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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제주의 삶

집과 이웃 (3)

(2012년 7월 29일)

 

- 잠깐만요, 할 말이 있어요.


연립주택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목사에게 인사만 건네고 들어가려는 나를 붙잡아 세운 것은 며칠 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최소 2~3년은 하겠다고 큰소리 치고 시작한 운전이었지만, 무더위가 시작되자 힘이 들었다. '아, 이래서 노동이 힘이 드는구나!' 하고 체험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아이들에게 사람은 공부를 해야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만 가르쳤지,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는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한 것도 더위에 허덕이면서 운전을 하는 최근의 일이다.


돌담이 왜 무너졌는지, 그 땅은 누구 땅인지 장황한 설명에, 빨리 집에 들어가 옷을 벗어던지고 샤워를 하고픈 나는 짜증이 났다. 오후 7시가 지나 시장기도 꽤 느끼던 참이었다. '그래서 욧점이 뭐죠?' 목사님의 말을 도중에 끊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감정이 표정과 말에 바로 나타나는 버릇이 또 도진 것이다.


- 절에 전화를 해서, 빨리 치워달라고 부탁좀 해주세요.


'아니, 목사님이 전화하시면 되지, 왜 절 시키세요!' 하고 돌아서서 집으로 향하는 내 뒤통수에 '전화번호는 아시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돌담이 무너져 있지만, 통행에 불편을 줄 정도는 아니다.


경주애인님이 쓰신 글에는 '목사님'과 '목사놈'이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분은 '목사놈'에 틀림이 없다.


집을 잘못 샀다고 깨달은 것은, 이사 후 얼마되지 않아서였다. 아랫층 102호는 항상 지저분하고 소란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음식냄새가 심했다.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102호는 '지역아동센터'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으나, 앞 동에 사는 김선생으로부터 102호에 대한 불평을 듣고 난 후,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알게 되었다.


참여정부 시절, 취약아동에 대한 복지차원에서 마련된 제도였다. 젊은 부부들의 이혼증가와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은 심한 교육 불평등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는 동안에, 부모가 없는 집에서 혼자 지내며 성적이 뒤쳐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고에 쉽게 노출된다.


그런 불평등을 다소나마 해소하기 위하여 도입된 제도가 '지역아동센터'이다. 결손가정 아동들의 방과후 활동을 책임지는 곳으로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훌륭한 뜻을 가진 좋은 제도로 복지를 지향하는 국가로서 손색이 없는 정책이다. 문제는 그 장소가 공동주택이라는 것이다. 코흘리개 꼬맹이들이 노는 곳이 얼마나 시끄러울까! 


건축술이 발달해서인지, 창문만 닫으면 웬만한 소음은 차단된다. 문제는 종일 창문을 열어놓을 수 밖에 없는 여름방학 때다. 낮에야 다들 일 나가니까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앞 동의 김선생은 은퇴하신 분이다, 게다가 1층이다. 보통 짜증이 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집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던 내게도 작년에는 작년 여름에는 고통스러웠다.


그렇다고 좋은 뜻을 가지고 좋은 일을 하는 분을 나무랄 수는 없다. 작년 여름을 한 번 지내고 나니, 또 다시 그 집에서 여름을 날 자신이 없었다. 1억에 집을 내놓았다. 8천만에 사서 천 오백 들여 수리했으니 그 정도는 받을 만 했다. 어떤 사람이 집을 보러 왔다.  깔끔하고 깨끗한 내부에 마음에 들어 했다. 그 사람이 나가다가 텃밭을 돌보는 주민을 만나 물었다. 저렇게 깨끗하게 해놓고 사는 사람이 왜 집을 팔려고 하는지 물었다. 주민이 답했다. 1층이 '지역아동센터'고 3층이 교횐데, 2층이 시끄러워 살 수가 있겠어요?


두 번째 찾아왔던 그 사람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고, 집사람도 마음을 바꿔 집을 거둬 들였다.


작년, 앞 동의 김선생 부부가 미국 아들에게 갔다가 3개월 만에 돌아온 것이 9월이었다. 여름에 시끄러워 어떻게 지냈냐는 이야기를 하다가, 시청에 같이 간 적이 있었다. 공동주택에서 '지역아동센터'를 하는 것이 타당한지 직접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법을 전공한 김선생은 자기가 알아본 바로는 아동센터는 할 수 있지만, 교회는 안 될 거라고 했다.


