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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집 이야기 - 하나

 

▲ H 여사의 안내로 방문하게 된 K 사장의 제주별장

 

집사람이 미장원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 된 분이 있어서, 언니, 동생 하면서 서로 연락하고 가끔 왕래하기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홀로 살고 있는 이 분의 집은 서귀포에서 외돌개로 접어드는 경치좋은 곳에 있는데, 바다가 보이지는 않지만 거실에서 보는 한라산 전경이 그럴싸하다. 듣는 바로는 그 근처가 도시 사람들의 별장지대라고 한다.

 

지난 3월 초, 집사람이 그 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며 가자고 하는데, 때마침 다시 제주를 찾은 '주노아톰'님과 연락이 되어 같이 하게 되었다. 점심 끝에 차를 마시고 환담을 한 후, H 여사가 이웃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같이 가도 되는 자리라면서 집구경이나 하러 가기를 권했다.

 

제주에서 그렇게 좋은 집은 처음 보았다. 아무 생각없이 찾아간 집은 입구부터가 틀렸다. 리모콘을 누르자 배꼽 높이의 얕으막한 대문이 양쪽으로 크게 열렸다. K사장이라고 불리는 집주인이 보여주는 정원과 집 내부는 한눈에도 전문가의 손길을 탄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500 평(1.23 에이커)의 대지에 현대미술 감각을 살려 지어진 2층집은, 앞 뒤 정원에는 멋진 정원수와 각종 정원석으로 장식하고, 분수까지 두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배려했다.

 

넓게 터진 거실의 남쪽으로 난 창은 전체를 통유리로 하여 제주 남쪽 바다의 시원스런 전망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도록 했고, 너댓 개의 침실과 서너 개의 화장실은 많은 사람들이 오더라도 지내는데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 집 좋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어야 집주인이 좋아해. 이런 집 짓고 사는 재미가 뭐겠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니겠어. 그냥 감탄 많이 하고 정말 좋다고 칭찬 많이 해주어야지.

 

객(客)들이 해야 할 일을 우리는 귓속말로 전달하며 집구경을 하는 동안, 연신 감탄사를 쏟아내며 질문을 했고 집주인이 하는 대답을 들었다.

 

- 해안에서 높이가 80미터 정도 되는 절벽위에 지어졌기 때문에, 태풍이 불더라도 소금기가 올라오지 못합니다. 파도가 절벽에 부딛혀 되돌아 가지요. 그리고 집을 지을 때, 염해나 습기, 곰팡이에 대비를 했습니다. 방염처리가 된 시멘트나 페인트를 사용했고, 철근이야 텅스텐을 쓸 수 없어 일반철근을 사용했지만, 그외에 모든 자재는 텅스텐 같은 녹이 슬지 않는 자재를 썼어요. 곰팡이가 생기지 않도록 벽 속에 숯을 넣었구요.

 

- 철근을 마무리 할 때 쓰는 철사 같은 것도 시멘트 안에 묻히니까 괜찮을 수도 있지만, 혹시 녹물이 흘러나올까봐 텅스텐 철사를 썼습니다. 제주에서는 구할 수 없어서 서울에서 가져와서 인부들에게 사용하라고 주었는데, 인부들이 얼마나 고집이 센지 쓰지 않는 거에요. 자기들 식으로 하는 거지요. 그래서 인부들이 가고 나면, 인부들이 묶어놓은 것을 일일이 풀고 내가 다시 밤새 시공을 했지 뭡니까? 제주 사람들 정말 말 안 들어요!

 

- 풀장도 만들려고 했는데 허가가 나지 않아서 정원에 못 만들고, 요 아래 이렇게 조그맣게 만들었어요. 정원에는 사우나 시설은 된다고 해서 사우나를 만들려고 해요. 빗물을 저장하는 큰 탱크를 땅 밑에 묻어서 그 물을 활용합니다. 그래서 정원이 넓어도 물값이 별도로 들지는 않습니다.

 

 ▼ 집구경과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환담을 한 후, 집을 나서고 있다. 애석하게 앞 마당을 찍지 못하고 뒷 마당만 찍었다. 손님이 나오자 뒷마당 분수를 가동시켰다. 분수 건너편 오른쪽이 주노아톰, 왼쪽 옆모습이 집주인이다.

