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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이민자의 직업 (4)

(2012년 9월 6일)

 

10여 년 쯤 전에 UN에서 오피서로 일하는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아다시피 UN 본부가 뉴욕에 그렇게 큰 빌딩을 가지고 있으니, 그곳에 종사하는 분들도 많을 수 밖에 없다. 연봉이 십 오만 불이라는 오피서 자리는 수입 보다는 세계평화에 이바지한다는 보람이 더 클 것 같았다.


UN 사무총장 밑에 사무차장이 있고, 오피서들은 그 사무차장에 소속되어 일을 하는데 한인들이나 1.5세들이 도전해 볼만한 직업이라고 했다. UN에서 각 나라의 영향력은 분담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한국은 1% 정도의 분담금을 내는데도 11위(당시 기준)에 해당한다고 했다. 20%가 넘게 분담금을 내는 미국이 당연 1위이고, 일본과 독일 순인데 미국을 싫어하는 제3세계 국가들의 저항 때문에 미국에 그렇게 많은 오피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거다.


한국은 언어문제 때문에 분담금 만큼 주어진 T/O를 차지하지 못하며, 영어가 뛰어난 인도인들이 내는 분담금에 비해 많다고 했다. 오피서가 되면 UN의 숱한 산하기관에서 일하기도 하지만, 분쟁지역에 UN 대표로 파견되어 분쟁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제시하기도 하는데, 그들이 낸 제안이 곧 UN의 결정이 된다고 하면서 자신이 동티모르와 세르비아에 파견되어 일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현지에서 현지인들을 필요에 따라 10여 명까지 고용할 권한이 주어진다. 급여는 월 천 불 선인데, 당시 세르비아에서는 의사가 월 5백 불 수준이니 그 영향력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짧게는 6개월에서 1~2년까지의 임기를 끝내고 돌아갈 때는 현지인들이 가보에 해당하는 물건을 선물로 주면서, 자기 나라에 기여한 공로를 칭송한다고 하니 참 해 볼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해방이나 6.25 이후의 한국을 보면 그들의 역할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민자의 직업과 동떨어지지만, 동부에 사는 1.5세들에게 많이 권할 수 없을까? 하는 마음에서 하고 있다. 왜냐하면 미국에 대한 UN 회원국에 대한 거부감은 백인들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져 유색인종에게는 유리하다고 한다. (들은 이야기라 검증에는 자신이 없다.) 국제감각이 중요한데, 그의 경력을 보면 그가 왜 오피서로 채용이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경기도의 어느 공고를 졸업한 그는 육군사병으로 입대를 했는데, 고참들의 부당한 처사에 분개하여 밤낮으로 공부를 하여 육사 입학시험을 상병시절에 합격했다. 육사 졸업 후, 소대장으로 전방에서 근무하다 국방부 장학금으로 콜로라도 대학(CU)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공부했고, 의무기간 복무 후 제대하여 LG EDS에서 취직을 하고 미국의 본사 EDS에 파견되었다. 자신이 오피서로 채용되는데는 분쟁지역(DMZ, 비무장지대)에서의 장교생활이 크게 작용했다고 전했다.


물론 일반적 직업 이야기는 아니다. 주제로 돌아간다.


뉴저지에서 IT 매니저로 일할 때, 한달에 한 번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새벽까지 일하곤 했다. 소위 '메인티넌스 데이'인데, 평상시에는 서버(Server, 회사 내에서 이메일 등을 담당하는 메인 컴퓨터)를 다운시킬 수 없으니, 중국이나 유럽의 지사에서도 접속하지 않는 시간을 골라, 여러가지 필요한 유지보수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인데 오버타임을 하는 직원들에게 저녁을 사 주곤 했다.