시청에서 연락이 갔는지, 다음날 저녁에 목사님이 찾아왔다. 앞 동의 김선생이 안 계셔서 자기네가 방심했다고 한다. 다음부터는 아이들과 선생들에게 조심 시킬 것이라며 사과를 했다. 60을 넘긴 분이 진심으로 사과를 하니 마음이 약해졌다. 좋은 일을 하시는 분에게 불평을 할 수 없어서 참고 지냈으나, 집을 팔 수도 없고, 내년 여름이 지금부터 걱정이 될 정도라 어쩔 수 없이 시청에 찾아간 것이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러나 음식냄새는 어떻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들통으로 3~4시간이 넘게 끓여 복도에 가득한 곰국냄새를 맡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 후로는 조심하는 기색이 보였다. 아이들도 전처럼 요란하게 굴지도 않았고, 부엌에는 환기통을 달아 음식냄새가 밖으로 빠지게 해서 냄새공해에서 해방되었다.


이사올 때, 3층은 비어있었다. 은퇴해서 서울에서 내려온 노부부가 살던 곳이었다고 했다. 그 분들도 현관에서 거실을 거쳐 부엌까지 터져있는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아 개조를 했던 모양이다. 중간방을 개조해서 부엌으로 뜯어고치고, 부엌은 거실과 합쳐버렸다. 방 세개짜리 집이 두 개가 되었고, 거실은 운동장처럼 넓어졌지만, 겨울에 문제가 생겼다. 넓은 거실에 꼭데기 층인 곳의 난방비가 한없이 나왔다.


이사한 지 얼마되지 않아 바로 연립주택의 외벽 페인트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10년 동안 한 번도 페인트를 하지 않아 흉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 가구당 4~50만원을 부담하여 칠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 2월이었는데, 이에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이 집사람이었다. 문제는 비어있는 3층이었다. 목사님이 연락하니 집주인이 팔 집에 돈쓰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팔릴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다.


목사님 이야기는 작년에도 이 문제 때문에 실행을 못했다고 한다. 빈집의 몫을 주민들이 나누어 분담하고자 하면 반드시 반대하는 사람이 한 두 집 나오게 되어있다는 거다. 그래서 편법을 제안했다. 업자가 일을 하기 위해 302호 몫은 깎아주기로 했다고 주민들에게 거짓말 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목사님과 나만 아는 사실이었고, 동네를 깨끗하게 하자는 거룩한 작업(?)에 나는 기꺼이 공범자가 되었다.


2월 말까지 주민들로부터 돈을 거두어 3월 초에 페인트 공사를 했고, 3월 말에 정산을 위한 주민회의를 했다. 거기에서 목사님이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를 했다. 3층을 샀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조용히 가정예배를 드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웃에 피해주지 않게 조용히. 나도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그렇다면 지난 달, 페인트 논의가 있었을 때 사시기로 한 것이 아닙니까? 목사(지금부터는 '님'자가 빠진다.)가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아뇨, 천만에요. 지난 주에 결정했어요.


하하, 그게 사실이라면 절묘한 타이밍이다. 그는 5십 몇 만원에 양심을 파는 목사놈으로서 본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동안 상대한 경험으로는 보통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8천만원 짜리 집을 일주일만에 결정할 그런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작년 여름 어느날인가, 목사가 날 찾아왔다. 시청에 민원을 제출할 서류를 들고 와서 내게 민원을 내달라는 것이었다. 진입로를 넓혀달라는 것이었는데, 주민들 연판장도 들어 있었다. 근처에 도로공사가 한창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설득력도 있고 타당성이 있는 민원이었다. 그런데, '왜 직접 안하시고?' 하고 묻자, '시청에 너무 많이 알려져서'라는 대답이었다. 또 근처 절에 가서 스님의 사인을 받아 달라고 부탁도 하였다. 그리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이유도 충분해서 흔쾌히 따랐다.


게다가 나는 하릴 없는 실업자였고,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목사놈'은 아니었다.


- 연립주택 진입로. 길 오른쪽 다소 희게 보이는 부분이 작년에 넓혀진 부분이다.


가정예배만 보겠다는 3층은 어느새 교회가 되어있었다. 풍금소리와 찬송가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도 그 시간에는 성당에 나가서 끝 무렵에 돌아오니 바더가 되는 것은 아니었으며 그리 불만도 없었다. 집사람은 넓은 거실에 교탁과 접의자 수십개를 갖다 놓은 것을 보고 와서는 불평을 했지만.


- 목사님, 이건 야비하신 것 아닙니까? 가정예배만 하시겠다고 분명하게 말해놓고, 아주 간판까지 단단 말입니까? 302호가 교회고, 102호가 아동센터면 202호에 사는 나는 뭡니까? 어물쩍하고 넘어가시겠다는 건데, 이건 안 됩니다. 도대체 이 연립주택에서 교회를 하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교회가 주 목적입니까, 아니면 아동센터가 주 목적입니까? 팻말 당장 고치던가 떼세요.


-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 양쪽에 이렇게 팻말을 붙여 놓았다. 이것을 보면 교회가 있고 부설 아동센터가 있다. 나는 그 틈인 202호에 살고 있다.




이 팻말은 고쳐서 다시 세워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목사놈'까지는 아니었지만, 목사님도 아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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