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돈 이야기 - 넷

(2012년 12월 13일에 쓴 글)

 

-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돈을 뺐어가는 시스템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월급쟁이가 미국에서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어떻게든 월 페이먼트를 줄이는 거다. 조금만 방심하면 매월 돌아오는 청구서가 장난 아니다. 월 페이먼트를 최소로 해라. 그게 미국에서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이다.


미국에 살게 되면서 들었던 여러 조언 중의 하나다. 이런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은 당시 20여명이 전직원인 작은 규모 회사의 부사장으로 있던 내 보스이었다. 연봉 4만불은 그가 생각해도 뉴저지에서 가장으로 가정을 꾸려가기에는 너무 부족한 금액이었을 거고, 아무 것도 모르는 초보이민자에게 충고하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빚지기 싫어하는 내 성격에 아무리 융자가 쉽더라도 무턱대고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겠지만, 미국에 사는 동안 이 충고를 금과옥조로 삼았다. 집을 살 때도, 모게지를 10만 불 이하로 유지하려 노력했지 최대한 융자를 끌어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랬으니 많이 벌지도 못했지만, 파산까지 갈 이유도 없었다. 금융위기를 겪은 후, 직장을 잃고 이런 저런 상황에 몰리면서 몇 푼 안 되는 돈 마저 잃었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지난 날을 복기하면서 깨달은 것은, 돈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거다.


금융에 대한 무지에 대해 부끄러웠다.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러나 실제 그래도 되는 세상에 살았다고 생각한다. 즉, 금융에 대한 지식이 필요없는 시대를 살았다. 열심히 저축하고 남는 돈으로 생활해 왔고, 분수에 맞춰 살면 되는 시대를 살았던 것이다. 돈이 부족하면 반지하 단칸 방에 살면서 저축을 했고, 조금 돈이 모이면 지상으로 나왔다. 은행에서 집 사라고 돈을 빌려주는 일도 없었고, 빌려주더라도 극히 일부이었다.


뛰는 집값이 원망스럽긴 했어도,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고 알뜰하게 살며, 재형저축, 주택청약적금을 열심히 부었다. 아침 일찍 나오고 밤 늦게 집에 들어가니, 깨어있는 아이들 얼굴 볼 시간이 없는 것이 불만이었지만, 점점 생활이 나아지고 있고 앞으로는 더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을 거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누가 세상을 바꾸었을까? 바꾼 사람은 1%의 인간들이다. 99%의 사람들이 기존의 방식대로 개미처럼 살면,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1%는 알았다. 자본주의에서 권력을 갖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고, 적게 소비하며 분수에 맞게 사는 99%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연구했다. 어떻게 하면 아무 것도 모르고, 순진하기만 한 99%를 더 많이 쓰게 만들고, 빚장이로 만들 수 있는지 연구했다. 그리고 그들은 결과를 얻어냈다. 그들에게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미래를 담보로 좋은 집과 차를 사게 만들었다. 치밀하고 계획적인 방법으로 함정을 만들었고, 어리석은 99%는 여지없이 그 함정에 빠지고 만다.


먼저 매스컴을 장악하고, 연일 광고와 기사로 사람들을 쇄뇌했다. 주식으로 부동산으로 돈 벌었다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헌 집을 부수고 새 집을 짓는 재개발로 일부 사람이 큰 돈을 벌게 했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방송과 신문들은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펀드로 100%의 수익을 냈다고 전 지면을 할애해서 기사를 실었다. '백만원'으로 '10억'을 벌었다는 기사를 무책임하게 남발했다. 안 하거나, 못 하는 사람들에게 불안감, 열등감, 패배감을 갖도록 했다. 하다못해 '부자 되세요'하는 말도 안 되는 문귀를 광고 하고, 자동응답기가 응답을 하게 하고, 크리스마스 카드에, 신년 연하장에 도배를 했다.


주식만 하면, 집만 사면, 펀드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환상을 심어주는 일에 성공한 그들은, 그 다음에 돈을 빌려주었다. 세상에 돈놀이 보다 쉬운 돈벌이는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았다. 게다가 자기들의 상품을 많이 팔려면, 살 사람들이 돈이 있어야 했다. 즉 미래 소득까지 빼앗아 간 것이다. 희망까지 앗아 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뜻대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먼저 제도를 바꾸었다. 미국의 제도를 모방하되, 자기들에게 유리한 점만 가져왔다. 은행이 펀드를 취급하고, 파생상품을 팔 수 있게 했다. 은행을 더 이상 예대마진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기관이 아니라, 금융상품을 파는 상점으로 만들었다. 주택 모기지 제도를 가져왔지만, 주택가격이 하락했을 때의 위험은 떠맡지 않았다. 사금고인 신용보증기금을 '저축은행'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무지한 사람들로 하여금 은행으로 믿게 했다.


이제 그 댓가를 치루고 있다.


<후기>

저는 객관적인 모든 여건은 미국이나 캐나다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한국은 그냥 내가 태어난 조국이니 모든 것이 정겹고, 포근하지만, 생활수준, 복지, 환경, 수입 등 전반적인 여건은 한국이 따라갈 수 없겠지요.

그래도 오시는 분들에게 하고픈 말은 한국에서는 투자를 삼가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은행에서 은행원이 이자를 더 준다거나, 펀드 중개인, 보험판매인이 현혹하는 말을 한다해도 절대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옛날에 알던 한국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커밋션이 목적이지 고객의 이익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래에 계속되는 설명이 있습니다.


▼ 파생상품 거래량 (금액이 아닙니다. 금액은 미국이 단연 1위입니다.)


 파생상품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잘 아실 겁니다.


 남의 일 같습니까?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넉넉지 않은 은퇴자금으로 몇 푼의 이자나 이익률에 현혹되는 순간,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 그런 얄팍한 심리를 노리고 이용합니다.


 돈이 오가는 관계에서 이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수십 년 동안 해외에서 지내신 분들이 더 순진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제도가 생겼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선량한 수많은 피해자가 이 때문에 생겼습니다. 대부분 아무 것도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목숨같은 돈이 야수들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1년 만기 정기예금 이자가 작년까지 4%가 약간 넘는 이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금년에는 3%를 약간 웃돌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혹을 받는다면 혹 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고객을 생각한다면, 절대 이런 상품을 권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객이 아니라 고용주의 이익을 실현하는 고용인일  뿐입니다.


 펀드를 보실까요? 미국의 펀드회사에서는 보통 매매회전율이 100%라고 합니다. 200%가 되면 깜짝 놀란답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1500%이고 심지어는 6200%까지 되는 회사도 있다고 합니다. 즉 고객의 이익보다는 수수료 챙기기가 우선인 것이지요.


 오시더라도 이런 것을 알고 오시기 바랍니다. 한국과 별 차이가 없는 미국은 몰라도,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북유럽 등에서 오시는 분들은 충분히 알고 오시기 바랍니다. ㅎㅎㅎ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화와 공감  (0) 2013.11.15
부페의 추억  (0) 2013.11.15
돈 이야기 - 셋  (0) 2013.11.15
글로 보는 유쾌한 영화 'MB의 추억'  (0) 2013.11.15
담배의 추억  (0) 2013.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