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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이민자가 한국에서 보는 미국 대선

(2012년 11월 10일에 작성한 글)

 

미국 대선이 오바마의 무난한 승리로 막을 내렸다.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하리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매스컴에서 전하는 불길한 소식으로 이번 주 내내 혹시나 공화당에 정권을 내주는 것 아닌가 하는 조바심으로 지냈다.


미국에 살면서 우연히 TV를 보고 감탄한 것 중의 하나가, 2000년 공화당 전당대회이었다. 부시가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할 때이었는데,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축제이었다. 무미건조한 정치행사를 그렇게 재미있게 승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뜻밖이었고, 그곳에는 열정과 환호와 기쁨과 지지가 함께 폭발하는 장으로, 짧은 영어 탓에 절반 밖에 알아듣지 못 했지만 끝까지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맞는 대선정국이었으니 미국과 비교하며 관전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가 알던 한국은 각 당의 당수가 대선후보가 되는 것이었다.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보지 못한 김대중, 노무현씨는 몰라도, 김영삼씨까지는 그렇게 대통령이 되었으니까. 그러나 한국도 모든 면에서 엄청 변한 것처럼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고 후보가 수락하고 하는 모든 방식이 미국을 많이 닮아있다는 느낌이다.


닮았다는 것은 같지는 않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대선 출마자들이 적당히 경선을 하다가, 지지가 한쪽으로 기울면 경쟁자들이 중도에서 포기하면서 당론과 국민의 지지를 분열시키지 않겠다는 핑계를 대면서 사퇴를 하거나 경쟁자의 지지로 돌아서기도 하는데, 이곳에서는 경선후보들이 끝까지 사퇴하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치졸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대중에게 자기 이름을 각인시켜 차기나 차차기를 노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야 자신의 추종자들을 유지시킬 수 있다. 지독한 정권욕이다.


롬니는 다 아는 것처럼 모르몬교 신자다. 모르몬교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일부다처제를 인정했던 과거가 있고 구약과 신약 외에 제 삼의 성경인 모르몬경을 믿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예수님이 신대륙에 재림했었다고 믿는다. (2003년 솔트레이크 시티의 모르몬 성전을 방문했을 때 그렇게 들었다.) 복음주의 교단에서 보면 이단도 보통 이단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정통 기독교로부터 그리 심하게 공격을 당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한국 같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모든 기독교 신자와 교회에서 난리가 났을 게 분명하다.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을 거다. 철야 통성기도에 그 후보가 가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상상하면 거의 틀리지 않을 거라는데 100불 걸겠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위대하다. 2008년 대선에서 존 맥케인 공화당 후보가 유세를 할 때다. 청중에서 어떤 백인 중년부인이 일어나 맥케인에게 질문한다. ‘오바마는 믿을 수가 없어요! 오바마에 대한 글을 보았는데, 그는 무슬림이고 아랍사람으로 미국에 해가 되는 사람이에요!’ 맥케인은 그 부인으로부터 얼른 마이크를 뺏으며 ‘No’를 여러 번 외치며 대답한다. ‘아닙니다, 오바마는 훌륭한 가장이고 시민입니다. 저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의견이 다를 뿐이죠. 그래서 이 선거를 하는 거고요. 고맙습니다.’라며 그 즉석에서 지지자의 발언을 일축한다. 


그의 선거 수석고문이었던 스티브 슈미트는 후일 이렇게 회고한다. ‘매케인 의원께서 그 지지자의 마이크를 빼앗았을 때, 전 그 분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목적보다는 그곳으로 가기위한 과정을 중요시하는 멋진 사람들이 보여주는 승부다. 상대후보 흠집 내기에 없는 말도 만들어내고, 작은 흠집도 과장시켜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이 되고 보겠다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미국의 대선에서 배워야 할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클린턴과 부시에 이어 연임에 성공한 대통령이 된 오바마, 그가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미국은 지긋지긋한 전쟁의 수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의 계획대로 2014년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대를 완전철수하게 되면 10년이 넘도록 숱한 젊은이들과 보다 평화적이고 생산적인 곳에 쓰일 달러의 희생을 종식시키게 될 것이다. 1%의 부자들에게 보다 많은 세금을 부과할 것이고, 미국의 재정적자를 줄여 부시가 망친 미국경제를 재건시키는 바탕을 만들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


- 오바마를 오사마 빈 라덴으로 풍자하여 오바마를 반대하는 군중집회. 그러나 맥케인은 이를 유세에 동원하여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반대했다. 한국에서라면 이처럼 좋은 기회를 그냥 버렸을까?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 오바마를 밀입국 노동자로 규탄하는 백인극우세력의 군중집회. 그러나 공화당을 이를 이용하려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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