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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이민자가 배우는 미국역사 (3)

(2012년 5월 2일)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서 채택과 1781년 영국의 항복으로 인한 완전독립은 세계 모든 나라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789년에는 프랑스에서 대혁명이 일어났고, 1804년 아이티의 독립을 시작으로 멕시코(1821년), 브라질(1822년) 등 중남미의 많은 나라가 독립했고, 1830년 유럽에서는 그리스가 보스니아로부터 독립했다.

중남미 지역에서의 독립은 크레올(Creoles)이라 불리우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난 유럽인 후손들이 주도했다.


영국의 지나친 간섭과 횡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독립정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17세기에 활약한 영국의 계몽사상가 존 로크(John Locke, 1632 ~ 1704)이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부패하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 안에 존재하는 악으로부터 개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필요하다. 기존 형태의 정부에는 그 기능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정부형태가 나타나야 한다.'는 로크의 주장은 당시 식민지 정부의 많은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독립전쟁의 결과


스스로를 영국인으로 생각하고 영국국왕에게 충성했던 아메리카대륙의 영국 충성파들은 미국에서 쫓겨나 영국과 캐나다로 이주하므로서 프랑스 식민지인 퀘백에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게 되고, 영국국교와 퀘이커 교도들의 세력은 크게 쇠퇴하게 된다. '떠는 사람들(신의 이름에 부들부들 떨라)'이라는 뜻의 비폭력 평화주의자들인 퀘이커(Quaker) 들은 펜실베니아 주에 살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교리대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인디언 세력도 설 땅을 잃을 정도로 몰락하게 된다. 미국인들의 지속적인 서쪽 진출로 불만이 컸던 인디언들이 미국인과 맞서 영국편에 서서 독립전쟁을 방해했었기에 미국의 승리로 전쟁이 끝났을 때 그들은 미국인의 만행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독립전쟁을 주도한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같은 프로테스탄트 교파와 가톨릭은 세력을 크게 확장하여, 로마는 1789년 미국 최초의 추기경을 임명한다.


또한, 여성들이 일부 전투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후방에서 전쟁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어 여성의 의식이 진보화하게 되고, 전쟁에 참여하여 자유를 얻은 노예들로 인하여 노예제도에 대한 각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계기가 된다.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하던 영국과의 교역이 중단됨으로써 제조업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고, 영국으로 주로 수출하던 농산품을 팔기위한 새로운 시장개척에 나서게 되어, 세계의 중심이 될 미국의 미래에 대한 기초를 다지게 된다.


America 신대륙의 발견


컬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 ~ 1506)가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그가 도달한 곳이 아시아 즉, 인도가 아닌 신대륙인 것을 깨달은 것은 세번째 항해에서 본토에 상륙했을 때였다. 이태리 제노바 출생으로 선원생활은 포루투갈에서 한 컬럼버스는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의 후원으로 세 척의 배와 90명의 선원을 이끌고 1492년 8월 새로운 인도항로를 찾기위해 서쪽으로 항해를 시작한 지 10주 만에 바하마 군도에 도착했으나, 그곳이 인도의 변방인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총 네 번의 항해를 한 그는 자신이 발견한 신대륙에 별다른 족적은 남기지 못한지만, 1499년 포루투갈의 탐험선에 동승했던 플로렌스의 상인 Amerigo Vespucci(1454 ~ 1512)은 남아메리카의 동쪽 해안을 돌아보고 돌아온 후, 이 신대륙을 유럽에 널리 소개하는 책을 저술하므로써 이 신대륙의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따게 되었다.


15세기 후반 유럽은 상업의 번창으로 항해술이 발달하게 되는데 그 역사적 배경에는 1347년 콘스탄디노플에서 발생하여 당시 유럽인구 1/3을 사망하게 하는 흑사병이 있었다.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휩쓸고 지나간 후, 약 100년 동안 유럽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원래의 인구를 회복한다. 갑자기 증가한 인구는 도시로 모여들었고, 이는 상업이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수많은 상선이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로 향료와 비단, 금은을 찾아나서게 되었는데 이는 새로운 항로의 개척, 항해술 발달로 이어져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May Flower를 타고 온 청교도의 미국건설


1517년 독일의 성직자 Martin Luther가 카톨릭 교리와 예식에 도전하여 1520년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하게 되고, 스위스 신학자 John Calvin의 운명예정설(Doctrine of Predestination)이 박해받는 대중에 의해 받아들여지면서 영국에서는 청교도(Puritan; 정화하다는 뜻의 Purify에서 온 말로 '정화된 신도'라는 뜻)들이 생겨난다.


