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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가르마 바꾸기

(2012년 9월 3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머리를 기르고, 머리를 기르면서 가르마를 했으니까 40여 년 동안 가르마를 탔을 거다. 왼쪽에 가르마를 탄 것은 오른손 잡이니까 오른손에 빗을 들고 왼쪽에서 오른쪽을 빗어 넘기기가 편했기 때문이지 특별한 이유는 없을 거였다.


4, 5년 전 뉴저지에서 이발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나서 보니 가르마가 오른쪽에 있었다. 다소 이상해서 묻는 말에 이발사의 말은 내가 쌍가마를 가졌는데, 그 머릿결 방향이 오른쪽에 가르마가 있어야 정상이라고 답했다. 그 때부터 왠지 평소대로 왼쪽에 가르마를 타기가 찜찜해졌다. 흰머리가 많기는 해도 어떤 이들 처럼 벗어지지는 않은 머리일 뿐 아니라 숱이 많아 이발 할 때마다 솎아달라고 했기 때문에, 가르마를 안 탈 수는 없으니, 의식적으로 오른쪽으로 타려고 했지만, 수십 년 버릇이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중에 손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곤 했다.


이제는 오른쪽에 가르마를 탄다. 샤워 후에 빗을 잡으면 무의식적으로 손이 오른쪽으로 향한다. 40년 버릇을 고치는데 4년 정도가 걸린 셈이다.


사람의 많은 것은 길들여지는 것이고 습관이다.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매운 맛에 길들여져 좋아하게 된다. 원래부터 매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할머니나 엄마가 입으로 씻어 먹이는 김치를 시작으로 김치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하는 상황으로 발전하게 된다. 전라도 사람은 전라도 식으로 길들여지고 경상도 사람은 경상도 식으로 길들여진다. 미국 사람은 미국식으로 일본 사람은 일본식으로 길들여지며, 불교신자는 불교식으로 기독교는 기독교식일 뿐이다.


진리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지방에 따라, 나라에 따라, 종교에 따라 바뀌고 변하는 것은 진리가 될 수 없다. 즉, 변하지 않는 사실이 진리일 것이다. 주관이 개입되면 '변하지 않는 사실'을 찾을 수가 없다. 균형감각을 잃기 때문이다. 자식된 도리를 찾는 사람에게서 부모에 대한 균형감각을 기대하기란 요원하다. 자식된 도리를 떠나 철저히 제3자의 객관화된 시각이 필요하다.


1986년에 과장으로 승진하고, 동해바다가 보이는 울진에 건설되는 원자력발전소의 신설부서로 발령을 받았는데 얼마후 신입사원들이 왔다. 그 중에 하나가 대구출신으로 경북대를 졸업하고 대우전자에서 이직한 온 '윤'이란 다재다능한 친구였다. 다음해에 국민들의 민주화투쟁으로 6.29선언이 발표되고 대선을 치뤘다.


- 아이고, 과장님!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당연히 노태우를 찍어야지요, 우리 고향사람 아닙니까! 우린 무조건 대구사람 찍습니더!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기도 했지만, 부하직원을 떠나 여러가지로 뜻이 맞아서 수시로 어울려 다니며 퇴근 후에는 대폿집도 어울리고, 같이 고스톱도 치는 등 친하게 지냈던 사이라 스스럼 없이 물었었다. 깡패 전두환의 친구로 같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한 노태우를 찍는다는 것을, 당시에 지성인(?)이라고 자부했던 나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던 것이었고, 후보 단일화에 실패는 했지만, 당연히 김대중과 김영삼 가운데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물었던 것인데,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답이 돌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정말 노태우가 당선되어 군사정권이 연장되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을 때는 참담했다. '이 나라는 구제할 수 없구나!' ('언구제러블'이라는 자조 섞인 조어가 유행했었다.) 라는 절망감을 느꼈다.


25년이 지나 다시 선거철이 돌아왔고, 이 나라는 아직도 25년 전과 그리 바뀐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머릿속 가마가 어떻게 돌아갔는지를 보고 왼쪽으로 가르마를 탈지 오른쪽으로 가르마를 탈지 결정해야지, 오른손잡인지 왼손을 쓰는지에 따라 결정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따지는 사람들에게 균형감각을 기대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그들은 진실을 보고 선택하러 들지 않는다.


<후기>

하긴 미국도 마찬가집니다. 선거가 끝나면 보여주는 투표결과지도를 보면 이스트코스트와 웨스트코스트, 오대호 주변의 색과 한가운데 색으로 나눠지는 것을 봅니다.

민주주의 역사와 민도를 떠나 정상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모든 사람들이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진실을 찾아 좋은 선택 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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