20대 젊은이인 직원들에게 저녁 메뉴를 고르라고 하면, 거의 쓰시를 선택한다. 이민 오기 전에는 미국인들이 Raw Fish를 질겁한다고 들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젊은 아이들은 거의 환장할 정도로 쓰시를 좋아했다.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 애들이 대학에 가서 쓰시 먹는 걸 배운 모양이에요. 여름방학 때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쓰시 먹으러 가자고 그래요. 어떤 애들은 먹으면서도 '아이 러브 쓰시, 아이 러브 쓰시' 이래요. 쓰시가 비싸잖아요. 걔들은 쓰시가 스테미너에 좋은 고급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대학에 진학하면서 뿔뿔이 흩어졌던 동네 아이들이 여름방학에 만나면 몰려다니면서 쓰시 먹으러 다니는 것이 유행이라고 했다. 뉴저지의 루트 텐이 287을 만나는 곳에서 동쪽으로 반 마일 정도만 가면 니코(Nikko)라는 일식집이 있는데, 항상 만원이라 예약없이 가면 기다리기 일쑤다. 주변에 노바티스, AT&T 등 회사가 많긴 하지만, 내 입맛으로는 맛도 별로고 쓰시 몇 조각을 놓고 20불을 받을 정도로 비싸기만 한데, 항상 테이블 마다 직장인들로 북적인다.


건물도 왜색풍이지만, 실내장식부터 웨이츄리스들도 전부 기모노 차림에 게다짝을 끌고 다닌다. 당연히 일본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자패니즈? 하고 물었는데, 뜻밖에도 차이니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탁소나 네일가게에만 매달리는 한인들이 떠올랐다. 물론 그 가게는 규모가 꽤 컸다. 종업원들이 얼른 보아도 20여 명이 넘어 보였다. 서너 집이 동업을 한다고 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규모였다. 서너 집이 동업을 해서 일자리도 만들고 같은 민족끼리 제 살 파먹는 경쟁하지 않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면......


뉴욕 퀸즈 플러싱의 한인거리에서 한인들이 밀려 나오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중국인들이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건물이나 집이 나오면 중국인들이 가격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들인다. 거의 동업이라고 한다. 건물 하나 매입하는데 백 명 이상이 투자한다고 한다.


- 해마다 연말이면 3만에서 5만 불 짜리 체크가 와요. 남편이 공동명의로 있는 플러싱 건물에서 수익금이 나면 정산해서 보내주는 거지요.


중국인 남편과 사는 자매님이 하는 말을 구역회에서 들었다.


80년대 중반에 이민와서 식당에 게(Crab)를 팔러 다녔다는 친구에게서 들은 말이다.


- 일 년 넘게 거래했어도, 누가 얼마에 주겠다고 한다면 무조건 그 가격에 맞춰야 해. 그렇지 않으면 담박에 거래를 바꿔버린다니까. 그런데 중국사람들은 어떤지 알아? 어떤 한국식당에 중국인이 찾아와서 싸게 주겠다고 거래를 하자고 하더래. 그래서 그러자고 했는데, 그 다음날 그 사람이 와서 사과하더라는 거야. 그냥 기존의 거래선과 거래하라는 거지. 왠지 알어? 그 전 거래선도 중국인이었거든.


한국인들은 동업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말을 다시는 안 들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희망사항일 뿐일까?


<후기>

미국에서 살아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일지도 모르는데 글로 옮기려니 쑥스럽기도 합니다.

좀 전에 어떤 분의 댓글에 답글로 달기도 했지만, 옛날 신입사원 시절에 '분임토의'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회사마다 '토요다 배우기'가 유행이었는데, 그것을 한 것이었지요.


먼저, 자기 또는 자신의 부서에서 하는 일의 현상을 파악합니다. 그리고 어떤 장애요인들이 있는지 토론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분석합니다. 그리곤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실천방안을 정하고 개선효과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피드백을 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자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민을 선택했던 사람으로서 이민자들의 모습을 보고 느꼈던 애잔한 감정들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걸 표현하고 있다고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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