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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이민자의 직업 (1)

(2012년 8월 31일)

 

- 사병은 공군, 장교는 육군이듯이 한국에서는 봉급쟁이, 미국에서는 비즈니스예요. 미국에서 월급쟁이 해서는 돈 못 모아요. 무조건 비즈니스를 해야 합니다.


십 수년 전, 미국에 이민하여 일 년 쯤 지나, 구역회라는 모임에 참석했을 때였다. 염불보다는 잿밥이라고, 구역모임 행사는 간단하게 끝나고 캐터링해서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 앞에서 몇 순배의 소주잔을 돌리고 난 떠들썩한 자리였다. 처음 참석하여 서먹서먹한 자리였는데, 옆자리에 있던 형제님 하나가 술잔과 함께 내게 말을 건네며,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말에 대꾸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분들은 대개 세탁소나 네일가게를 하는 분들이었다. 통관 사무실을 운영하는 분도 있었고, 1.5세로 국방성 산하 무기연구소에 근무하는 교우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세탁소를 운영하거나 네일가게에서 일하는 분이었다. 즉 남자는 세탁소, 여자는 네일가게가 무슨 공식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남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세탁소와 골프 이야기가 주된 화제고, 자매님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네일이나 자기가 경험한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된 화제이었다.


내게 말을 건넸던 K는 나보다 서너 살 많았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부인은 맨하튼에서 네일가게를 하고 본인은 뉴왁에서 리쿼스토어를 하고 있었는데, 그로부터 돈자랑을 참 많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쨋든 그는 모리스 카운티의 부유한 동네에서 1 에이커가 넘는 집에서 성공한 이민자의 모습으로 살고는 있었지만, 그리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었다고 기억된다.


범죄가 많기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뉴왁에서 총잡이 시큐리티 가드를 두고 운영하는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들어오면 두 시경이라고 했다. 돈을 세는 데만 한시간이 넘게 걸리고 샤워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네시라는 거다. 돈 버는 재미 외에는 아무런 낙이 없어 보였다. 하긴 돈 버는 재미보다 더 좋은 게 있을라구.


K는 결국 그렇게 돈 잘 벌리는 리쿼스토어를 팔고, 로우 맨하탄 트윈 타워 근방에 쓰시를 전문으로 하는 델리 비즈니스를 샀는데, 얼마되지 않아 911이 터졌고, 그 이후로는 그로부터 돈자랑 이야기는 듣지 못한 것 같다.


- 장형, 내가 세탁소 할 줄은 정말 몰랐어. 미국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새로 오는 이민자들에게 무조건 세탁소 하라고 안내해 주었거든. 세탁소를 하려면 처음부터 했었어야 했는데, 나도 결국은 세탁소를 하게 될 줄이야. 하하하, 사람 정말 모르는 거야.


성당에서 같이 성가대를 하다가 친하게 된 A는 나보다는 이민 20년 가까운 고참으로 젊었을 때 온 친구이었다. 그동안 목좋은 곳에서 델리가게를 하면서 주로 튀김을 취급했다고 했다. 야채, 생선, 치킨 등을 튀기는 노우하우를 내게 설명해주곤 했었다. 911 이후 비즈니스가 안 되기 시작하자, 열심히 세탁소를 찾아 다녔다. 리빙스턴에 살던 그는 숏힐 근처에 있는, 아이리쉬가 35년이나 운영했던 세탁소를 오너모기지를 안고 있는 돈을 몽땅 털어 샀다.


- 이 놈의 영감탱이가 세금보고를 100% 한 거야. 그러니 당분간 세금을 빠져나갈 방도가 없어. 세금 제대로 주고, 오너 모기지 주고 렌트 주고 나면 남는 게 뭐 있어, 이거. 종업원이 셋이나 있는데 그동안 종업원 세금까지 다 내주었더라구. 월급쟁이보다 못할 것 같아. 하는 수 있어. 몇 달 운영하다가 종업원을 내보내야지.


그는 카운터를 보는 흑인 여자 종업원 부터 내보내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민 온 L 형제님은 K와 동갑이었다. 은행에서 일하다가 있다가 이민 온 분으로, 약하게 보이는 몸으로 세탁소 일을 배우겠다고 남의 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왜소해서 빠질 살이 없어보이는 데도, 여름이면 십 파운드씩 체중이 줄었다가 선선해지면 원래 체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2천 년대 중반 무렵 루트 10번 근방에 세탁소를 전재산을 털어 샀다. 가족의 운명이 걸린 그 가게에서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여름에 지쳐 쓰러지기도 했다.


- 처음에는 죽겠더니, 1년 넘으니까 이제는 할만 해. 이력이 붙었나 봐. 지난 여름에 쓰러졌을 때는 이대로 죽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니까, ㅎㅎㅎ. 이제는 자리가 잡혀서 손님이 한꺼번에 밀어닥쳐도 당황하지 않아.


세탁물을 들고 일부러 찾아간 내게, 커피를 권하며 그 형님이 말했었다.


<후기>

이민경력이 일천한 제가 논할 주제는 아니지만, 당시 제가 보기에 미국 북동부에서는 세탁소, 네일가게, 뷰티샵, 리커스토어, 델리가 한인이민자들이 하는 비즈니스의 대부분이었습니다. 호황에는 좋은 직종이지만, 불황에는 가장 타격이 큰 비즈니스들이지요. 그 중에서 세탁소와 네일가게는 거의 공식화되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어디에서든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이고, 이민 1세들은 언어문제, 경력이나 학력 인정 등으로 선택의 폭이 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주류사회에 진출하는 경우는 대학이라도 그곳에서 나와 특별한 능력이나 노력을 한 극히 일부분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저는 그런 친구를 가진 덕분에 월급쟁이로 시작할 수 있었지만.


비슷한 어려움을 극복한 이민 1세들의 이야기는 서로에게 공감의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지금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분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요. 각자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직업과 고충들에 대해 많은 댓글도 주시고 긴 이야기는 답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참, 미국 이외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캐나다는 토바코 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