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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돈 이야기 - 셋

(2012년 12월 10일에 쓴 글)

 

돈이 행복은 아니라고 누구나 쉽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도 돈이 많았으면 하고 바란다. 로또에 당첨되고도 불행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스컴은 심심찮게 전한다. 술과 여자, 도박으로 그 많은 재산을 탕진하고 도둑질을 하다가 감옥에 간 사람의 이야기, 이혼하고 알콜이나 마약에 중독되어 폐인이 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될 때는 되더라도 '돈벼락'을 한 번은 맞고 죽었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곤 한다. 하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런 사람의 하나일 거다.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모든 게 돈으로 통한다. 돈 없으면 죽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라고 한다. 하도 들어서 식상하기만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누구나 알고 있고, 부인하고 싶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도 법이 지켜진다는 미국에서도 O.J. Simpson은 돈으로 무죄를 이끌어냈으니, 한국은 이야기 할 것도 없다.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10위(도시국가 제외) 안팍으로 잘 사는 나라다. 웬만한 직장은 미국과 비교해서도 별 차이가 없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Dreams come true!'가 이루어진 셈이다.

 

5~6년 전에 인턴으로 내 부서에서 일했던 젊은 친구로부터 얼마 전에 전화가 왔다. 그는 제주의 내 집을 방문한 첫 손님이기도 했다. 약혼자와 올레길을 걸으러 왔고 그때 방문했었다. 그 친구는 결혼한다고 했다. 가 보지는 못했지만 결혼시간에 맞춰 축하 메시지와 함께 약간의 부조금을 온라인으로 보내 성의표시만 했다. 엊그제 그 아이로부터 다시 전화를 받았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인사차 전화를 한 것이었다.

 

- 뉴질랜드 남섬을 돌았습니다. 퀸즈타운도 갔었고, 밀포드 사운드도 구경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남섬은 대부분 돌아보았습니다.

 

어디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느냐는 물음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제주도로 갈 수만 있었어도 최고급이었던 신혼여행이, 사이판이나 괌으로, 태국 푸켓으로, 인도네시아 발리로 영역을 넓혀가더니 지금은 호주나 뉴질랜드 아니면 유럽을 향한다. 그렇다. 잘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이제는 제주도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돈이 많아진다는 것은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갈 수 있는 곳도 넓어진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도 많아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나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데 지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저지에서 만난 선배는 자식농사에 성공한 분이다. 그 형수님은 만날 때 마다 자식 이야기를 한다. 짝을 만나지 못하는 자식에 대한 걱정도 하고, 자식들의 성공을 자랑하기도 한다. DOW에 다니는 딸이 로스쿨을 거쳐 맨하튼 로펌에 취직을 했는데, 비즈니스 환경을 익히느라고 디쉬 하나에 2~3백 불 짜리 요리를 먹으러 다닌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떤 Dish가 2~3백 불을 하는지 상상이 잘 안 간다. 월스트릿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사는 때문인지 그쪽 이야기를 듣는 기회가 자주 있었다.

 

흥청망청 대는 월스트릿의 이야기는 동화 속의 이야기 같았다. 차로 한 시간도 알 걸리는 곳이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연말이면 보너스로 보통 50만 불 이상 받는다고 했다. 스타 트레이더가 되면 연봉이 500만불에서 천 만불이고, 보너스는 실적에 따라 백 만불이 넘는다고 했다. 스타 트레이더가 아니더라도 그들의 돈잔치는 상상이 쉽게 가는 규모가 아니었다.

 

▼ 세상의 모든 다큐. '돈, 권력과 월 스트리트 4편 - 금융 위기, 꺼지지 않은 불씨.(121018)'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미국의 경제위기를 틈나는대로 공부했다. 서브프라임과 파생상품, CDO(부채 담보부 증권) 같은 어려운 용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동화 속의 이야기가 그 원인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의 흥청망청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과 속임수를 바탕으로 한 허구이었을 뿐이다. 미국내 지방정부의 파산에도, 그리스와 스페인의 위기에도 그들의 탐욕스러운 손길이 닿아 있었다. 고도의 금융공학으로 포장되어 잠재적 위험이 감춰진 '금리 스와프'라는 파생상품을 팔았고, 그들은 판매수당과 보너스로 수십 또는 수백만 불을 챙겼으며, 피해자는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작년에 파산한 앨라배마주으 제퍼슨 카운티가 대표적인 예다.

 

그들은 고수익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뇌물도 서슴치 않았다. 하긴 수백만불의 보너스가 생긴다면 목숨을 걸고 달려들 사람은 많을 거다. JP모건의 은행원은 제퍼슨 카운티의 재정담당자에게 파생상품을 팔면서 그의 친구에게 거액의 돈을 건냈고, 그 친구는 재정관에게 뇌물과 선물을 건낸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재정관은 15년, 친구는 4년 6개월, 은행원은 3개월의 징역형 그리고 JP모건은 약 7억불의 수수료 탕감의 판결과 증권거래위원회와 2천 5백만불에 합의했다. 그리나 카운티는 수억 달러의 이자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했다.

