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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먹거리 이야기 - 둘

(2013년 3월 19일에 쓴 글)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이 '월평동'이다. 월평동이란 이름을 가진 동(洞)은 전국에서 세 군데 뿐이다. 대전과, 서귀포 그리고 제주다. 제주에서 대대로 살아온 분들의 말을 들으면 옛날에는 '다라굿네'라고 불렸다고 한다. 다라굿네가 어떻게 월평동이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 동네에 새로운 신작로가 뚫리고 나서 근처에 새로운 버스 정류장이 생겼는데, 그 정류장 이름이 '달샘마을'로 상당히 詩的인 어감이 묻어난다. 그러고 보니 월(月)과 '다라' 그리고 '달'이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우당도서관'에서 향토기록에 관한 서적을 본 적이 있다. 제법 두꺼운 책이라 자세히 읽지는 못했지만, 월평동에 관한 기록을 볼 수가 있었다. 그 책에 의하면, 60여 년 전만 해도 이 곳에는 11가구 100여 명이 살았다고 전하는데, 보통 가정에서는 하루에 한끼만 먹을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잘 사는 집이나 특별한 날에만 두 끼를 먹을 수 있었다는 거다.

 

이 책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인류가 하루 세끼를 먹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불과 100여 년에 불과하다고 하며, 한국에서는 해방 이후라고 보는 것이 보통이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가 생기고 대규모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일의 능률 즉 노동력을 최대한 착취하기 위해서 점심시간에 먹을 것을 허용했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지금도 영국과 영국령에서는 오후에 '티타임'이라는 것이 있는데, 두끼 식사 시절의 흔적이 아닌가 추측한다.

 

점심은 한자로 點心이다. 즉, 마음에 점을 찍듯, 요즘 같은 제대로 된 식사는 아니었던 듯하다.

 

현대병으로 일컬어지는 고혈압, 당뇨, 암 같은 질병은 세끼 식사 이전 시대에는 흔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끼 식사를 하게 된 현대에 이르러 나타난 병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풍부해진 먹거리가 한 편에서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과유불급, 너무 먹어서 영양과잉으로 생기는 병이다. 비만이 만병의 근원임이 현대과학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때가 되면 먹는 유일한 포유류가 인간이다. 최근에는 배가 고프다고 느끼는 공복상태가 자연치유력을 극대화하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서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한국인의 비만율. 옛날과는 다르게 가난한 사람들이 비만해지는 선진국형 비만이다.

 

빨리 먹는 습관도 포만감을 방해해서 안 좋다고 하지만, 나만 그런지는 몰라도 음식을 무척 빨리 먹는 편이다. 이런 버릇이 왜,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어릴 때 많은 식구들 틈에서 맛있는 반찬을 없어지기 전에 먹어치우기 위해서 전쟁을 치르듯 식사를 했었던 가난했던 시절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보잘 것 없는 도시락 반찬을 얼른 감추기 위해서 잽싸게 먹어치웠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점심시간 버릇 때문이었을까? 그도 군대에서의 버릇 탓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군대 갔다온 분들은 알겠지만, 훈련소에서는 선임하사라는 인간들이 인간의 본능인 먹는 것 까지 재촉한다. '식사종료 10초 전, 5초 전…, 1초 전, 식사 그만, 일어난다, 실시!' 하며 그러지 않아도 배고픈 훈련병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한 숟갈이라도 더 입에 밀어넣기 위해서 일어서면서 입에 든 것을 우물거리기라도 하면, 영락없이 지적을 당해 식판을 높이 들고 벌을 받는다.

 

'사회에서는 안 그랬는데, 내가 군대 와서 또라이가 됐나보다' 하고 짠밥통 앞에서 복창을 해야 했다. 하하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웃기는 이야기다.

 

군대 졸병시절에는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먹어야 했다. 그것도 가능하면 많이. 덕분에 제대할 때는 체중이 10킬로나 늘어 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아직도 음식을 잘 남기질 못한다. 하긴 어렸을 때, 그릇에 밥풀이라도 남길라 치면 혼나긴 했다. 농부의 수고를 알라고 외할머니로부터 호통을 당했던 기억이 있다. 빈 밥그릇에 숭늉이나 냉수를 붓고 휘휘 돌려 마시는 걸로 식사를 끝냈으니까.

 

그런 버릇이 있어서 그랬을까! 미국에서 흔하디 흔하기도 하지만, 귀하기도 한 먹거리가 버려지는 것이 참 안타깝고 아까웠다. 회사에서 야유회라도 갈라치면, 소다나 맥주 캔들이 반도 더 남은 채 버려지고, 구역회 같은 모임에서도 식당에서도 참으로 많은 먹을 것들이 버려진다. 뭔 놈의 Disposal(일회용)은 그렇게 많이 사용되는지, 참 천벌(?)을 받아 마땅한 나라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각종 다큐멘터리들은 1불로 하루를 살아가는 아프리카나 남아시아의 기아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전세계 곡물의 80%가 10대 메이저 곡물거래상에 의해 중개된다고 한다. 이들은 철저하게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인간의 생명 따위는 이들의 안중에도 없다. 기상이변을 예측하여 미리 매점매석을 하고 비싼 값에 곡물을 팔아넘김으로써, 먹을 것을 살 수 없는 가난한 나라의 수많은 생명들이 기아로 인해 죽어간다고 한다.

 

한국이 배출한 성인(聖人) 故 '이태석 신부'의 '울지마 톤즈'를 보면 기아의 참상이 잘 드러나 있다. 인스탄트 식품이 최고로 발달한 일본에서는 매년 소비되는 식량의 40%가 버려진다고 한다.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도시락을 비롯하여 보존기한이 조금이라도 지난 식품은 무조건 폐기처분되는데, 그 양이 그야말로 엄청나서 아프리카의 몇 개 나라 기아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지구 한 편에서 벌어지는 풍요의 잔치는 그 반대 편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디딤돌로 한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 아빠, 나는 누가 내 밥을 뺏어 먹으면 기분이 나쁘다. 내가 준비한 도시락이니까 내가 먹을 양만 가져왔는데, 어떤 아이들은 젓가락만 가지고 다니며 밥까지 뺏어가는 거야. 아유, 얄미워! 내게 먹어야 할 것을 다 먹지 못하는 것 같은 거야.

 

도시락을 싸가지고 딸과 함께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퇴근 길에 딸래미가 했던 말에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하하, 너도 나를 닮아서 먹을 욕심이 많구나.'

 

그렇지! 누군가가 내 것을 가져간다면 내 뱃 속을 제대로 채울 수가 없겠지, 돈으로 빼앗아 가든, 힘으로 가져가든 아니면 친분으로 집어가든. 세상은 어차피 불공평한 것이니까! 이 놈의 불공평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만드는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먹거리'를 소재로 써보고자 한 시도가 엉뚱한 데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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