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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제주의 삶

집과 이웃 (2)

(2012년 7월 27일)

 

- 여보, 나 이런 반찬 아주 좋아해! 당신이 이렇게 만들어 주면 나 아주 잘 먹을 텐데.


아랫층에 사는 젊은 친구 내외와 집에서 맥주를 하는 자리였다. 미국식으로 맥주나 한 잔 하자고 부른 자린데, 젊은 친구는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걸로 생각하고 화분을 하나 들고 왔다. 집사람이 놀라서 부랴부랴 있는 반찬, 없는 반찬을 준비해서 저녁상을 차렸는데, 그 자리에서 자기 와이프에게 활짝 웃으며 부드럽게 하는 말이었다.


말 한 마디에도 자기 와이프를 배려하는 투가 역력했다. 나라면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아마도 '당신도 좀 배워서 이렇게 만들어 봐!' 하지 않았을까!

세상 사람 모두가 다 내 스승이다!


아랫층 젊은 새댁과 수시로 왔다갔다 하는 집사람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이다.


- 신제주에는 해병대 관사도 있다. 그곳에 들어가면 생활비가 거의 들지 않지만, 안 들어간다. 아이들이 계급이 높은 집 아이와 싸우면 시끄러워진다. 남편 계급따라 아이들 서열까지 정해진다. 아이들 기죽을까 봐 안 들어간다.


- 남편이 포항사람인데, 시댁에서 철마다 고추장 된장 보내오고 심지어는 쌀, 고추, 마늘, 감자까지도 보내준다. 코다리 반찬하고 몇 가지 음식을 갖다 주었더니, 시댁에서 보낸 된장을 주었는데, 집에서 만든 된장이라 정말 맛있다.


- 두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과일과 야채만 먹여서, 무슨 어린 아이들이 그렇게 야채나 과일을 잘 먹는다. 과자같은 것은 절대 안 먹인다고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 대단하다.


- 남편 월급이 2백 3~4십만원 정도 되는데, 아이들 유치원 비용으로 5십만원이 나간다. 새댁은 산후조리원으로 일해서, 아이들 학원비와 책값을 번다. 아이들에게는 엄청 투자를 한다.


<평상시에는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집 바로 옆 계곡>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처음 보는 부인이 어린 여자와 함께 문 밖에 있었다.


- 앞동에 사는데, 얘가 이번에 결혼합니다. 그래서 인사드리려고 왔습니다. 얘, 인사드려라.


얼떨결에 인사를 받고, 전해주는 흰 봉투를 받았다. 봉투 안에는 결혼식 초대장이 들어있었고, 잠간동안 당황스러움에 멍해 있었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집사람에게 난, 모르겠으니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넘겨버렸다.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던 집사람에게 얼마있다가 어떻게 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깜박 모르고 지나갔다고 한다.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 제주친구에게 물어보았고, 제주사람들은 으례 그러니 괜찬다는 대답을 듣긴 했지만, 한동안 찝찝함은 마찬가지였다.


엊저녁 9시 무렵,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리는 소리가 아이들이 밖에 나와 노는 소린줄 알았다. 그러나 TV 뉴스와 섞여 들려오는 소리는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로 심한 부부싸움 하는 것으로 보였다. 동네 소식통인 마누라에게 물어보았더니 301호에서 싸우는 소리라고 한다.


남편은 경찰이고 아내는 물장사(5갤론짜리 식수통 배달)를 하는데, 아내되는 사람이 술을 좋아해서 밤늦게 까지 술마시러 다니는 통에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오늘 아침, 아니 6시도 되기 전이니 새벽에는 요란한 소음이 간헐적으로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에 섞여 들렸다. 오토바이가 악셀을 밟는 소리 같기도 하고, 전기 톱날이 쇠를 자르는 소리 같기도 하다. 운동하러 나가는 김에 소리의 근원을 찾아서 따져보려는 생각을 가졌었지만, 이 나라에서 사는 법은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웃간에는 적당하게 피해를 보기도 하고 주기도 하면서 두리뭉실 살아가는 게 이 나라에서 사는 법이 아닐까?


If you are in Rome, as a Roman do! (로마에 가면 로마인 처럼 행동하라!)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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