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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부페의 추억

(2012년 12월 20일에 쓴 글)

 

일정한 돈만 내고 들어가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감동이었다. 20대 젊었을 때라 식욕이 왕성하기도 했거니와 식탐마저 있을 때이었으니 말할 필요도 없었다. 30년 전 미국연수길에 콜로라도 덴버에 사는 친구에게 들렸더니, 녀석이 나를 부페식당에 데려갔는데 그것이 처음이었다. 그 후로는 한국에도 흔해졌지만,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가보기는 커녕 그런 식당이 있다는 것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뉴저지 집 근처에 부페식 중국 음식점이 생긴 초창기에는 가족 외식으로 가끔 가기도 했었지만 과식하게 되는 탓에 즐겨 찾지는 않았다. 그래도 당시는 체중에 그리 신경쓰지는 않았을 때라, 손님이 오거나 회사 직원들과 회식이 있을 때는 일부러 찾았다. 그게 장사가 잘 되서 그런지 몰라도 주변에 또 생겼다. 특히 '미나도'라고 불리는 일식 부페가 회사 근처 루트 텐에 생겼을 때는 $30에 가까울 정도로 비쌌지만, 인기가 꽤 있어서 미국인 동료들과 자주 갔었다.


그러나 문제는 체중에 있었다. 한번 갔다오면 체중이 1~2 파운드 늘었다. 같은 돈을 내고 먹는 양에 제한이 없으니 웬만큼 포만감에도 불구하고 더 먹게 되었다. 참으로 한심하고 얄팍한 인간심리다. 한 두 접시로 끝내고 나면 무언가 손해보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후회할 줄 뻔히 알면서도 평소에는 안 먹는 아이스크림까지 디저트로 챙겨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가급적 부페를 안 가려고 해도, 식욕이 왕성한 젊은 직원들은 부페를 좋아하니 안 갈 도리가 없었다.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면 회사카드로 직원들에게 점심이나 저녁을 사곤 했는데, 그때마다 직원들에게 물으면 '미나도'를 1번으로 꼽으니 안 갈 도리가 없었고, 또 그때마다 과식을 해서 후회를 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한번은 성당 구역회 친구가 부모님 8순 잔치를 한 적이 있었다. 뉴저지에 살면서 잔치는 플러싱에 있는 한국식당을 빌려서 했다. 플러싱에 사는 한국사람이 많으니까 그렇게 정한 모양이지만, 뉴저지에서 플러싱까지 가는 사람은 보통 고역이 아니다. 조지워싱턴 브릿지를 건너고 트라이보로 브릿지를 건너는데 톨비도 톨비지만 걸리는 시간이 장난이 아니다. 어정쩡한 저녁무렵이면 트래픽도 엄청나다. 그런 곳을 겨우 도착해서 찾아간 행사장이 부페식당이었다.


저녁 7시 한창 시장기를 느낄 시간이었고, 음식도 셋업이 끝나 있었지만 주최측 가족의 행사진행으로 손님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자식들과 손주들이 나와서 절하고 선물드리고 촬영하는 순서가 지루하게 이어지는 동안, 배에서는 음식을 넣어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행사가 끝나고 참석한 많은 손님들에게 음식이 제공된 것은 8시가 넘어서였지만, 이미 시장할대로 시장한 손님들이 음식을 담기 위한 줄은 끝이 없이 이어졌다. 


나 혼자라면 그냥 근처에서 요기하고 돌아왔겠지만, 내 차에는 다른 식구들도 같이 타고 왔으니, 화가 났지만 나 혼자 어떻게 독불장군식으로 행동할 수도 없었다. 음식을 위해 줄서는 천박함(?)이 싫어서 점잔을 빼는 바람에 내 차례가 되었을 때는, 이미 차가울대로 찬 음식도 별로 남아 있지도 않았고, 시간은 저녁 9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그런 형편없는 잔치는 정말 처음이었다.


뉴저지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 중의 하나가 꽤나 식탐이 있는 대식가였다. 많이 먹기도 했지만 그만큼 덩치도 컸다. 이 친구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고기부페까지 일부러 찾아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를 불렀다. 한아름에서 쇼핑하고 '영빈관'이란 갈비부페 식당에서 떡갈비만 골라 양껏 먹고 오곤 했는데, 그럴 때는 저녁은 물론 다음날 아침도 걸러야 편했다.


LA에서 살 때는 $9.99에 삼겹살 무한리필이 되는 '황제부페'라는 곳을 가끔 갔었다. 그렇게 장사해도 되는지는 몰라도, 뉴저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착한 가격(?) 탓에 어리석은 식탐을 하곤 했다. 다른 곳도 몇 곳 가보았지만, 그곳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런 기억이 아니더라도 옛날과 달리, 지금은 배고픈 시절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먹어서 탈이 나는 세상이다. 부페가 요즘같은 시절에 맞는 시스템인지 의문이다. 음식을 담기 위해 줄을 서는 것도 천박스럽게 보일 뿐더러, '한 접시 더 가져와야 하는 것 아냐' 하는 저질스런 유혹과도 싸워야 하는 부페는 질색인데, 어제 또 그런 곳을 찾게 되었다.


마마님(집사람) 생신(?)을 맞아 외식을 하기로 한 장소가 빕스(VIPS)라는 식당이었다. 몇 년 전 한국방문 때, 조카들에게 저녁을 사면서 초이스를 주었더니 빕스를 선택해서 간 적이 있었다.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여러가지로 놀랬던 기억이 있는 장소였다. 구운 고기는 숟가락 크기만 했고, 맛도 형편 없었지만, 가격은 놀랄만큼 비쌌다.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30% 할인이 되는 카드 덕분이었는데, 똑같은 멍청한 짓을 또 반복했다. 부페식 샐러드 바를 몇 차례 왔다갔다 한 것이다. 스테이크는 물론 국수, 튀김, 과일에 아이스크림까지 먹고는 지금까지 소화를 못 시키고 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반복해야 철이 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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