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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Better Life 를 찾아서Ⅴ

(2012년 5월 20일)

 

아픈만큼 성숙해지고


나이가 들면 생기는 대표적 노화현상이, 먼 거리보다는 눈앞의 것이 더 안 보이는 노안이다.  이런 노안은 눈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기억력에도 와서, 어제 일보다는 수십 년 전의 일이 더 생생하게 기억이 나기도 한다.


대학 신입생 시절, 정말 재미없게 읽은 책이 하나 있다.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이란 자전적 소설이었는데, 내용도 지루했지만 난해한 내용 때문이었다. 소설 속의 '나'인 싱클레어와 데미안과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어머니', '자연' 그리고 커다란 새 '아프락사스'가 무슨 연결성이 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재미 없는 그 지루한 소설에 집착한 이유는, '내가 이런 책 하나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무식한가?'라는 자존심이 작용했던 것 같다. 오기로 몇 번을 읽었어도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같은 동기들 중에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녀석이 있었다. 논어, 주역 등 사서삼경부터 온갖 종류의 책을 섭렵하는 독특한, 이 친구는 적성에 맞지 않는 이공계 대학에 들어와서 진짜 고생을 많이 했다. 지난 달 한국을 방문한 딸 때문에 서울에 갔을 때 있었던 대학동창 번개모임에도, 긴 머리 꽁지틀고 도포에 장삼차림으로 나타났던 기인이다.


그 친구에게 책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일목요연하게 요약해 주어 내 나쁜 머리를 도왔다.


- 헷세가 데미안을 통해서 이야기하려 했던 것은 자연이야. 자연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존재라는 거지. 거기에는 진·선·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위·악·추도 존재하거든. 자연에는 아름다운 것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 만약에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세상은 그건 완전한 세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거야.


- 헷세가 보는 관점은 진·선·미만 추구하는 세상은 반쪽짜리 세상이라는 거지. 종교도 그렇고. 완벽한 존재인 자연과 가장 가까운 이미지를 '어머니'라고 해석하는데,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아프락사스'라는 가상의 개념을 도입한 거야. 즉, 자연, 어머니, 아프락사스는 같은 개념으로 해석해야 돼, 이 책에서는. 그걸 데미안이라는 친구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는 거지.


- 새로운 세계, 완전한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는 '껍질이 깨지는 아픔과 고통'이 필연적이라는 거지. 새로운 세상을 그렇게 쉽게 만날 수는 없잖겠어.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비슷한 소설로는 이문열씨의 '사람의 아들'이란 책이 있다. 신의 아들인 '예수'와 대비시켜, 동시대에 사람의 아들 '아하츠 페레츠'가 등장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댓가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댓가없는 고통' 없고, '고통없는 댓가'는 없다. 고통을 겪고 나면, 세상이 달라보이고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 선배,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까 세상이 달라보이더라구. 예전에는 중요하게 생각되던 것들이 하찮게 느껴지고,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중요해지는 거야.


직장생활을 하면서 친하게 지냈던 후배가, 십 수 년 만에 만났을 때, 직장생활에서 받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심장에 이상이 생겨 심장수술을 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덧붙였던 말이다.


'Better Life'를 위해 이민자로서 겪어야 했던 고통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다.


구창모는 그래서 '아픈만큼 성숙해진다'고 열창하지 않았던가! 

이민이라는 것은, 살고 있는 곳에서 이룩한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전혀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그 다른 세상에서 아무런 고통없이 편안하게 정착하여 사는 분들이 과연 있기는 있을까?


미국에 환장한 놈


친구가 일갈한 대로 (첫 번째 글에서 소개) 나는 미국에 환장한 놈이었는지 모르겠으나, 1983년 해외연수로 방문했던 플로리다 해변은 낙원의 모습으로 뇌리에 깊숙이 새겨졌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잊고 지냈다. 아니,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민을 생각하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없었고, 부모님 등 장애물이 너무 많아서 나와는 관계가 없는 곳이라고 일축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거다.


Florida의 Melbourne에 있는 Harris Control Division 이란 회사를 다시 찾게 된 것은 10년이 지난, 1993년 말이었다. 자회사로 자리를 옮긴 후, 사업부장이라는 자격으로 그 회사가 새로 개발한 시스템을 구매하기 위하여 제작과정을 답사한 것이다. 가격이 당시 돈으로 300만불 정도 되었지만, 개발이 덜 끝난 상태로 완벽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이 아니었으니 그들이 내게 한 대우가 어떠했는지는 상상에 맡긴다. (이 회사는 나중에 GE에 합병되었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흘렀지만, 이 회사의 타블로이드판 사보를 회의실에서 우연히 보다가, Valdez (퍼스트네임은 생각나지 않음)라는 General Manager가 회사를 떠난다는 내용이 있어 자세히 읽게 되었다. 50세에 은퇴한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젊었을 때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즉 젊었을 때 50세까지만 일을 하고 은퇴하여, 나머지 시간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보내겠다는 것이었는데 내게는 참 신선한 충격이었다.


4년간 몸담았던 그 자회사는, 1년이라도 직장을 더 다니기 위해 치사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모회사에서 높은 직위로 정년을 하고 난 후, 자회사의 임원으로 자리를 옮겨 자리에만 연연하는 비굴해 보이는 분들을 많이 보았던 터였다.


Gary Breeker 라는 '아시아 태평양 담당 영업부장'이 나를 담당했었다. 하얀 수염이 붉은 빛이 도는 얼굴에 가득한 60대 초반인 그는 재혼하여 말레이시아 여인과 함께 호주에서 살고 있었는데, 승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해외출장을 많이 하는 직책에 있지만, 승진하게 되면 Director로 회사에서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싫다는 거다.


그는 7월이나 8월 한 두 달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휴가를 보낸다고 하는데, 아예 전화도 안 되는 그런 곳으로 간다고 한다.


나는 생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들을 그들은 하고 있었는데, 당시 숱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내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 뿐이었고, 'Better Life'라기 보다 'Dream Life'처럼 느껴졌다.


일주일이면 3~4일을 술을 먹어댔다. 룸살롱을 다니며 접대를 하기도 했고, 받기도 했다. 무언가 일을 하려면, 온갖 곳에서 압력이 들어왔다.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주변인물들의 눈치를 보는 게 더 힘들었다. 내가 맡은 부서가 커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기웃거렸다.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청탁이 들어오기도 하고, 나를 만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지만, 내가 가진 기득권이 전혀 커보이지 않았다. 한없이 작아만 보였다.


내 아이들은 이런 세상에서 살게하지 않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일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 파란 잔디가 깔린 뒷마당에서 아이들과 뒹구르며 사는 생활을 꿈꾸었다. 

내가 소망하는 'Better Life'는 비효율적이며 비생산적인 일에 신경쓰지 않고, 내게 주어진 '일'만 하면 되는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