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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대단한 나라, 미국

1998년 말의 이야기다.

 

내가 다니던 회사가 화이저(Pfizer) 제약회사로부터 RFP(Request for Proposal)를 받았다. 30명도 안 되는 직원의 작은 회사가 세계적인 대기업으로부터 제안서 요청을 받은 것이다. 어떻게든 따내자는 의견(덤핑입찰)과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하려면 적정한 댓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는데, 후자의 의견이 우세해서 입찰에 탈락하게 되었다.

 

제대로 기업이윤을 붙여 제대로 서비스를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결국 가격경쟁에서 진 것이다.

 

당시 화이저는 막 개발되어 판매를 시작한 비아그라의 인기로 돈을 긁어들였다. 하루에만 몇 백만불 어치를 팔았다고 했다. 맨하탄의 사무실이 비좁아져 맨하탄의 건물들을 나오는 대로 사들인다는 말도 있었는데, 그 좁은 사무실의 공간 때문에 수 천 만장이 넘는 서류들을 컴퓨터에서 볼 수 있는 디지탈 다큐멘트로 만드는 일이었다.

 

한 달 후, 기회는 전화위복이 되어 찾아 왔다.

 

낮은 가격으로 용역을 따낸 업체가 일을 감당할 수 없어 자빠지고 말았고, 기회는 다시 우리 회사로 왔다. 3백만불이 넘는 계약이 주로 팩스로 오고 갔다. 맨하탄에서 한 시간 거리의 뉴저지에 위치한 회사이었지만, '갑'과 '을'이 싸인한 팩스로 계약과정이 이루어졌다.

 

물론 한 두번의 팩스로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이 부분의 가격책정이 이해가 안 된다. 설명을 해서 다시 보내라'는 팩스가 오면, 그 부분을 설명하는 서류를 첨부해서 CEO가 사인해서 보낸다. 그렇게 몇 번 팩스가 오고 가다가 최종적으로 그쪽 CEO가 사인해서 팩스로 리턴한 것이 바로 계약서가 되었다.

 

1998년 총 매출이 3백만불이었던 그 회사는, 그 계약으로 인해 다음해인 1999년 9백만불의 매출을 기록하게 된다.

 

내가 한국에서 경험했던 일이 떠올랐다. 정부투자회사의 자회사 사업부장이었던 내가 30억짜리 계약을 따내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해야 했었던가?

 

발주부서에 수시로 찾아가 종노릇을 하기도 하고, 수 십 차례 일식집과 룸살롱을 드나들었으며, 그들에게 술을 따르며 비굴한 웃음을 흘려야 했었다.

골프 접대, 돈 봉투, 잃어주기 고스톱, 명절 때 상품권을 발주부서, 계약부서, 원가조사, 성능검사, 시운전, 준공검사, 공사대금 청구 등 아쉬울 때마다, 관련되는 부서를 쫓아다녀야 했다.

 

그게 당시 내가 아는 대한민국이었다.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쓰러지고 망해야 마땅한 나라였다.

"그러니까 IMF를 맞았지. 열 번, 백 번 IMF를 맞아도 싸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가졌던 나에게 미국에서 화이저와의 경험은 정말이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미국이 세계 최강의 선진국으로 군림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화이저는 사기업이었지만, 내가 상대했던 회사는 정부기업이었는데도 그랬다.

룸살롱, 골프접대 등 검은 돈이 오가며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에서의 경험에 비하면 미국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나라였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간단하고 만만한 게 아닌가 보다.

하긴, 나쁜 머리와 부족한 지식과 경험으로 세상 돌아가는 일을 어찌 알겠는가마는 내가 다시 돌아와 보는 고국은 '산전벽해'라는 단어 이외엔 다른 표현이 없을 정도로 변했다.

 

그리고 그렇게 건강하고 깨끗하다고 생각했던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게지 사태'라는 돈놀이꾼들에 의한 부도덕의 상징이 되는 사건이 터졌다.

 

세상은 참으로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