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이민자의 직업 (3)

(2012년 9월 5일)

 

세탁소는 보통 7 to 7 이다. 아침 7시에 문을 열고 저녁 7시에 문을 닫는데, 대부분 부부가 같이 일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 볼 시간이 잘 없다. 아이들은 13세가 넘으면 대부분 스스로 학교에 가고, 텅빈 집으로 혼자 귀가한다. 세탁소는 얼룩(스테인)을 발견하고 제거하는 것이 기술이라고 들었다. 나이가 들어 노안에 돋보기를 걸치고 형광등 아래서 세탁물을 뒤적이며 얼룩을 찾는 주인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경쟁이 심해지자 와이셔츠 한 장에 99센트를 받는 곳도 있다. 이윤을 보자는 것이 아니라 손님을 끌기위한 서비스다. 세탁물을 가져오고 갖다주는 델리버리 서비스도 무료다. 제살 파먹는 경쟁 때문에 수익은 줄어들고 일은 늘어나는 것이다. 거기다 스팀에 들어가는 세제인 '퍽'이 공해물질로 인식되면서 카운티 마다 규제도 심해지고 있어 비용도 늘어나고 있다. 


세탁업을 시작한 이민자는 초기에 유태인이었다고 한다. 가난한 유태인들이 큰 자본을 들이지 않고 시작할 수 있는 비즈니스이었다. 그 후 이태리나 아일랜드에서 온 가난한 이민자들이 종사했는데, 70년대에 쏟아져 들어온 한국이민자들이 접수하기 시작하면서 교포의 주된 업종이 되었다는 것도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다.


- 얼마나 손님이 많았는지, 가게 문을 닫지를 못했다니까! 문 닫으려고 하면 손님들이 또 오는 거야. 나중에는 문 닫을 시간에 손님들이 보이면 카운터 밑으로 숨었어. 그러면 헬로 헬로 몇 번 하다가 그냥 돌아갔어. 그 정도로 장사가 잘 됐는데, 뭐.


70년대 대한항공 뉴욕사무소 주재원으로 왔다가 눌러앉은 대학 선배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주재원 비자를 영주권으로 바꾼 선배는 회사를 관두고 아이리쉬가 하던 가게를 인수했다고 했다. 그렇게 장사가 잘 되는 비즈니스를 팔고, 거기서 번 자금으로 하드웨어 스토어를 했는데, 근처에 홈데포가 들어서는 바람에 망했다는 이야기를, 술을 무척 좋아하는 선배는 술에 취하면 종종 하곤 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그러나 선배의 자식농사는 성공했다. 두 아들은 예일과 프린스턴을 나와 서부에서 일하고, 딸은 윌리엄스를 나와 다우에서 일하다가 로스쿨을 졸업하고, 지금은 맨하튼의 대형 로펌에서 일한다. '컬럼비아는 아이비 리그도 아냐! 하빠리 아이비지.'라면서 억센 경상도 억양으로 나를 주눅들게 만들었던 형수님은 옛날 세탁소에서 배운 올터레이션 기술로 자그마한 가게를 했는데, 뉴저지를 떠날 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떠나 항상 죄송스럽다.


- 자기 남편은 'S'대 나온 사람이라고 은근히 얼마나 자랑하는지 몰라. 자기는 'E'대를 나왔고. 그러면 뭘해, 기껏해야 세탁소 주인 밖에 더 돼! 세탁소에서 빨래나 뒤적거리고 스테인을 찾으면서 유학온 이야기는 왜 하는지 몰라!


- 저 세탁소가 저래 보여도 백만 불 짜리야! 순수입이 일 년에 50만 불이 넘는다니까. 저 장로님은 세탁소가 또 하나 있어. S대 화공과 출신이잖아. 집에도 가보았는데, 얼마나 큰지 몰라. 정문에서 현관까지 한참 가야 한다니까!


90년대 중반, 이민 초창기에 들은 이야기로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이야기들이다. 90년대 초반 출장길에 뉴저지 친구집에 들렀다가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도 기억에 생생하다. 플러싱에 사는 아들집에서 손주들을 돌보면 살다가, 대전에 사는 딸이 출산을 하여 산모를 돌보러 간다는 곱상한 모습의 할머니가 전하는 이야기는 비극 중의 믿기 힘든 비극이었다.


- 이웃에 세탁소를 하는 집이 있수. 그 집에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하나 있는데, 그 아이가 남미사람들에게 납치를 당했는지 가출을 했는지 하루 아침에 없어진거유.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잃었으니 부모의 심정은 어떻겠수, 말도 못하지. 세탁소도 닫다시피하고 울고불고. 그러다가 어떻게 해서 두어 달만에 아이를 찾긴 찾았어. 그런데 아이가 남자 없이는 잠을 못자는 거유. 섹스 중독이래나 봅디다. 수시로 남자를 찾아서 집을 나가는 거유. 그래서 부모가 남자를 구해서 딸 방에 넣어 준다니까. 말세지 말세야!


하여튼 한인들의 이민역사에서 세탁소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긴 3~40 대에 이민을 가서, 전문기술도 없고 언어 마저 딸리는 이민자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물건 갖고 오면 돈 받고 거스름 돈 내주는 장사 밖에는.


<후기>

제가 듣고 보았던 교포분들의 이민생활을 그저 가식없이 담담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을 뿐입니다. 다소 거슬리고 마음에 안 드는 내용이 있더라도, 다른 뜻이 없음을 이해하시고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글을 보고 불쾌한 분들이 있을까봐 살짝 걱정이 됩니다.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 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민자의 직업 (5)  (0) 2013.11.15
이민자의 직업 (4)  (0) 2013.11.15
이민자의 직업 (2)  (0) 2013.11.15
이민자의 직업 (1)  (0) 2013.11.09
Better Life 를 찾아서 Ⅵ  (0) 2013.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