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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Better Life 를 찾아서 Ⅵ

(2012년 7월 5일)

 

여행의 추억


3년 전 갑작스레 레이오프가 되고도 처음에는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주변에서 같이 일하자는 사람도 있었고, 걱정하지 말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줄어들게 될 수입이 걱정되었을 뿐. 그러나 한 두 달이 지나면서, 돌아가는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자 주변 사람들도 점차 말을 바꾸기 시작했고, 다시 잡을 구한다는 것은 요원해져 갔다.


그래서 떠난 여행이었다. 현실을 떠나 마음을 정리하며, 최선의 방안을 찾고 싶었다.

미국의 동쪽 끝으로만 다녔다. 뉴저지 남쪽 끝 Cape May에서 카페리를 타고 델라웨어 루이스로 갔고, 거기서 동쪽 해변을 따라 버지니아 비치로, 거기서 동쪽 끝으로 노스캐롤라이너 아우터 뱅크(Outer Bank)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지도에서 보면 지렁이 모양의 섬들로 이어진 곳인데, 이곳 끝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려면 다시 카페리를 이용해 한 시간 반 정도 가야 한다. (요금은 승용차와 두 사람이 $15불로 매우 쌌던 것으로 기억된다.)


- 페리가 출발하자 갈매기들이 따라 붙었다.


- 반대편으로 돌아가는 카페리. 여러개의 섬으로 된 이 루트를 통과하여 다시 내륙으로 들어가려면 몇 번의 이런 페리를 거쳐야 한다. 노스캐롤라이나 교통국에서는 이 페리도 도로의 일부분으로 간주하는 것 같았다.


- 처음에는 이 갈매기가 왜 페리를 따라오는지 몰랐다.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 이유는 간단했다. 빵, 즉 먹이를 던져주기 때문이었다. 이 배에는 엘레멘터리 스쿨 수학여행 아이들이 타고 있었는데, 식빵을 한 봉다리씩 들고 내려가 재미삼아 빵을 던져주고 있었다. 갈매기들이 페리를 따라다니면 힘들이지 않고 먹이를 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먹이를 구한다는 것은 갈매기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이 많은 갈매기들이 스스로 먹이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페리를 쫓아 다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저희들끼리 다투고 있다.


- 페리에서 보는 석양이 너무 아름다웠다. (플래쉬 없이 찍은 사진)


- 같은 석양이지만, 플래쉬를 사용했다.


- 당시 목적지였던, 사우스 캐롤라이너 남동쪽 끝 Hilton Head Island로 이곳에서 며칠 묵었다. 빵을 던져주는 아이 주변에 힘들이지 않고 먹이를 얻으려는 갈매기가 모여든다.


재작년 LA에 살 때, 한국에서 온 처갓집 식구들과 캘리포니아를 여행했다. 샌프란시스코 밑에 Half Moon Bay에서 점심을 먹었을 때, 다리가 하나뿐인 갈매기가 보였다. 식당의 웨이츄리스에게 외다리 갈매기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사람이 던져주는 먹이만 먹다보니 병에 걸려 다리를 잃었다는 대답이 돌아왔었다.

사실일까? 라는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그 갈매기가 주는 교훈은 작지 않았다.


동부에서 본 갈매기는 카페리를 쫓아다니는 수고라도 했다. 서부에서 본 이 갈매기는 Pier에 있는 레스토랑 옆 난간에 앉아서 사람들이 던져주는 음식 부스러기를 주워먹기만 할 뿐이다. 전혀 수고하지 않고 편하게 앉아서 먹이를 구하는 이 갈매기가 한쪽 다리를 잃은 것이 혹시 자연의 법칙이 아닐까?


- 서부의 갈매기다. 동부의 대서양 갈매기보다는 순하게 생겼다. 거칠지 않은 태평양에서 태어난 때문일까?


- Better Life를 찾아 나섰다가 상처의 기억을 갖고 돌아온 나는 혹시 이런 모습이 아닐까? 힘들여 일하지 않고, 편한 삶을 찾은 이 불구의 새는 과연 행복할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자연의 법칙


나는 자연이 좋다. 그래서 틈만 나면 자주 보는 것이 자연 다큐멘터리다. 최근에는 마다가스카르, 갈라파고스, Great Barrier Reef (호주 대산호초), 시베리아의 생명들, 아시아 대평원, 극한의 땅 같은 다큐를 보았다.

혹등고래는 번식장소에서 태어난 새끼를 데리고 먹이를 찾아 북극권으로 11,000Km를 이동한다. 개코원숭이는 새끼가 위험에 처하자 죽기를 무릅쓰고 사자에게 덤벼들어 사자를 물리치고, 죽은 새끼를 4일 동안이나 데리고 다니고 나서야 포기한다. 시베리아의 네발가락 도롱룡은 영하 40도에서도 생존한다. 아르갈리 양은 25마리까지의 암컷을 거느리는데, 다른 숫컷이 도전해오면 시속 100Km의 속력으로 머리를 부딛혀 승패를 결정한다. 보다 강한 숫놈이 암놈을 잉태시켜 보다 강한 유전자로 종족을 유지시키기 위함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먹을 것이 필요하다. 살아남기 위해, 먹을 것을 위해,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살아있는 것은 죽음을 무릅쓰는 모험을 하기도 하고, 더 능률적이고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방법으로 진화한다. 그러나 먹을 것에 지나치게 쉽게 노출 되면, 긴장감을 잃게 되고, 느슨해진 긴장감은 쉽게 문제를 일으켜 생명체는 활력을 잃는다. 다리를 잃는 병에 걸리거나 죽게된다. 그게 자연이라는 신이 만든 법칙이다.


의식주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의식주를 다 갖추었다고 만족하는 인간은 없다. 창조주가 만든 피조물 중에 만족을 모르는 유일한 피조물이 바로 인간이다. 백만불을 가진 사람은 이백만불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그것에 매달리고 행복을 잃는다. 이백만불을 갖게 되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인간의 본질을 일찌감치 깨달은 선지자들은 말한다. 욕심을 버리라고, 마음을 비우라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진 것을 나누라고.


아프리카의 사자는 사냥감을 먹다가 배가 부르면, 그 자리에 놓고 떠난다. 다른 동물들이 먹을 수 있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자연의 법칙에 거스르는 피조물은 인간이 유일하고, 그 인간들이 격어야 하는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부족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작은 것에도 만족할 수 있다. 다 가진 사람은 큰 것에도 만족을 모른다. 시큼한 김치와 꽁치 한토막으로도 맛있고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산해진미에도 더 좋은 음식을 찾는 사람도 있다. 사람에 따라 느끼는 행복은 꽁치 한토막이 더 클 수도 있다.


행복은 마음 속에 있다. Better Life도 마음 속에서 찾아야 한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마음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후기>

Better Life를 찾아 이민을 스스로 선택했던 내게, 그것의 실체가 어떤 것이었는지 이제와서 뒤늦게 생각해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만 아니라, 가당치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을 뿐이고, 충분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자위할 뿐이지요. 그러나 그 의미가 무었이었느냐는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만은 놓고 싶지 않습니다. 나아가서 인생의 의미,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같은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평범하게 살았던 한 인간의 눈으로 조명해 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들 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더 위로를 받고 공감하기 때문이지요.


북한 주민들에게는 배고프지 않은 삶이 그것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정부패가 없는 사회를 찾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성차별, 인종차별이 없는 삶을 원할 수도 있겠지요. 또 가난이 없고 자유로운 사회를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좀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능력이 따라가 주질 않아서 여기서 'Better Life를 찾아서' 시리즈를 가름합니다. 모자란 글을 읽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