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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술 이야기 (6)

(2012년 11월 15일에 작성한 글)

 

위스키


세계 3대 명주로 꼽히는 것이 스콧틀랜드의 '스카치 위스키', 프랑스의 '꼬냑' 그리고 중국의 '마오타이주'라고 한다. 어려서부터 익히 들었던 양주, '조니워커'와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의 개인요정에서 마시다가 죽는 바람에 유명해진 '시바스 리갈'은 모두 스카치 계열의 위스키다.


애주가이긴 하지만 술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다. 그냥 미국에 살게 되면서 여러가지 위스키를 맛보고 즐겼을 뿐이다. 처음에 입에 댔을 땐 고약한 맛이었던 미국 위스키인 '잭 대니얼'도 나중에는 그 풍미에 맛 들이자 기호품이 되었다. 한국에서 해외출장을 다닐 때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발렌타인 17년산을 사곤 했었는데, 한때 가장 좋아하는 술이었다.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술도 급격하게 고급화가 되었다. 대통령이 즐겼던 '시바스 리갈'뿐만 아니라, 그 보다 한 단계 위인 '로얄 살류떼'도 접하게 되었고, 조지워커도 레드와 블랙을 지나 블루까지 찾게 되었다. 미식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보통 양주나 아주 좋은 위스키나 그 미세한 차이를 잘 알지도 못하니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비싼 술은 사실 의미가 없다.


미국 출장 때 마다, 덴버의 친구에게 들리면 그는 공항에서 나를 픽업해서 가는 길에 리쿼에 들려 '크라운 로얄'을 큰 것으로 한 병 사곤 했다. 친구는 오랜만에 만난 절친을 위한 배려이었겠지만, 아무리 좋은 술도 많이 마시게 되면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긴 마찬가지다. 비록 젊었을 때지만, 마주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로 밤새 마시다 보면 다음날은 아무 것도 못할 정도로 고생을 했다. '야, 우리 무식하게 어제 너무 마셨나 보다, 머리 아프다, 이 자식아! 좋은 술 먹고 이게 뭐냐?' 고 후회하곤 했다. 하긴 그 큰 병을 다 마셨으니, 머리가 아프지 않으면 정상이 아니다.


처음 이민생활을 시작할 때 들렸던 리커스토어에서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술병을 보고 황홀(?)했다. 와인코너가 제일 컸지만, 내 관심사는 위스키 코너에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쉽게 접할 수 없는 각종 양주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살 수 있는 지근거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미국에서 맛보는 위스키는 한국에서 소주를 주식(?)으로 하다가 어쩌다 마시는 그 위스키가 아니었다. 소주에 길들여진 입맛은 쉽게 위스키에 정복되지 않았다.


위스키는 첫 잔이 좋다. 얼음을 잔뜩 채운 잔에 황금빛 도는 액체를 채워 혀를 적시는 정도로 찔끔거리며 마셔야 한다. 마음에 맞는 벗과 덱에서 저녁나절 노을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잔을 비워야 운치가 난다. 소줏잔 비우듯 할 수는 없다.


에고, 아침 나절에 술 이야기가 참 어울리지는 않는다.


술과 한국인


옛날 한국 드라마를 보면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가족들의 식사장면, 포장마차와 음주하는 장면 등이 참 많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묻곤 했다. 왜 한국에서는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오냐고, 한국에서는 포장마차가 저리도 많냐고, 한국사람들은 만날 때 마다 술을 마시냐고 묻는데, 참 대답하기 애매했다.


뉴저지에서 구역회 때는 마음 놓고 술 마시는 날이기도 했다. 성당에서 사귄 사람들은 다들 술을 좋아했다. 형제님들은 술 마시고 자매님들이 운전하면 되니까. 맥주로 시작해서, 소주와 양주까지……


'술독에 빠진 한국'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한국인들의 술 소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독주의 소비량(1인당 약 12리터)이 높아서 OECD 회원 30개국 중에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29개국 평균(2.13리터)의 다섯 배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 술로 인한 피해도 만만치 않다. 최근에는 술로 인한 행패, 즉 주폭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술에 대해서는 관대했던 문화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이다.


- 아빠, 나도 술 잘 먹나봐. 한국학생 환영회에서 선배들이 술을 주더라.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떤 애들은 토하더라.


딸이 대학에 갔을 때 했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웃었던 적이 있다. '너도 한국사람 맞구나'


아들 대학졸업식 무렵, 그 녀석 술 마시고 다니는 걸 보고 놀랐다. 밤새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오는 때도 있었다.


'아이구, 이제 내가 술을 끊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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