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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대화와 공감

(2012년 12월 21일에 쓴 글)

 

친구들을 만나서 즐거운 이유는 스스럼 없는 대화일 것이다. 말을 하는데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나오는대로 지껄이고 떠들다보면 잡념도 없어지고 스트레스도 풀린다. 이민생활에서도 그랬다. 교회나 성당에도 나가고 열심히 구역회도 참석하는 것도 그곳에는 이민자들이 겪는 공감이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즉 대화가 되는 상대를 만나서 웃고 떠들며 서로 고충을 토로하다보면 이민생활의 스트레스가 저절로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때로는 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른 분들은 몰라도 나는 그랬다.


한국으로 돌아와 살게 되면서 느끼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바로 대화할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거다. 친구들도 옛날 같지가 않다. 지난말 몇 년 만에 한번씩 가끔 들리는 한국에서 보는 친구들과는 많이 틀리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거기에는 내 성격의 문제도 있을 거고, 또 지난 세월에 따른 격세지감도 있겠지만, 또 다른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고 민감하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대화 중에 끼어들 소재를 발견하고, 내가 미국에서 겪었던 재미있을 법한 이야기를 꺼내면 그들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금방 눈치 챈다. '어, 이자식 또 미국 이야기 하네! 미국에서 살았다고 잘난 척 하나!' 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런 경우를 몇 번 당하고 나니까, 점점 말이 없어진다.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학교동기들과의 대화가 더 편하다. 점점 조심스러워지더니 나중에는 아예 만나는 자리가 불편하기까지 한다. 


이곳에서 성당에 다니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술자리를 같이 하더라도 나는 한귀퉁이에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 틈이 없고, 그들은 내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하다못해 성당도 미국과는 틀렸다. 이곳에서는 1마리의 길잃은 양보다 울타리 안에 있는 99마리의 양이 훨씬 중요했다. 주임신부에게 면담요청을 했다가 거절당하는 상상하기 힘든 일도 경험했다. 그런 일이라면 보좌신부를 만나라는 거다. 허, 참! 이다. 도무지 굴러온 돌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물론, 깊지 않은 신앙심이 더 큰 문제인 것은 알지만, 그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귀찮은 신앙생활을 쉽게 포기하는 핑계가 되었다.


몇 주 전에, '아이린'님, 도치형님 부부, 아톰님(솔로)과 함께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다. 스타벅스에 앉아 몇 시간이 언제 가는지 모르게 대화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모처럼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한귀퉁이에 쳐박혀 있지 않아도 되었다. 역이민 초보자들이 조심해야 할 점들을 이야기 하고, 이민생활에 대해 대화를 하며 웃고 떠드는 시간을 가졌다. 조심하지 않아도 되었고, 소재를 찾는데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다.


조금 전에 캐나다 '단풍'님이 올려주신 '노오~ㄹ스 피일드' 이야기를 읽었다. 같은 경험을 한 나는 몇 줄 보지도 않고 글을 전하는 분의 마음과 일치되는 경험을 한다.


대화와 공감이란 그런 것이다.


(모든 분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못난 성격이 문제겠지요.

그러나 혹시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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