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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걸리는 게 죄다

(2012년 8월 25일)

 

도대체 몇 번이나 운전면허시험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평탄치 않은 인생 탓이리라.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 한 번만 보면 될 것을 나는 다섯 번도 넘게 본 것 같다.

1983년에 플로리다에서 처음 딴 드라이브 라이센스 이후, 최근 2009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필기시험만 보고 뉴저지 면허를 바꾸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어제 주행시험을 보고 면허를 바꾸었다.


학원차량을 운전한 것이 벌써 4개월이 넘었지만, 그동안 무면허 상태로 운전하고 있다는 것은 까맣게 몰랐다. 한국에서 운전면허는 보통1종, 2종이 있는데, 미국면허를 그냥 바꾸면 '보통 2종'을 준다. 1종과 2종의 차이도 모른체 그냥 받았고,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운전했다. 그런데 도치형님이 10년이 유효기간인 운전면허를 갱신하러 갔더니, 보통 1종으로 바꾸겠느냐는 창구직원 말에 그 차이가 뭐냐고 물었단다.


'2종은 9인승까지만 운전이 가능한데, 1종은 그 이상도 할 수 있다. 2종을 가지고 7년 이상 무사고로 지내면 1종 면허를 가질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1종으로 갱신했다고 하면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렇다면 12인승 차량을 운전하고 있는 나는 당연히 무자격자로 무면허로 운전하고 있는 셈이었다. 무면허는 사고가 나도 보험처리도 안되고, 걸리면 형사입건이 되는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지난 번 불법 U턴을 하다가 경찰에 걸렸을 때, 면허증 조차 보자고 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도 나지만, 내 면허증을 복사해간 학원원장도 무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주 금요일, 운전면허시험장에 가서 1종으로 갱신하겠다고 했더니 주행시험을 보라고 해서 가장 빠른 일정으로 화요일에 보게 되었다. 아무 생각없이 평상시대로 시험을 본 나는 보기좋게 떨어졌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자주 잡는다는 것과 탄력운전(클러치를 사용한 운전)을 한다는 것이었는데, 결정적 이유는 횡단보도가 없는 길에서 빨간 신호에 U턴을 한 것이었다. 횡단보도가 있는 곳에서는 보행신호시에 빨간불이 들어오니 U턴을 해도 되지만, 없는 곳에서는 좌회전 신호에서만 한다는 것이다.


30년 가까이 운전을 하고, 뉴저지에서 캘리포니아까지 3천 마일을 운전한 적도 있고, 카고밴에 장비를 가득 싣고 보스턴으로 핏츠버그로 필라델피아로 설치하러 다닌 적도 있었는데, 그것도 시험이라고 떨어지니 화도 나고 그곳을 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3일 후에야 재시험이 가능하다고 해서 다시 어제(금요일) 가서 시험을 보고 붙어서 면허증을 다시 받긴 했다.


하지만 이번 경험으로 한국의 문제점들이 보였다. 미국에서는 도로교통법이 주법(State Law)이기 때문에 제한속도(Speed Limit)도 주마다 틀리고 번호판도 틀리며, 거주지 주가 바뀌면 면허도 다시 따야 한다. 주가 다르더라도 차량(하드웨어)은 똑같으니 실기는 다시 볼 필요가 없이 바뀐 법(소프트웨어)을 이해하기 위한 필기만 치르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에서 미국면허를 인정해서 그냥 바꿔주는 것은 고마우나, 나라가 바뀌었으니 새로운 도로교통법을 익히기 위해 필기는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또 하나는 '법 따로, 현실 따로'라는 것이다. 법이 그렇다면 실생활에서도 어느 정도 그대로 따라야 한다. 운전시험에서는 점선이 있는 곳에서만 차선을 변경해야 하고, 실선을 침범하면 큰 일이 나는 것 처럼 운운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교통순경 앞에서도 그 정도 위반은 잡지 않는다. 아니, 그런 원칙대로 운전을 했다가는 제주에서는 운전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도로교통법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운 것은 배운 것이고, 현실을 또 다른 것이다.'라는 정신이 정치, 사회 모든 부분에 배어있어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날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부장회의 석상에서 사장이 한 말이 생각났다.


- 영업비 문제는 충분히 알아요. 그 필요성도 알고. 그러나 현실법의 테두리 안에서 공식적으로 마련해 줄 수는 없어요. 각 부장들이 알아서 해. 그런데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 걸리지만 말고 알아서 하세요. 만약 걸려서 문제가 생기면, 회사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없어요.


죄는 걸렸다는 거다. 걸리지 않은 죄는 죄가 아니다.

 

소위 S대 법대를 나온 분이 한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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