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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Stay hungry, stay foolish!

(2013년 3월 21일에 작성한 글)

 

'Stay hungry, stay foolish'

 

스티브 잡스가 2005년 6월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의 유명한 구절이다. 번역본을 보면 이 문구를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버텨라'고 의역하고 있는데, 영어가 짧은 나로서는 너무 의역이 심하지 않았는지 고개가 갸우뚱거려 지기도 한다. 그는 이 문구를 'The Whole Earth Catalog' - 당시 스티브 같은 젊은 세대의 바이블 같은 책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대에 한국에서 살았던 나는 안타깝지만 이 책의 존재조차 모른다 -  라는 책의 뒷표지에서 인용했다고 한다.

(자막있는 연설 동영상 보실 분은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7aA17H-3Vig)

 

▼ Back cover of 'The whole earth catalog' book.

 

미국 최고 명문 중의 하나인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식에 초대된 스티브는 자신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부끄러울 수도 있는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고, 자신이 세운 회사 애플에서 쫓겨난 참담한 실패를 밝히고, 췌장암으로 인해 죽음을 예견해야 했던 이야기를 함으로써, 6월의 북가주 뜨거운 태양 아래 식장을 가득 메운 졸업생들의 석세스 스토리 기대는 저버렸지만, 많은 이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감동을 남겼다.

 

용기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미혼모로부터 축복받지 못한 출생과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가난한 양아버지, 그리고 가난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던 과거와 자신이 영입한 경영진에 의해 자신의 회사로부터 축출당한 쓰라린 경험을 발판으로 더욱 창조적인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실패한 이유에 대한 훌륭한 변명거리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스티브에게는 또 다른 성공을 향한 디딤돌이 되었을 뿐이다.

 

그런 스티브에 비하면 작금의 한국에는 비겁하다 못해 비굴한 자들이 넘쳐난다. 한 나라의 정책을 이끌어갈 장관후보들이 과거의 행적에 대해 변명과 핑계 대기에 급급하다. 떳떳하지 못했던 과거를 가리고 숨기기에 전전긍긍하다가, 발각나면 온갖 핑계와 변명으로 일관한다. 급기야 초호화판 별장에서 국가와 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문란한 파티가 최대 이슈가 되고 있다. 검찰총장에 거론되다 탈락된 댓가성으로 법무부 차관에 임명되었던 김학의라는 사람이 이에 연루되어 6일만에 사퇴했다.

 

◀ 굳은 표정의 金차관 성접대 의혹이 제기된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21일 오후 사표를 제출하고 굳은 표정으로 과천 법무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 차관은 입장 자료를 통해 “의혹이 사실이 아니다”라면서도 “더이상 새 정부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차관은 이날 A4용지 1장 분량의 설명 자료를 통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지만, 저의 이름과 관직이 불미스럽게 거론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저에게 부과된 막중한 소임을 수행할 수 없음을 통감하고, 더이상 새 정부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직을 사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차관은 “확인되지도 않은 언론 보도로 인해 개인의 인격과 가정의 평화가 심각히 침해되는 일이 더이상 없기 바란다”며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가 반드시 진실을 밝혀,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명예를 회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 동아일보 기사 발췌)

 

그는 속옷 차림으로 30대 접대부 여성과 가요 '무조건'을 부르며 성행위를 하는 동영상에 찍혀 있고, 접대부 여성이 확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끝까지 부인하고 있다.

 

이런 사람이 그동안 검찰의 수뇌부 등 요직에 있었고, 또 검찰총장 물망에 올랐다니, 지도층 인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문란한 사생활을 하는 부유층의 치정사건이 없었다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사건이었고 이 문제의 인물은 법무부 차관을 거쳐 검찰총장에 올랐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또 계속되는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이 인물이 검찰총장이 되었다면 더 큰 부패가 기다리고 있었다고 전한다.

