을 것 같다. 여유가 아주 많은 분이 아니라면.

 

제주의 부동산은 제주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도심 중심권의 주택은 인기가 있어서 대규모의 아파트 분양에도 추첨을 할 정도로 신청자가 몰리는데, 중심권에서 10분 15분만 떨어져도 인기가 별로다. 김녕은 30분 이상 떨어진 곳이다.

 

제주 중심권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명도암 관광목장' 이란 제주 명소가 있다. 그 주인이 목장을 팔고 싶어한다. 만 8천여 평으로 교포타운을 건설하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생각해서 주인을 만나서, 구상하는 바를 이야기 해보았다. 땅값만 8~90억원, 건축비는 평당 3~4백만 원으로 아무리 적게 잡아도 2백억 이상이다. 백 가구가 들어선다 해도 가구당 2억 이상이 된다는 뜻이다. 제주에 동포타운을 만들어보려는 시도는 접어야할 것 같다.

 

<후기>

쓰다보니 부동산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만, 저는 부동산 전문가도 아니며 아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그냥 살아온 경험에 근거해서 쓰는 것이니 재미삼아 참고만 하시고 판단은 마시기 바랍니다.

 

한국에서는 '국민행복기금'이라는 것을 만들어, 하우스 푸어(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투기에 실패한 사람 포함)의 은행이자부담을 줄여주고, 빚을 갚지 못하는 신용불량자들의 빚을 탕감해 준다고 합니다.

참, 좋은 나라지요?

반면에 미국은 참 나쁜 나랍니다. 서브 프라임 사태 때 당한 사람들도 이렇게 정부에서 도움을 주었더라면......


제 분수를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온 대다수 사람들의 상실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는 문제가 되지 않나 봅니다. 또 돈놀이로 돈을 벌고자 무작정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들도 아무런 피해가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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