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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술 이야기 (4)

(2012년 10월 30일에 작성한 글)

 

맥주에 대한 추억


술에 대한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자전거를 탄다고 제주에 들렸다가 집에서 간단하게 술자리를 가졌는데, 옛날처럼 잔을 돌리지 않았다. 잔을 돌리는 문화는 사라진 모양이다. 또 어떤 친구는 맥주에 소주를 섞어서 먹기도 했다.


젊었을 때, 맥주는 2차에서 먹는 술이었다. 소주로 웬만큼 취한 주당들이, 부담스러운 소주를 피해 마시기 편한 맥주로 2차를 했다. 생맥주 집을 찾기도 했지만, 대부분 2차로 가는 집은 아가씨들이 술을 따르는 집이었다. 술김에 생긴 호기로 저질러진 2차를, 다음날 숙취로 고통을 받으면서 얼마나 후회를 하곤 했던가! (ㅎㅎㅎ 다 지나간 일이지만, 참 어리석은 짓을 많이도 했었다.)


지금은 양주로 바뀌었지만, 30년 전에는 맥주는 한국에서 2차에나 가서 마실 만큼 고급에 드는 술이었다. 그런 맥주가 미국에서는 정말 생수값이나 다름이 없었다. 30캔에 십 몇 불 밖에 하지 않았다. 그러니 미국에 살면서는 독해야 술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맥주는 일반 소다나 다름이 없었다. 원래 소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 목이 마르면 생수 대신 맥주를 마셨다.


30년 전 미국연수시절 플로리다에서 딴 면허는 Expire되었으니 뉴저지에 처음 갔을 때는 면허를 다시 따야 했다. 책 한 번 보지 않고 가서 필기시험을 치렀더니 보기좋게 떨어졌다. 30개 문제 중 9개 이내로 틀려야 합격인데, 11개를 틀렸다. 그 중에 하나가 맥주에 관한 문제였다. 가장 많이 음주를 하고 운전을 하는 술을 고르라는 것이었는데, 답은 맥주이었다. 물론 나는 위스키를 선택했다. 맥주는 술이 아니라는 선입관(?)이 있었던 모양이다.


맥주가 최고로 맛있는 때는 골프 라운딩을 끝내고 클럽하우스에 딸린 식당에서 마시는 경우다. 카트를 타지 않고 워킹으로 힘든 라운딩을 끝내고, 친구들과 조금 전의 안타까운 샷을 회상해가면 마시는 한 두 잔의 맥주는 꿀맛이다. 더군다나 버드와이저의 본고장 뉴저지 아니던가! (버드와이저 본사가 뉴저지 뉴왁에 있음)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4도 짜리 맥주는 취향에도 맞지 않고, 갈증이 없을 때 마시면 화장실만 자주 가게 되는 불편함 때문에 일부러 찾지는 않았던 맥주가 독일에 갔을 때는 달라졌다.


프랑크푸르트에 출장 갔을 때, 그곳에서 맛보는 맥주는 격이 틀렸다. 고소한 풍미가 감칠 맛이 있었고, 알코올 돗수도 높은지 취기도 쉽게 올라왔다. 앞 집 프랭크의 와인을 맛보았을 때 처럼 일품이었다. 문제는 비싸다는 것이었다. 호텔에서는 길고 가느다란 나팔꽃 모양의 잔이 3유로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짧은 출장기간이었기에 저렴하게 파는 곳을 찾아다닐 수는 없었지만, 기회가 될 때 마다 맥주를 마시러 다녔다.


한국에 와서는 맥주를 찾을 일이 없다. 내게는 최고의 술 소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여름 무더위 속에서 운전을 하고 돌아온 저녁에는 샤워 후에 가끔 맥주가 생각나기도 했다.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는지, 아랫층에 사는 해병대 젊은 친구가 PX에서 산 맥주를 한 박스 들고 왔다. 면세가 되는 PX에서 파는 맥주는 미국과 별 차이가 없다. 한국에서는 맥주에 특별소비세가 붙는다고 한다. 옛날 고급 술이었던 시절에 붙였던 특별소비세를 대중주가 된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탓이다.


이웃 덕분에 특소세 없는 맥주로 무더웠던 지난 여름을 다소나마 쉽게 지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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