또한 1529년 영국의 헨리 8세는 재혼으로 인해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하자 스스로 영국성공회(Church of England)의 수장이 된다. Henry VIII, Queen Mary, Elizabeth I, James 에서 Charles I세로 이어지는 100여년 동안의 영국국왕의 강력한 왕권은 종교적 저항을 일으키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세계로의 이주가 시작되는데, 그 두 번째가 1620년 메이플라워를 타고 온 매사추세츠 식민지 건설자들이다. 원래는 지금의 뉴욕항을 향했으나 항로이탈로 매사추세츠의 케이프코드에 지연도착하게 된다.


혹독한 겨울인 12월에 도착한 이들 102명은 이듬해 봄까지 절반 이상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사망하고, 3월 21일 살아남은 사람들을 플리머스 해안에 내려놓고 메이플라워호는 영국으로 돌아간다. 이들은 인디언으로부터 옥수수 재배를 배워 살아남았고, 이를 기념하여 추수감사절의 전통이 생겨난다.


이들은 부패한 세계가 보고 배울만한 신성한 사회(City upon a hill), 종교와 정부가 분리되지 않은 신정사회(Theocracy) 건설을 목표로 하지만, 영국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난 이들도 퓨리턴 외의 다른 종교는 허용하지 않는, 즉 종교자유가 없는 또 다른 사회를 하나 더 만든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백 명이 넘는 최초의 본격적인 식민지 이민은 메이플라워보다 13년 먼저 도착한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 정착촌이었지만, 버지니아 회사에서 이윤추구를 위한 개척으로 극빈자나 범법자들로 구성된 집단이었기 때문에 메이플라워 스토리로 미국의 건국사를 포장한 것으로 보인다.


- 2000년 미국에서 발행된 버지니아 주 기념 쿼터 주화로, 갓스피드호와 제임스타운 거주지 건설을 소재로 하고 있다.


<후기>

현재의 미국을 이해하려면 미국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비슷한 일들이 과거에 이미 일어났던 사건들과 유사한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다수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고, 지배층들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워 철저하게 대중들을 속이고 갈취하여 자기의 의지대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살기에 바쁜 다수는 역사를 공부할 시간이 없지만, 소수의 기득권 들은 과거로부터 실패의 교훈을 배워 다수를 위한 시스템을 자기들을 위한 시스템으로  서서히 바꾸어 나갑니다. 1960대까지는 다수를 위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소수를 위한 시스템에서 다수를 위한 시스템으로 바꾸는데 시동을 걸었고, 그 후의 대통령들이 시스템을 완성해갔습니다.


그 이후 1%의 반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닉슨이 대통령이 되고 공화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서서히 다수를 위한 시스템은 붕괴되기 시작하여 레이건이 급격하게 소수를 위한 시스템으로 바꾸고 부시에 의해 완성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압니다. 어리석은 다수를 속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매스컴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이미 매스컴을 철저하게 장악한 1%의 논리에 휘둘리게 됩니다.


'신 자유주의'가 그것입니다. 금융규제 철폐, 시장개방, 작은 정부, 복지축소, 시장경제, 경쟁의 극대화 등등의 그럴 듯하게 포장된 논리로 어리석은 다수를 현혹하는 거지요. 복지확대, 시장규제 등을 말하면 그들은 좌익, 빨갱이라고 몰아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들을 속이기 쉽다는 것을 그들은 경험과 학습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수가 이기기 위해서는 선거를 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언어의 유희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권력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프랭클린 루스벨트, 다른 케네디나 존슨을 찾아서 투표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후손들이 그 땅에서 행복한 다수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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