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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먹거리 이야기 - 셋

(2013년 4월 16일에 쓴 글)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인들과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들의 길고 긴 식사시간은 정말 고역이었다.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할 말도 별로 없는데, 한시간이 넘는 시간을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그들과 앉아 있는 것은 정말 힘들었었다. 설렁탕, 육개장, 순두부나 짜장면, 우동 등 한마디로 끝나는 주문과 바로 나오는 음식에, 그리고 아무리 길어도 20분이면 충분한 식사시간에 익숙한 사람이, 학생시절 수업시간 질의응답(?)을 연상케하는 주문에, 술도 마시지 않으면서 웃고 떠들면서 마냥 자리를 지키는 식사라니!

 

30년 전,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온 연수생 세 명을 환영하는 자리가 근사한 스테이크 집에서 열렸다. 동아시아 담당 영업부장과 프로젝트 매니저 및 엔지니어들이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아페타이저에서, 샐러드, 드레싱, 메인디쉬, 사이드디쉬, 디저트까지 웨이츄리스의 질문은 계속되었고, 나오는 접시들을 차례차례 비우자 메인디쉬인 스테이크가 나올 때는 배가 불러 먹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나도 적게 먹는 편은 아닌데, 그들이 먹는 양에 비하면 조족지혈(?) 수준이었다. 아페타이저인 스프부터 디저트인 케익까지 다 비우는 사람들을 보고 참 놀랐었다. 7~8개월된 임신부 처럼 배가 나온 그 영업부장, Mr. Gary Breeker가 지금도 그런 식생활을 유지하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있을까? 참 궁금하다.

 

그때 얼마나 혼(?)이 났는지, 지금도 풀코스 스테이크 식당은 꺼려진다.

 

나이가 들수록 소식이 좋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는 않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많이 먹어도 슬림하고, 어떤 사람은 적게 먹는 것 같은데도 체중이 늘기도 한다. 과학적으로는 신진대사가 얼마나 활발한지에 따라 다르다고 하지만, 100% 수긍이 가지는 않는다. 조상을 잘 둔 덕에 그런 체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해가 쉽다. 그러나 체질이라는 요인을 빼면, 먹거리가 건강에 직결된다는 것은 자명하고 소식할수록 건강에 유리하다는 것도 일반적이다.

 

나이가 들면 신진대사 활동이 축소되고, 그만큼 칼로리 소모가 줄어들기 때문에 음식물 섭취로 인해 남는 초과 칼로리는 지방이 되어 피하층에 축적되며, 온갖 성인병이 원인이 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현대의 건강상식이다. 특별한 체질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 한 먹는 양을 줄이거나 아니면 운동으로 에너지 소모를 늘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각종 성인병을 달고 병원과 약에 의지해 살 수 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참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커다란 냉장고를 키친과 게러지에 각각 두고도, 한 달에 두어 번 코스트코나 한아름에서 쇼핑하고 오면 틈도 없이 쑤셔 넣어야 했다. 배가 고프면 이상하게 허전해서 잘 참지를 못했다. 스트레스를 받은 날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먹을 것은 항상 있었다. 박스로 사다놓은 맥주나 소다, 쥬스 등 마실 것부터 각종 캔음식과 과일 생선 고기류까지 꽉꽉 채워넣었으니까. 주말에 40마일씩 운전해서 가는 쇼핑이니, 언제 어떻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카트에 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띠고 먹을 만해 보이면 담았고, 냉장고를 뒤지면 언제 뭐하려고 샀는지도 모를 식품들이 안쪽 구석에서 나왔다.

 

수입(收入)도 있었지만, 세금내고 모게지 내는 등 다른 씀씀이에 비하면 먹거리에 드는 비용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부담도 없었고, 내가 번 돈으로 내 가족을 위해 진짜(?) 지출한다는 즐거움까지 느꼈다. 카트 위에 넘치도록 담아도 1~2백 불이면 충분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집사람과 함께 마트에 가면 불평이 나왔다. 뭐가 이렇게 비싸! 카트가 헐렁한데도 계산대에서는 십만원이 훨씬 넘었다. 집에 하나뿐인 냉장고는 언제나 썰렁하다. 이곳에서는 필요한 것, 당장 해먹을 것만 사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해서 먹을지 생각해서 카트에 담는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짜증이 났지만, 익숙해지고 적응이 됐다. 마트까지 5킬로만 운전하면 되는데, 언제 먹고 쓸지도 모르는 물건을 사둘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필요할 때, 먹고 싶을 때 그 때 가서 구입하면 된다.

 

지금까지는 가급적 넓은 공간을 두고 채우고 늘리는 삶을 살았다면, 앞으로는 버리고 비우는 삶을 사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날이 갈수록 전과 같지 않은 몸은 그렇게 살라는 자연의 신호다. 매순간 죽음에 한치씩 가까워진다. 죽는 그 날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또한 살기위해 먹고 마시고 일하고 운동을 한다. 그렇게 삶과 죽음은 병행하고 동행한다. 분명한 것은 지난 날에는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 보다 훨씬 많았지만, 이제는 그 반대다. 살아가는 방법을 바꿔야 하는 충분한 이유다. 사는 방법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 습관과 버릇을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꿔야 한다. 그래야 행복해진다. 그래야 편안한 여생을 누릴 수 있다.

 

'많이 갖고 채우는 삶에서 버리고 비우는 삶으로'

 

<후기>

소식이 좋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먹거리에 대한 유혹을 쉽게 떨쳐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녁만 되면 생각나는 한 잔 술의 유혹도 그렇고, 음식을 남기지 못하는 습관도 그렇고, 시장기가 느껴지면 괜히 안절부절 못하기도 하고, 배고프지도 않아 식욕이 없는데도 때가 되면 식탁에 앉는 버릇도 그렇고.

 

습관과 버릇이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인데 그것을 바꾼다는 것이 용이한 일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건강이 이상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바꿔야 한다는 생각도 점점 강해집니다.

 

그러다가 3월 초에 방영한 SBS스페셜 '끼니반란'이라는 프로를 보고, 저에게 맞는 방법일 것라는 생각에 일일단식이라는 것을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즉, 24시간을 금식하는 것인데, 저녁을 먹고 그 다음날 저녁까지 단식합니다. 그러니까 아침과 점심 두 끼를 먹지 않는 겁니다. 3주째인데 체중이 약간 줄었습니다. 계속해보고 효과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 다시 글을 쓰겠습니다.

 

▼ 끼니반란의 한 장면. 24시간 단식이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고생스럽게 오래 단식을 해봐도 효과가 적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이민을 생각하신다면, 그것을 삶의 방식을 바꾸는 모티브로 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버리고 비우는 삶은 이곳이 더 쉽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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