 

윤 씨가 고위층 성접대 동영상을 갖고 있다고 폭로한 여성사업가 K 씨는 21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윤 씨가 (특정 인사)의 청문회를 보면서 ‘자는 것도 찍어놓고 해서 그걸 다 까면 정권도 바뀔 수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K 씨는 또 “윤 씨한테서 ‘OOO가 검찰총장이 되면 크게 한번 써먹을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며 윤 씨가 성접대 장면을 촬영한 이유를 설명했다. (동아일보 3월 22일자 보도)

 

스티브 잡스 이야기를 하다가 딴 곳으로 샜다. 요즘 자기 배만 불리려는 사람과 똑똑한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구절은 참 신선한 느낌이지만,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버텨라!'는 별로 신선한 감이 없다, 적어도 내게는.


최근에 방영한 SBS 스페셜 건강관련 프로그램 '끼니 반란'(1부 3월 10일, 2부 3월 17일 방영)을 보고 큰 공감을 받았다. 배고픈 상태 즉, 공복(空腹)상태가 건강한 몸의 균형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 다른 체질을 갖고 있는 탓에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론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많이 먹고 소화를 잘 시키는 전형적인 태음인 체질인 내게는 맞는 방법일 것 같았다.

 

현재 인류에 가까운 모습의 인간은 약 40만 년 전에 탄생했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즉 40만 년 동안 수렵과 채취생활을 영위해 온 인간은 '적게 먹고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적응력을 갖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Stay hungry'에 40만 년 동안 익숙한 인간이 'Stay full'로 산 것은 몇 천 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똑똑한 사람들로 넘치는 세상이다. 그러지 않아도 두뇌회전이 빠른 젊은이들이 컴퓨터와 스마트폰, 인터넷과 첨단 통신으로 어릴 때부터 무장하여 더더욱 똑똑한 '디지털 신인류'로 탈바꿈하여 아날로그 세대인 우리는 비교대상 조차 되지 않는다.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올리는 법을 학습하고 자신의 적성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수입이 좋은 직업을 쫓는다. 경제나 법을 공부해야지, 철학이나 문학 나부랭이를 공부하는 사람은 따돌림 받는 사회가 되었다. 다들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문대학에 들어가고도 학비가 없어 중퇴하고, 청강생이 되어 자기가 좋아하는 수업만 들었던 어리석은 젊은이가 있었다. 잠잘 곳이 없어 친구들 기숙사 마룻바닥에 쪼그려 자고, 5센트 짜리 캔을 주워서 끼니를 때워가며 돈 되는 학문이 아닌 서체(書體)에 매료된 젊은이가 세계 최고의 회사를 만들었다. 그것도 자신의 부하들에게 배신까지 당하며.

 

'Foolish'가 'Smart'를 이긴 것은 'Smart'도 모자라 'Smarter'를 추구하는 사회에서 통쾌한 복수같아 청량감까지 느껴진다.

 

하긴, 누굴 탓하랴! 나도 그렇게 살아온 것을. 남들 보다 한 발 앞서고 싶었고, 시시한 것에는 시간 쓰기를 아까워 했고, 내가 잘 나서 누리고 있다는 교만 속에서 살아온 지난 날이 부끄럽다. 이제 노안도 찾아오고, 기억력도 떨어져 매사에 자신이 없어지고 나서야 어리석은 인간에게는 'Stay hungry, stay foolish'가 어떤 뜻이었는지 새삼 다가온다. 어떤 동갑내기 천재는 40년 전에 깨달았던 것을.

 

역이민이나 역거주는 'Stay foolish' 할 분들에게 더 맞는 것 같다. 그 좋은 환경을 가진 미국이나 캐나다를 뒤로 하고 오는 사람들은 최소한 스마트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주노아톰씨 처럼……

 

<후기>

날이 좋았던 어제는 아톰님과 올레길 5코스를 걸었습니다.

거꾸로 쇠소깍에서 남원포구까지 14.7 킬로의 길을 한 번도 쉬지 않고 3시간 반 만에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요. 19살에 다녀간 제주도를 40년이나 못 잊다가, 자진 조기은퇴 후에 기어코 제주에 살만큼 충분히 foolish(?)한 자격을 갖춘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임쏘리)

 

그만큼 풀리쉬하기도 쉽지 않겠지요, ㅎㅎㅎ

 

책장에 꽂혀있는 책 '포레스트 검프'가 보입니다. 오늘은 그 책이나 다시 봐야겠습니다. 아이큐 두 자리의 우직한 바보가 똑똑한 사람들의 세상에서 어떻게 성공하는지 보여주는 소설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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