 

집주인이 외로워 보인 것은 집이 큰 탓이었을 거다. 우리가 가고 난 후, K사장은 그 큰 집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했을까? 우리가 남겨놓은 빈그릇을 설거지 했을까? 그 좋은 경치도 어쩌다 한 번 보아야 감탄이 나오지, 항상 본다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나와 동갑인 집주인은 더 나이가 들면 아주 살기 위해 그렇게 좋은 집을 큰 돈과 많은 노력을 들여서 지었겠지만, 지금은 동반한 가족 하나 없이 홀로 와서 지내는 이유는 알지 못한다.

 

지난달 말 무렵에는 H 여사로부터 또 한 번 연락을 받았다. 마침 주노아톰 님과 서귀포 근처를 걷고 있었는데, 장어 바베큐를 하니까 오후에 들리라는 것이다. 같이 가보니 바베큐 장소가 H 여사 집이 아니라, 그 이웃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의 노인이 혼자 기거하는 집으로 절벽위의 모통이에 위치하고 있어 조망이 환상적이었다.

 

▼ 노인의 집 앞마당에서 내려다 본 서귀포 법환포구와 새섬. 몇 시간 전에 주노아톰 님과 저 새섬을 걸었었다.

 

▼ 저녁무렵이지만, 절벽 위 정원에서 내려다 보이는 서귀포구의 전망이 아름답다.

 

▼ 맛은 보이는 경치만큼은 아니지만, 비릿한 장어와 고소한 삼겹살을 주노아톰이 열심히 굽고 있다. 술에는 관심이 없는 아톰님을 대신해 나는 와인과 맥주를 연신 비웠다.

 

- 낚시가 좋아서 이곳에 집을 지었어요. 전에는 배도 한 척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 힘이 부쳐서 없앴어요. 지금은 낚시도 잘 안 갑니다.

 

여든 한 살이라는 노인은 기운이 없어 보이기는 했다. 충청도 어딘가에서 과수원을 크게 한다는 노인은 한 달에 보름은 이곳에 내려와 산다고 했다. 젊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는데, 어찌해서 노인 홀로 제주에 내려와 지내는지는 알 길이 없다.

 

- 아이구, 할아버지! 어쩌면 이렇게 좋은 곳에 집을 지으셨어요. 너무 좋네요. 그리구 어쩌면 이렇게 깨끗하게 해놓고 사세요, 할아버지가. 정말 예쁘게 잘 해놓고 사신다.

 

입심 좋은 와이프가 연신 감탄사와 함께 칭찬을 쏟아내며, 좋은 경치를 구경하며 바비큐에 초대받은 값을 치루고 있었다.

 

<후기>

오래 전 칼라방송을 처음 시작했을 때, 14인치 짜리 TV를 구입했었습니다. 채널을 바꿀 때마다 안테나를 이리 돌리고 저리 맞추어야 겨우 볼 수 있을 만하게 화면이 잡혔었지요. 그래도 좋은 프로를 할 때면 온 가족이 그 작은 TV 주위에 몰려 앉아, 작은 화면을 응시하며 마냥 즐거웠습니다. 그러다가 20인치 TV로 바꾸었을 때는 얼마나 크게 보였던지  마냥 행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두 달이 지나 다른 집에 가서 14인치를 보면 왜 그리 작아 보이든지.......

저도 불과 한 두 달 전에는 큰 불만 없이 행복하게 보았으면서.

인간의 속성 중의 하나인 중독성 때문입니다.

 

그 분들은 집에 있으면 제주의 별장이 그립고, 제주에 내려와 있으면 아마도 집의 일이 궁금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애써서 집을 제주에 마련해 놓았는데, 가서 즐기고 싶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같이 즐길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언제까지나 변치않는 행복한 마음이겠지요. 보다 큰 TV를 살 때 처럼, 한 두 달만 행복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옛날 작은 TV를 보았을 때도 충분히 행복했었습니다. 다른 집의 큰 TV를 보기 전까지는. 지금은 50인치 대형화면에 마치 사진 처럼 선명한 첨단 TV를 보고 있지만, 맨 처음 칼라 TV를 가졌을 때 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하하,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다른 이야기로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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