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퇴이야기/제주의 삶

집과 이웃 (4)

(2012년 7월 31일)

 

공동주택에 살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생기기도 하고, 다른 집에 일어난 문제를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이곳에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하수관은 101, 201, 301호가 공동으로 사용하는데, 1층인 101호에서 하수도로 연결되는 하수관이 막히면, 1층에서 제일 먼저 오버플로우가 발생하고 이어서 2층과 3층까지 오버플로우가 생긴다.


이 경우 누구 책임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1층, 2층, 3층에 사는 세 가구가 공동으로 비용분담을 해야 한다. 그런 일이 실제로 생겨서 변기가 막혔다. 문제는 1층과 2층 사이의 하수관이었기 때문에 2층에 사는 나와 3층에 사는 목사가 같이 부담했던 것이 작년 가을 무렵이었다. 나는 목사가 쉽게 응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을 했었지만, 상황설명을 하니 쉽게 동의를 해주었다. 역시 공동주택에 살아 본 사람이니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사하고 나서 이런 식의 트러블이 몇 번 생겼는데, 지난 겨울에 생긴 문제는 약간 심각했다. 어느날 정장을 할 일이 있어서 옷장을 뒤져 꺼내 입었더니 희끗희끗한 흔적이 눈에 띄었다. 먼지인 줄 알고 털었지만, 그것이 곰팡이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붙박이 장을 열어 제끼고 이곳 저곳을 살펴보니 한 쪽 벽에 시커멓게 곰팡이가 슬었고 그 흔적은 위로부터 내려와서 바닥에는 물까지 고여 있었다. 천정에는 곰팡이가 심해서 나무가 보기 싫게 부풀어 있었다,


깔끔하기 짝이 없는 집사람이 놀라서 바닥에는 신문지를 깔아놓고, 시커먼 자국은 걸레로 닦아냈고 옷들은 꺼내서 베란다에 너는 등 부산을 떨었다. 문제는 어디서 물이 생겼는지 그 원인이었는데, 곧 밝혀졌다. 3층 안방에서 난방 보일러 관이 터져 물난리가 난 것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곳이었으니 오랫동안 난방을 하지 않다가 난방을 하여 더운 물이 관을 타고 돌면서 약한 곳에 구멍이 나 물이 새다가 압력이 세지자 그만 터지고 만 것이었다.


입담이 좋은 와이프가 우리집 인테리어 공사를 시키면서 알게 된 업자를 불러 견적을 받았고, 그 견적으로 긴급공사를 했다. 안방 콘크리트를 깨고 배관공사를 새로 했는데, 문제는 우리집이었다. 그동안 샌 물이 다 없어진 후에 해야 다시 곰팡이 스는 일이 없는데, 지금은 겨울이라 수분이 잘 증발하지도 않으니 3~4 개월 기다렸다가 해야 한다는 말은 타당해 보였다.


다음 문제는 당연히 비용, 즉 돈이었다. 와이프와 가까와진 업자가 최소한의 비용으로 공사를 해준다고 해도 목사는 믿지를 않는 눈치를 보이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불러들여 견적을 받았다. 결국 와이프가 소개한 업자에게 일을 맡기고 그대로 했지만, 그 몇 달 사이에 집사람은 목사와 신경전을 펼치고 있었다. 집안 일을 좋아하는 와이프에 처음부터 알아서 하라고 맡겨온 터였다.


작년 3월 목사가 3층을 구입하고 나서 다락을 올리는 공사를 했다. 꼭데기 층인 3층은 천정이 높아서 다락을 올릴 충분한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 빔을 밖고 계단을 만드는 공사를 하느라고 한 일주일 동안 망치와 드릴 소리에 집에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소음이 요란했다. 저렇게 구조변경을 하면 건물에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신경은 신경대로 쓰이고, 집에 자꾸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기자 작년에 한 공사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그 공사를 한 이웃을 불러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 저는 목사님네 공사를 하기 싫어요. 아이들을 그곳에 맡기잖아요. 와이프도 일 나가고, 저는 늦게 들어오니까 학교에 갔다 오면 아이들이 와이프가 올 때까지 그 아동센터에서 지내거든요. 그러니 목사님이 부탁을 하면 안 해 줄 수도 없어요, 저는.