 

한국도 이런 피해를 입은 나라 중의 하나다. KIKO(Knock In, Knock Out)라는 환율변동 파생상품으로 수많은 중소기업이 파산한 것이 불과 2년 전이다. 거래하는 은행에 밉보이지 않기 위해서 은행이 권하는 대로, 사인한 것이 그들의 잘못이었다. 미국과 다른 것은 피해자만 있을 뿐, 책임지는 인물이 없었다는 것 뿐이다. 수십 년간 건실하게 기업을 키워온 중소기업인들은 도산했지만, 한국의 은행은 푼돈인 수수료를 챙겼고, 미국의 은행과 은행원들은 거액의 이익과 보너스를 챙겼다.

 

힘들이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남의 것을 훔치거나 사기를 치는 것 뿐이다. 아이비 리그 출신의 머리좋고 교육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돈 벌 궁리를 한다. 고난도의 수학을 동원하여 서브프라임 같은 부실채권을 '트리플 A'의 최고 신용으로 위장하여 판매하고, 그 수익을 챙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낸다. 고액연봉과 보너스만 챙기면 될 뿐, 그 피해는 그들의 관심 밖이다. 리먼브러더스는 파산했고, 수많은 투자자들은 피같은 돈을 날렸지만, 한때 제왕적 CEO로 월가의 황소로 불렸던 장본인 리처드 펄드는 지금도 부자로 잘 살고 있다.

 

1%의 부자와 기득권은 99%의 희생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1%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99%가 착각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돈을 빌려줄테니 돈을 빌려가라고, 그래서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지금 당장 좋은 집과 차를 사서 현재를 즐기라고, 일생에 한번 뿐인 결혼식에 돈을 쓰라고, 신혼여행도 특별한 곳으로 가라고, 자식들에게 특별한 교육을 시키라고, 그래서 특별한 사람을 만들라고, 이자만 내면 돈은 얼마든지 빌려준다고 이 순간에도 광고를 한다. 그들에게 행복이 최고의 가치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외모가 최고의 가치라고 왜곡시킨다. 식스팩이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떠들며 진실을 호도한다. 내적 충실 보다는 외형에 미쳐가고, 명품에 집착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크게 놀란 것 중의 하나가 대출광고였다. 차를 담보로 하면 한 시간 내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광고를 어디서나 본다. 옛날에는 저축만이 살 길이라고 배웠다. 지금은 온통 돈 빌려준다는 이야기다. 돈을 빌려 이자를 내는 것은 미래를 담보한다는 거와 같다. 옛날에는 빚을 내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미국의 모게지 제도가 부럽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집도 차도 내 것이 아니다. 은행 것이다. 지금은 한국도 마찬가지로 미국을 닮았다. 아니 미국보다 더하다. 이자만 낸다. 집 값은 그대로 있다. 대출을 받아 성형수술을 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기본을 지키는 나라는 흔들리지 않는다. 기본을 지키는 나라, 독일이 그렇다. 국가만이 아니다. 개인도 가정도 마찬가지다. 어떤 경우에도 빚을 지고 살아서는 안 된다. 있더라도 최우선으로 갚아야 한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가정과 정부는 파산하지 않는다. 부자로 살지는 못할지라도.

 

돈 때문에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 아니 미쳐가고 있다. 그리고 행복을 추구하기 보다는 만족을 추구하는 세상이 되었다. 기본과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에서 부국이 된 조국, 대한민국도 졸부지만, 한국보다 더 졸부인 중국이 있다. 불과 30년 사이에 최빈국에서 세계를 호령하는 부를 쌓았다. 평균을 따지면, 아직도 개발도상국이지만 13억 인구의 1%만 부자라고 하더라도 천 삼백 만의 인구가 백만장자인 나라다. 그들이 돈 쓰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

 

 ▼ 중국 상하이의 산후조리원이다. 한 달 비용이 약 5만 불이지만, 최소 한 달 전에 예약해야 자리가 난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산모는 왕자를 출산한 왕비가 되고 신생아는 왕자나 공주가 된다.

 

▼ 저장성에서 상하이로 돈 벌러 온 여성이다. 가짜가 판치는 중국에서 가짜 분유 사건이 발생하자 모유를 파는 일자리가 생겼다. 대졸 초임이 50만원이 채 안 되는 중국에서 모유제공은 월 150만원을 받는다.

 

▼ 모유 일자리를 얻기 위해 초조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합격하면 자신의 아이에게는 모유를 더 이상 먹일 수 없게 된다.

 

상하이 인근의 별장지대. 수 백만 불에 이르는 이런 별장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중국 대부분의 농공민들은 시간당 10센트 이하의 보수를 받고 있다. '사용자(Employer)는 관두지 않을 만큼만 주고, 고용인(Employee)는 짤리지 않을 만큼만 일한다.'라는 경제논리가 사람을 슬프게 만든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고, 공자와 맹자의 나라 중국에 더 이상 공자님과 맹자님은 없다.

 

 

▼ 부자가 되기 위한 방법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결혼도 부자들의 세계로 점프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수단의 하나다. 이들에게 돈은 그 자체가 행복이고 돈은 바로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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