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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가르마 바꾸기, 둘

(2012년 9월 13일)

 

- 난, 제주는 싫어요! 지금까지 댓 번을 갔는데, 갈 때 마다 태풍 불고 비오지, 비행기는 커녕 배도 안 뜨는 거야! 정말 혼났어, 얼마나 비바람이 거세게 치는지, 차를 타고 가는데 차가 다 기우뚱거리더라니까!

제주는 어떠세요? 라는 질문에 해남 땅끝마을에서 만난 75세 장로님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그 분에게 제주를 떠올리면 악몽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반면, 엊그제 만난 최선생은 제주에 대해 아주 좋은 선입견을 가졌다. 40여 년 전 10대 후반에 제주를 처음 방문한 이래, 지금까지 기회 있을 때 마다 열 번도 더 다녀갔고 급기야는 제주를 은퇴지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가르마 바꾸기가 그렇게 힘든 것 처럼, 한 번 들어와서 자리잡은 선입견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똑같은 장소를 두고 한 분은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다른 분에게는 인심좋고 속 살이 아름답기만 한,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선입견 탓이고, 그 선입견은 직접 체험한 것이기에 누가 그렇지 않다고 훈수 한다고 해서 쉽게 바꾸려 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두 분 다 진실을 정확히 보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4대강 사업을 추진했던 사람들은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거짓 통계를 만들어서라도 옹호하려 들고, 친 노무현 인사들은 노무현 정부의 잘못을 쉬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이유를 대고, 핑계를 만들기에 급급하며, 박근혜는 자기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독재를 위해 공권력으로 무고한 사람을 죽여놓고도, 역사가 평가하도록 미루자고 한다. 지난 30년 세월은 역사가 아니란 말인가! 얼마나 더 세월이 흘러야 역사가 된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진보라는 사람도 보수라는 인사들도 마찬가지고, 경상도나 전라도 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동향이라는 호감 하나로 뭉치고 서로의 이익을 공유하며, 진실을 외면하고 부인한다. 사상이 같다고, 혹은 같은 사투리를 쓰고 있다고, 혹은 검사나 의사, 약사 같은 같은 직업 집단이라고 해서 옳지 않은 일에도 동참하며, 정의에 눈을 감고 거짓을 진실인양 외치고 있다.


한국은 재밌는 나라다. 다이내믹하고 모든 것이 역동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도 정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안철수 측의 금태섭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해서 박근혜 측 정준길 변호사가 안철수가 대선출마를 포기하도록 협박했다고 공개했다. 그러자 정준길도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대 86학번 동기이자 친구사이로 전화한 내용을 공개한 것으로 정권욕에 눈이 멀어 친구까지 팔아서 친구사이의 사적인 전화내용까지 공개했다고 반박했다. 박근혜까지도 '친구 간의 사적인 대화를 언론에서 크게 떠드니 맨붕(Mental 붕괴)이 올 지경'이라며 그럴 듯하게 거들었다.


한국정치가 아무리 치졸하다고 해도 그 정도로 유치하다고는 믿어지지 않았기에, 정준길의 주장도 일리있어 보였다.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 순간 반전을 일어난다. 정준길이 통화하면서 탔던 택시기사가 등장한 것이다. 정준길의 예사롭지 않은 통화내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던 택시기사가, '친구사이의 통화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협박성의 톤이었다'이었다고 증언한다.


내가 애초에 왼쪽에 가르마를 탄 것은 내 뒤통수의 가마를 볼 수 없기 때문이었을 거다. 만약 내가 내 뒤통수의 가마를 보고, 머리카락 돌아간 모양을 볼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오른쪽에 타지 않았을까! 또 40여 년을 그렇게 유지한 것은 한 번도 정확한 머리 모양을 알려 준 이발사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머리 생김새가 어떻다는 것을 알게 되니, 빗질을 할 때 마다 찜찜한 기분이 들었고, 결국 가르마는 바뀌었다.


과거가 오늘의 그 사람을 있게 하고, 내일의 모습을 결정 짓는다. 금태섭과 정준길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고, 그들의 과거를 알자, 누가 진실을 이야기 하는지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금태섭은 사시 34회로 검사로 재직시, '현직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글을 신문에 기고하여,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 찍혀, 검찰을 떠난 사람이었다. 검찰에 몸 담고 있으면서 그 조직의 부당성을 몸소 체험하고, 검찰개혁을 추구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반면, 정준길은 사시 35회로 안대희와 함께 대선자금을 수사하면서, 권력의 속성을 몸으로 배운 사람이었다. 그는 검사를 그만 두고 재벌의 고문 변호사로 있다가, 변호사 협회의 수석대변인을 거쳐 정계에 입문한 인물로, 정치에 뜻을 둔 출세지향적 인물이었다.


아, 이 나라에는 머리 모양이 어떻게 생겼다고 올바로 이야기 해줄 이발사가 정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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