- 저는 약점이 있기 때문에 어차피 재료비에 최소한의 일당만 받고 해 주는데도 얼마나 따지는지 피곤해요. 제가 쉬는 날에 일을 하게 되면 재료비만 받고 해주지만, 평일에 일을 하게 되면 어차피 저도 벌어야 먹고 사니까 최소한의 일당은 받아야 하잖아요.


- 의심이 많은 분이라, 제가 재료비 견적을 내도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목사님도 다 알아보거든요. 그래서 의심받는 것도 싫어서 재료들을 사다 달라고 하거든요. 이런 저런 재료가 필요하니 사다 달라고 합니다. 어떤 때는 말하지 못한 재료가 필요할 때는 그냥 제 것을 갖다 쓰기도 해요. 너무 따지시니까 귀찮아서요.


- 일 끝나니까, 저더러 복 받을 거라고 하면서 다른 교회에서 일이 있으면 소개해 준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손사래 쳤습니다. 제발 소개해주지 말라고요. 그런 일 안해도 먹고 살 수 있다고요. 아마 목사님이 알아본 거에 반값 정도 밖에 안 들었을 겁니다. 하하, 제가 복 받을 거래요! 하하


- 공사가 끝나면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잖아요. 그러면 액수를 높여서 달라는 거예요. 공사비는 3백 5십만 원인데 5백만 원짜리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달라는 거지요.


그것은 범법행위다. 내가 한국에서 사업부장이라는 직함으로 직장생활을 할 때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쓰던 방법이었다. 소위 SI(System Integration: 시스템 통합)라고 불리는 일을 하던 나는 수주활동과 동시에 구매활동도 했었다. 수주활동에 들어가는 영업비를 회사에서 인정은 하면서도 공식적으로 마련해 주지는 않았다. 각 사업부장들이 알아서 만들어야 했고, 그 비용은 구매활동에서 만들어졌다. 천만 원에 구매하기로 협상을 끝낸 후, 계약서에는 천 2백만원으로 사인을 하는 것이다. 나중에 천 2백만 원짜리 세금계산서가 발행되고, 그만큼의 돈이 입급되면 업자는 2백만 원을 현금으로 내게 가져온다. 그 돈을 선임 주무과장에게 주고 비자금 관리장부에 기입하고 관리하게 되는데, 이 돈이 목적 이외의 용도로 쓰일 여지는 언제든 충분하다.


앞 동에 사는 그 젊은 친구는 건축업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금속을 다루는 것이 전문이라고 했다. 미국에서라면 컨트랙터로 불리는 일이다. 세금계산서로 장난치는 것은 워낙 흔한 일이라 다들 그렇게 하는 것으로 이해는 한다고 했다. 나는 바보같은 질문을 던졌다.


아니, 지역사회에 봉사하겠다는 목사님이 무슨 영업비가 필요한 것도 아닐 텐데, 왜 범법행위를 하지요?


- 다들 그래요. 3층도 아마 사택으로 등록이 되었을 겁니다. 공사비도 비용으로 처리했을 거에요. 정부에 보조금이나 지원금을 신청할 때 세금계산서를 첨부하는 거지요. 또 후원자들 후원금도 있어요. 사소한 것도 다 비용으로 계산하거든요. 이번 공사만 그런 것 아니거든요. 1층에도 이런 저런 손본 게 많아요. 그럴 때 마다 세금계산서는 부풀려요.


'아하, 목사님이 아니라 목사놈이었구나! 순, 개XX 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 순간 지나간 20여년 전의 일들이 뭉개구름 처럼 일어나며 뒷골이 땡겼다.


(다음에 계속)

'은퇴이야기 > 제주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이고 속고  (0) 2013.11.09
집과 이웃 (5)  (0) 2013.11.09
집과 이웃 (3)  (0) 2013.11.09
집과 이웃 (2)  (0) 2013.11.09
집과 이웃 (1)  (0) 2013.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